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안티 버틀러 클럽(반 고양이 집사 단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를 읽은 지 얼마 안 되어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저자부터 번역자까지 집사인 이 책을 읽게 돼서 기분이 묘했다.

 

고양이 프루던스의 시점을 포함해, 등장인물들 시점을 옮겨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고양이의 시점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인간의 상상일 뿐이지만, 애정을 가지고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고는 쓸 수 없었을, 디테일이 있다. 발톱 갈기, 웅크림, 갸르릉 거림, 먹이 달라고 신호 보내는 행동들, 편하게 느끼는 장소, 입맛까지... 거의 고양이와 정서적 공감을 나눌 정도의 애정과 관심을 토대로 상상을 보탰기에 가능했을 리얼 아닌 리얼리티가 있었다. 아마존에서 검색해 보니 전작도 저자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이름을 딴 이야기.

 

사라가 길에서 입양해 3년간 사랑으로 키워온 고양이 프루던스를 사라의 죽음 이후 딸 로라 부부가 이어 키우면서, 실직, 부부 사이의 갈등, 임대 아파트 강제 철거(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로라의 어린 시절의 아픔 등을 프루던스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생각해 보면 사라의 진심이 로라에게 전달된 것도, 로라 부부의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도, 로라와 어머니 사라의 친구 애니스와의 화해 과정도, 결국은 프루던스를 통해 이뤄진 셈인데, 그 과정이 억지스런 설정 전혀 없이,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다만 이렇다할 사건 없이 평화롭고 단조로운 초중반이,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큰 사람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부분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좀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듯. 잔디밭에 누워, 혹은 흔들의자에 앉아 햇살 밑에서 읽으면 어울릴 것 같은 따뜻하고 목가적인 (조금은 먹먹하게 만드는 감성을 담고 있지만) .

 

문제는 좀 서둘러 출간했는지 오자/오역이 많았다. 출판사 이름값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웠다.

 

 

 

p206: 애니스는 창의적인 일을 하려 하나 그걸 헤쳐 나가려는 소양이 부족한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재능을 완벽하게 하라, 그것이 애니스의 종교였다. 

 

p466: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 살게 된 이후로 나는 항상 상자들 안에 있었다. 상자들을 없애버린다면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기억의 상자들을 없애버려야만 한다. 그래야 미래를 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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