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레이놀즈 시리즈 3
피터 레이놀즈 지음, 김지효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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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키보다 세배는 길어보는 긴 막대에 페인트 붓을 묶어서 주황빛으로 둥그렇게 칠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큰 해와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아이보다 훨씬 커서 거대하게 까지 보이니, 여느 대가의 그림같이도 보인다. 그런데 그 주황빛 그림안에 '점'이라고 책제목이 써 있는것을 보니, 그 거대한 주황빛 둥그러미가 '점'인가 보다. 이렇게 거대한 둥그러미를 '점'이라고 할수 있을까? 태양이나 희망같은 이름이 더 어울릴듯 하다. 만약 이 그림에 색 칠하는 어린이가 없고, 주황빛 둥그러미 밖같에 커다란 액자 프레임이 있다면 분명 어느 대가의 미술 작품으로 보일것이다.

얼마전 우리나라 그림 중 가장 비싼 그림 베스트 10을 본적이 있다. 이수근 화백의 작품이나 이중섭 화백의 그림은 익히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보아온 그림 이기도 하고 '소'라든지, '빨래터'라든지 하는 구체적 주제가 드러나기도 하고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그 가격이 할만 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가장 비싼 그림의 1위~5위를 차지하는 김환기 화백의 그림은 캔버스에 단색조로 채운 그림들인데, 그림을 잘 모르는 나로써는 왜 그 그림들이 그렇게 비싼지, 그렇게 가치가 높은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그림들을 자세히 보면 뭔가 규칙이 있는것도 같고 작가 나름의 철학, 주제형상화가 되어 있는것도 같아 그냥 구체물을 그린것보다 더 심오하고도 귀해 보였다. 그 그림을 보면서 장자 천하편에 나오는 '至大無外 (지대무외) 至小無內 (지소무내)가 생각났다. '지극히 큰것은 바깥이 없고, 아주 작은 것은 안쪽이란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로 장자의 친구 혜시의 말이다.

김환기 화백의 그림이 비록 캔버스 안에 한정되어있지만 그 그림은 끝없이 크다는 는낌, 지극히 작은부분까지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이렇게 세기에 빛나는 그림으로 인정받고 추앙해 마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나의 짧은 소견이지만, 그림의 가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잘 묘사한 그림, 화려한 색채의 그림이 아니라, 화가 자신의 내면의 무엇인가를 온전히 쏟아부은 그 사람만의 독창적 화풍이 그림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지...

'점'이라는 그림책은 그러한 그림에 대한 작가의 철학이 담겨있는 그림책이 아닌가 한다. 표지의 커다란 둥그런 점은 그림을 그린 '베티'만의 그림에 대한 철학, 그림에 대한 편견을 깬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김환기 화백의 그림과 같은 가치를 지니는 대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듯 하다.

베티는 실은 처음에 미술시간 내내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학생이었다. 어떻게 그려야 할지, 무엇을 그려야 할지,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단 한 점도 그리지 못하고 그냥 내내 깊은 고민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미술시간은 끝났고, 베티 앞엔 다만 하얀 도화지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베티 앞에서 선생님은 '눈보라속에 있는 북극곰'이라고 해 주셨다. 하지만 베티가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다고 하자 무엇이든 그려보라고 하셨다. 베티는 가운데 툭하고 점을 하나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썼을 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베티의 그 그림을 액자에 고이 넣어 책상위에 걸어주셨다.

베티는 그까짓 점, 더 잘 그릴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수채화 물감을 꺼내 점을 그리고, 색을 섞어서 그리고, 점없은 점그림도 그리고, 큰 점, 작은점, 많은 점을 그린 그림을 내놓아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전시회까지 열게 되었다. 그야말로 그냥 찍었던 점 하나가 마침내 거장을 탄생하게 했던 것이다. 선생님의 그림그리는 아이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작은 점에서 그림을 출발해서 그림에 대한 열정과 그 전의 그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깸으로써 마침내 한 작가가 탄생하게 된것이다.

이 책 '점'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1. 그림이라는 것이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고정관점은 없다는 것.

2.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는 것.

3. 거장은 스스로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는 것.

4. 누구나 그림을 쉽게 시작할수 있다는 것.

등등....

이 중에서 나는 1번이 가장 맘에 와 닿는다. '至大無外!' 무엇이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틀에 박힌 고정관념은 무엇도 그 안에 담을수 없다. 무엇이든 담아낼수 있는 경계가 없는 큰 마음과 이상.

짧은 그림책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점그림책 #점그림책을 읽고 #지대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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