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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씨앗일까? 2 ㅣ 샘터 솔방울 인물 15
황병기 외 지음, 유준재 그림 / 샘터사 / 2014년 2월
평점 :
다양한 분야에서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이 본인의 직업과 삶을 소개한 어린이용 도서.
각자 직접 썼다고 하는데, 일괄로 손은 본 듯 글체는 통일감 있게 정리되어 있다.
일단 소개된 직업이 뻔하지 않고 다양해서 좋았다. 여성 민항기 기장, 정규 학제를 밟지 않았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곤충 연구가, 한복 디자이너, 도선사, 한글 글꼴 디자이너, 국악인, 봉사시설을 운영자 등 다양한 삶을 소개한 점이 시리즈 제목 '나는 무슨 씨앗일까?'의 의도에 잘 부합한다.
어린이용 책이지만, 저자들의 삶에 대한 생각도 담겨 있어서 어른인 내가 읽기에도 얻을 게 있었다.
익히 알고 있는 이영희, 황병기에 대한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고, 책에 삽입된 도선사 윤병원씨의 정리 노트 사진에 느끼는 바가 있었고, 서영남씨의 한결같이 남을 위해 살아온 길도 감명 깊었다.
이영희, 석금호, 황병기는 글에서도 직접 언급했고, 나머지 분들도 글로 남기진 않았어도 살아온 길로 말해주는 공통된 점이, 돈이든 스펙이든 뭐든, 눈앞의 유불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하고자 하는 일은 과감히 했다는 점.
어린이 책이 교육적인 내용을 일부러라도 담으려 하는 거에 거부감이 있는데, 이 책은 각자가 자기 직업과 삶을 소개하는 형태여서, 그들의 걸어온 길 자체에서 감명 받고 얻을 게 있는 것이라 상당히 교육적인 요소를 담았음에도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애초 좋은 기획에, 내용도 어른이 읽기에도 얻을 게 있을 정도로 알차서 어린이용 도서가 갖추면 좋을(그런 요건이 있다면) 요소를 다 갖춘 책이었다. 재미로 승부하는 <좀비펫>과 성격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 책과 더불어 가장 잘 읽은 어린이용 책인 듯.
다만, 직업 용어들이 다소 생소해서 초등학교 저학년이 읽기엔 어려워 보이고, 3학년 이상은 되어야 읽을 수 있을 듯하고,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어야 저자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와 닿을 수(=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있을 듯.
===== 곤충 연구가 원갑제
p40: 자연은 제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조화를 이룹니다. 나비만 보아도 흰 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 부전나비 등 종류가 많지만 저마다 먹는 풀이 다릅니다. 다른 풀이 아무리 탐스럽고 싱싱하게 있어도 자기가 먹는 풀이 아니면 입에 대지 않지요. 그래서 그 지역에 자라는 풀을 보면 어떤 나비가 있을지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사람만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뜯어 맞추고, 자기 몫이 아닌 것을 탐내고 뺏으며 살아갑니다.
=====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p61: 한복을 만들며 돈을 먼저 따진 적은 없었답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일이라면 돈을 전부 써 가며 했지요.
===== 도선사 윤병원
p78: 실패의 원인은 바로 3무(無)입니다. '무관심, 무책임, 무기력'이지요.
p79: 어린 시절에 나는 부끄럼이 많고 소심해서 어떤 일에 용감하게 도전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배를 타고, 도선사 자격시험에 도전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용기란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어렵고 무서워도 참고 도전하는 것'임을 말이죠. 하고자 하는 일에 도전한다면 누구든 소중한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 한글 디자이너 석금호
p93: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어요. 하지만 나는 현실적인 조건이나 돈을 먼저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해야 할 일,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되면 묵묵히 해 왔지요.
===== 국악인 황병기
p107: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란 말이 큰 호소력을 가진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야망이나 도전 정신을 가져 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때그때 주어지는 것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일을 충실히 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 가야금도 친구에게 이끌려 우연히 배우기 시작했으나, 스스로 좋아 하게 되어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했습니다.
p115: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습니다. 하지만 나는 계획도 없고, 후회도 없는 사람입니다. 순간순간을 항상 충실하고 즐겁게 살고자 했을 뿐이지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매일 가야금을 하면서, 열심히 배우고 친구들과 즐겁게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