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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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어 나가면서 일순 오한을 느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니 어쩌면 애써 보지 않았던 그 세계의 한 복판에 내가 서 있는 듯해서였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누군가 내가 숨을 못 쉬도록 내리눌러 압박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후에 먹먹함이 밀려왔다.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를 둘러 볼 수 있다고 떠들어대던 우리는, 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보아 온 것일까.

 함께 하고 있는 자그만 논술모임의 얼마 전 토론 주제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인정되어야 하는가’ 였다. 대부분이 반대의 입장을 취한 가운데, 나는 나 자신도 제대로 납득하지 못한, 혼란스러운 상태로 찬성논조의 주장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전시를 겪어보지도 않은 우리 세대가 정말로 진정한 의미의 pacifism이란 걸 가지고 병역 혹은 집총을 거부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여 이루어지는 민간대체복무제는 이미 복무한 사람들을 김빠지게 하는, 그저 안위를 좇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바리데기」는 그것이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컴퓨터 앞에 편안히 앉아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자의 좁은 시각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전쟁은 죄 없는 사람들을 더 많이 죽이고 있다. ‘무찌르고, 쳐부수자’는 적대적이고 강경한 태도는 아래쪽은 남아돌고 위쪽은 굶어죽는 비극을 방치하는데 일조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전쟁으로 인해 스러지는 죄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오로지 어떤 한 국가의 이익을 위한 전쟁으로. 그런 상황 속에서, 평화의 신념을 갖는 것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일일 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언제까지 남북으로 맞서고 있을 것인가. 먼 이라크에 겨누어진 총부리를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한 뿌리 지척의 북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은 더욱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1년 6개월의 징역과 전과자 딱지를 감수하고서라도 그들을 감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일 게다. 

 사실 이 소설 어디에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최근 바짝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알아보던 주제였던데다 이 책을 통해서 그간 알기 힘들었던 ‘평화의 절실함’이 조금이나마 가슴에 와 닿았기에 관련지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만큼 읽은 이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것 같은 이 소설은, 이외에도 현대의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이를테면 북한 문제,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닥쳐올)이주민 문제, 세계화, 이라크 전 등등-과 소설의 이야기가 탄탄한 짜임으로 엮여져 있어 나에게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지지만, 무겁지는 않다는 점 또한 이 소설의 미덕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는 게 얼마만의 일이었는지. 아니, 그보다도 책 정말 안 읽으시는 우리 어므니가 이틀만에 이 책을 독파(?)해낸 걸 보고선 정말 황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재미없고 무거운 이야기 일색인 한국 소설보다는 가볍고 일상적인 얘기를 소재로 한 일본소설이 좋다는 이들에게 '바리데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소설은 일본소설의 일상성을 넘어선 또다른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단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면, ‘작가의 말’도 빼놓지 말고 읽기를. 말미 중의 말미에 밑줄 찐하게 긋고 두고두고 새겨두어야 할 말이 나온다.

“세계가 공유하는 ‘문예사조’따위는 없습니다. 자신과 한반도의 현재의 삶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것이 작가가 국경이나 국적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시민’이 되는 길입니다. 세계문단이 한국문학에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자신들과 비슷하게 흉내낸 것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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