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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땅 ㅣ 문지클래식 4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평점 :
임철우 작가의 책은 처음으로 읽었다. 아마 5.18을 다룬 '봄날'은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읽지를 못했다. 무언가 너무 소중한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된 관점을 읽어버리거나, 결론을 들어버리면 내 것은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이 부러 '봄날'도 읽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하긴 5.18을 다룬 작품이, 과연 나의 경험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될 리도 없는데... 그냥 나의 게으름을 탓해야 겠다.
정말 게으름을 탓해야 겠다. 이렇게 훌륭한 작가를 이제야 만나게 되다니....!
그 시대의 낭만이랄까, 치열함 이랄까. 그냥 현실을, 역사를,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의연히 당당히 맞서 진솔되게 글을 쓰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요즈음 읽은 책 중 단연 이책은 최고이다!
한국전쟁이라는 온갖 협잡과 비겁함과 전도됨과 억움함과 그야말로 실타래 처럼 얽힌 시간들을 이렇게 진솔되게 쓸수 있는 작가가 있을수 있을까?
'곡두운동회'는 실은 완도에서 있었던 나주경찰들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 이며, '아버지의 땅'에 나오는 아버지는 누군가의 무수한 아버지의 모습이며, '그 밤 호롱불을 밝히고'의 두 모자의 사연, '뒤안에는 바람소리'.. 이런 소설들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전쟁의 참상을 당한 이들은 이보다 더한 처절함속에 살았겠지만, 인간의 필력으로 이렇게까지 표현할수 있는 사람이 임철우 작가 말고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사평역' ' 개 도둑' '잃어버린 집' '그물'...에서 70년대와 80년대초의 정서와 그 때의 처절함 또한 느낄수 있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춥고 초라한 완행선 간이역에서 만난 고단한 삶의 이야기들, 시대에 의해서, 삶에 치여서 더이상 삶을 연속하기 힘든 인간 군상의 모습들... 사회적 암울함과 함께 그들의 고난한 삶 또한 절실히 다가온다.
나는 한편 한편의 소설들을 읽으며 매번 차오르는 벅찬 감정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여기에 단편소설의 힘과 감동이 있다. 절정이라고 느끼는 순간 거기에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래서 감동의 여운은 더 크게 다가온 듯 하다.
이와 같은 글을 쓴 이는 이 사회의 모든 절망을 함께 했을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글을 쓸수 있는 도리가 있을 것인가?...
작가의 고향은 전남 완도였다. 아마 완도에서의 끔찍한 '곡두운동회'를 겪은 이들과 함께 살았기에 가능했으리라, 그와 함께 사는 이들의 군상을 옆에서 뼈속 깊이 공감하는 삶을 살았으리라... 그래야 이런 글들을 쓸수 있었겠지.
끝으로 나도 전라도 출신이라 이 책을 읽는 중 사투리가 나온 부분이 너무나 정겹고 반가워 좋았다. 그러면서 아마 다른지역 출신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문맥상 대충 넘어가고 있겠지 하고 혼자 '낄낄'대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나도 막상 일상에선 그런 단어들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간혹 하는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 내 아이들을 보며, 이래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것들은 항상 멀리 있다고 하더니.... 사투리도, 전쟁도, 외로움도, 쓸쓸함도.... 어쩌면 한발짝 멀리에서 보니 아름다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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