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과 금성의 신화 - 남자와 여자의 언어는 정말 다를까?
데보라 카메론 지음, 황은주 옮김 / 스핑크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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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연애나 결혼 관련 고민 상담글들을 읽다 보면 남성과 여성의 차이 (유전적인 것이든 문화적인 것이든)로 많은 것을 설명하려는 답변들을 읽게 된다. '사람 안 바뀐다, 남자는 원래 그렇다'류의 내용 말이다. 저자 데보라 카메론은 왼손과 오른손의 차이 또한 신체적 차이인데 도대체 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까지 주목하지 않으면서,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해서는 이리도 많은 관심을 가지는지를 묻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왼손잡이는 전세계에서 10%에 불과하지만(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보다도 더 적은 5%대라고...) 남성과 여성은 각각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륜지대사라는 과업을 함께 지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고민하면서 비로소 '여성'인 스스로를 자각하고'남성'이라는 낯선 존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해서 더 이 가설에 무게를 싣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화성과 금성의 신화>의 저자 데보라 카메론은 기존에 학설과 이론이 내세우던 문화적 통념, 진화론적(유전적) 통념 모두를 반박하고자 한다. 남녀의 문제를 학습된 혹은 본유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간단한 설명으로 대체하려 한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여성은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고 말이 많다'는 부분은 18세기 무렵 문헌들에서는 반대로 기술되어 있다. 남성이 사회적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에 비해 언어적 능력도 뛰어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사용하는 어휘의 양 등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오늘날의 학자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 이론이다.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감정적 공유를 하기 어려워하고 공격적인 어투를 사용한다는 통념은 또 어떤가. 여성은 가십을 즐기고, 남성들은 뒷담화를 하지 않는 것일까? 책 92~93 양 쪽에 걸쳐 이름을 가리고 나열된 대화들을 살펴 보면, '성'을 가지고 이러한 특성들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러한 차이들은 많은 경우 공적으로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분위기나 질서의 사회인지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즉 젠더에 의한 차이보다는 집단 내에서 공유하고 있는 질서, 노동의 특징 등이 공적 발화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인 '화성과 금성의 신화를 넘어서'는 저자가 이 책을 쓴 궁극적 목적을 잘 보여주는 장이다. 서구권도 그렇겠지만 한국 역시도 그 어느때보다 남성과 여성이 대등하다는 생각이 높아지면서 남녀간의 갈등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 장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은 저자의 부모님이 결혼하던 1950년대에는 지금처럼 사소한 가사 분담이나 누구의 직업이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이 전무했다는 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무게의 추가 너무 명확하게 한쪽으로 쏠렸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고민 거리조차 되지 못했을 테다. 오늘날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았고 직업을 가졌으며 자아를 실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에 이전에는 부당하다고 문제 삼지 않았던 부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가장 쉬운 방안은, 여성과 남성이 같은 자리에 선 지금을 부정하고. 다시 한쪽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일 게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방안은 단지 구시대로 돌아가는 것일 뿐, 결코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물론 각종 원시 시대의 얘기를 끌어오며 인류의 본래적 차이 혹은 문화적 차이로 설명하는 것이 더 손쉽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젠 솔직해 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가? 결국은 더 '돌봄'에 적합하고 '희생'하기를 기꿔워하는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생산하고, 자발적으로 걸어올라온 계단을 내려 가도록 강요하는 데 급급한 것은 아닐까? 저자의 바람대로 이제는 더이상 이런 소모적인 발상을 멈추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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