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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평점 :
수바시, 우다얀, 가우리, 벨라.
이 네명이 이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줌파 라히리의 책은 처음이다.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읽은것도 거의 처음인것 같다.
미지의 나라, 인도. 명상과 수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선망하는 나라.
어디를 가든 요가수행을 하는 선인을 만날것 같은 미지의 나라도 실은 우리와 같은 식민지를 겪었고,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또 그에 상응하는 탄압도 있었고... 지금은 콜커타라고 하는 대도시에 아이티산업에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것도 비슷하고...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수바시와 우다얀은 쌍둥이 같은 형제로 언제나 한몸처럼 붙어 다녔지만, 수바시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우다얀은 인도에 남아 민주화운동을 하다 살해당했다. 우다얀이 죽기 전에 가우리와 결혼을 했었고, 가우리는 임신중이었다. 수바시는 분신과도 같았던 동생의 아내를 아내로 맞아들여 미국으로 함께 건너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어했지만, 가우리는 결코 수바시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수바시와 딸 벨라를 버리고 혼자서 살아간다. 벨라는 자신을 버린 엄마를 용서할수 없어하고, 나중에 자신의 아버지의 진실을 알고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며 미혼모로 딸을 낳고 아버지와 함께 산다.
스토리는 이토록 어찌보면 간단하다.
그런데 이 책은 무려 540여페이지에 달한다. 스토리로 보면 간단한데, 그 긴 문장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줌파 라히리 작가의 엄청난 문장력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내가 그 현장에 오롯이 있는 느낌이다.
저지대의 그 호수에, 톨리클럽에, 가우리 할아버지 집의 발코니에 서있는 느낌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현장의 것들이어서 내가 그곳을 직접 보고 경험한듯 하다. 이렇게 줌파 라히리의 표현력은 실감이 나며 구체적이며, 또한 인물들의 내부 속속들이 그 생각에 공감할수 밖에 없게 한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이토록 힘겹게 헤치며 살아야 하는 인간군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수바시는 미국에서 촉망받는 학자로 굳이 가우리와 결혼하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과의 결혼을 결심할수 밖에 없다. 가우리는 우다얀의 아이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아이처럼 사랑을 쏟아 아이를 키우고, 가정에 충실한 수바시를 배신하고 떠나고야 만다. 벨라는 구태어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힘든 육체노동을 하며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택했다.
사람 누구하나 자기뜻대로 되는 사람이야 있겠냐마는,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너무나 힘든 삶들을 선택하고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간다.
뭐, 그래야 소설이 재미있고, 흡입력도 있고, 서사도 있겠지만, 등장인물들의 힘겨운 삶에 나도 덩달아 힘에 겨우니, 이 끝간데 없이 몰아부치는 작가가 밉기까지 할 지경인걸 어찌하랴....
이 책은 소설이지만, 읽으면 마치 시를 읽는듯 하다. 그 언어가 고급스럽고, 격조가 있고 또 운치가 있다. 이건 작가의 대단한 필력이 있어서 가능하겠지만, 한글로 멋지게 풀어낸 번역가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이토록 멋지게 한글로 만들어낸 번역자 서창렬 선생에게도 찬사를 마지 않는다.
지금은 없어진, 우기에는 두 면의 호수가 푹 잠기는 부레옥잠으로 꽉 찬 저지대가 그 시대에 아직 남아있던 낭만과 희망을 상징하는 듯 하여 더욱 쓸쓸해진다.
#줌파라히리 #저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