볼보 굴착기로 가족을 먹여 살렸던 한 중년 남자인 남훈이 은퇴하며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것은 물론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얻으며 새로운 삶을 위해 나아가는 소설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오랜만에 슬프지만, 가슴 한편이 따뜻한 무언가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족 구성원 각자는 자신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산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산다고 해도 언제나 행복으로 인생이 충만한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슬픔과 어려움이 찾아든다. 그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가족 안에서만 가능하지 않고, 가족과 더불어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봉착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은퇴한 주인공 남훈은 볼보 굴착기를 중고로 판매하기 위해 세 명의 사람과 만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중고 판매하지 않고 한 청년에게 렌트해 주고 3개월에 한 번 굴착기 상태를 점검하는 계약을 맺는다. 자신의 굴착기에 남다른 애착으로 꼼꼼하게 관리했던 그가 막상 누군가의 손에 굴착기를 넘기려니 아깝기도 하고, 함부로 사용할까 판매하지도 못했다. 그 마음이 느껴진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 보물 1호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남훈은 자신이 기록해 놓았던 <청년일지>를 보게 되었고, <청년일지>를 보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둘 실천했다. 그중 하나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었으며 독일어, 프랑스어 고민하다가 스페인어를 선택해 학원을 부지런히 다녔다.
그는 플라멩코도 배웠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으로 참여해도 되는데 꼬박꼬박 오프라인 수업을 다니며 플라멩코를 배웠다. 그는 그렇게 은퇴 후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해나갔지만, 가슴 깊이 송곳이 박혀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주인공 남훈이 젊은 날 이혼하면서 딸을 데려오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딸 보연을 찾는 것이 소원이었다. 자기 딸을 찾기 위해 초본에 나왔던 주소지들을 찾아다녔다. 결국 40대가 된 딸을 찾았지만, 그녀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남훈은 마흔 살쯤 지금의 아내를 만나 늦둥이 선아를 출산했다. 그는 그들이 신경 쓰여 쉽게 딸을 만나는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딸이 보고 싶었다. 용기를 내 딸 보연을 만났다.
이 소설 결론에 이르러 드디어 남훈은 딸 보연과 스페인 여행을 갔다. 맞춤 제작한 양복을 멋들어지게 입고 스페인에서 플라멩코를 추었고, 스페인어를 구사하며 딸 보연과 행복한 스페인 여행을 했다. 스페인 여행에서 딸 보연을 바라보지 않았다가 결국 눈물 흘리는 보연의 말에 자기 잘못을 깨닫고 보연을 바라본다. 그렇게 소설은 오랜 세월 떨어져 있던 부녀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줬다.
그토록 사랑하는 늦둥이 딸 선아, 첫째 딸 보연, 그의 아내를 포함한 카를로스, 굴착기 청년, 플라멩코 강사가 그의 은퇴 삶에 함께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