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고요 산책길 - 나무 심는 남자가 들려주는 수목원의 사계
한상경 지음 / 샘터사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브라보! 수목원 홍보를 겸한(내가 원체 삐딱하다ㅜ), 흔한 자연 예찬 하는 에세이 정도 생각했는데, 웬걸? 중학교 때 법정의 <서 있는 사람들>을 접했을 때의 전율까지는 아니어도, 법정의 글들을 연상케 하는 울림이 있는 수작이었다.

 

멸종위기 식물을 바라보며 꽃 피어 존재하는 순간을,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지금을, 가지치기를 하며 존재의 이유를, 우리가 떠나야 할 때를, 뿌리에 독성을 품은 할미꽃에서 외면에 묻힌 본성을 꿰뚫는 시선을, 벌거벗은 겨울나무에서 겉치레를 벗어던진 정직한 만남을, 멀리서 바라본 정원의 아름다움에서 인생을 넓게 바라보는 시선을, 안개 낀 정원에서 분주한 세상에서 떨어져 인생의 참된 윤곽을 바라볼 필요를, 멋진 조화보다 더 감동을 주는 이름도 생소한 야생화에서 초라하지만 꿋꿋한 우리네 삶을, 자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어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식.

 

한마디로 뒤표지 문구 그대로 "정원에서 인생의 지혜를 만나다"가 내용인 책인데, 다 읽고 갈무리한 것 정리하며 돌이켜 보니, 자연에 대한 예찬으로 시작해서 뭔가 교훈적인 걸 도출하는 데서 끝나는 패턴이 많아서, 평소 같으면 너무 공자왈이라며 싫어할 법도 했건만, 평생 한 꿈을 꾸며 그걸 이뤄낸 저자의 삶과 자연을 바라보는 진심 속에서 그런 사색을 펼치니, 읽는 동안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저자의 고집도 신념도 아니고, 진심과 애정을 갖고 한 평생 자연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자연스레 건진 각성들이기에, 어찌 보면 상투적일 수도 있는 교훈적인 메시지들도, 공허하거나 지루하게 들리지 않고 울림을 갖고 전달된다.

 

저자는 제주도 양봉장으로 신혼여행을 가고(p66), 횡성에 사과나무 배나무를 심고 주말마다 서울과 횡성을 오가며 가꿔가며 대학시절을 보내고(p83), 대학시절 아내와의 첫 만남에서 '농부가 되고 싶은 청년'이라고 소개했다는(p139), 한마디로 평생 나무 심고 기르는 삶을 꿈 꿔오다 마흔 넘어 본격적으로 시작해 지금의 아침고요수목원을 이뤄낸 인물. 오랜 기간 한 길을 걸어왔지만 그 애정은 전혀 식지 않아, 옮겨 심은 나무도 제 고향을 그리워할 거라는 (p169) 그런 애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에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진심으로 느껴졌다.

 

사진으로 실린 아침고요수목원의 풍광들도 어찌나 아름답던지... 가을까지 기다려야 하나, 요즘 같이 무더운 여름에 가도 괜찮으려나... 몸이 달아 있는 상태.

 

중간 중간 저자의 자작시들도 쉽고도 역시 진심이 전달되는 좋은 시들이었는데, 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탁치는 맛은 없었달까? 뭔가 2% 아쉬운 느낌이었다. 굳이 일부러 꼽자면 이게 유일한 흠(?)

 

2003년 출간된 책의 개정판이라는데 역시 책이 재출간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다. 이번 성공을 기반으로 당분간 근래 재출간된 책들 탐색에 들어갈 생각.

 

현재까지는 2014년 베스트 독서. 다시 한 번 브라보!

 


P.S. 내 꿈도 평창이나 제주에 툇마루 있는 한옥집인데... 작은 거부터 뭐라도 해야 겠다. 이래놓고 주말에 회사일 봐야 하는 팍팍한 현실ㅜ  

 

 

===== 프롤로그
p10: 실제로 꽃들이 피어 있는 시간은 짧지만 그 나머지 시간은 우리 마음에 피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목원의 그 나무들을, 그 야생화를, 그 들풀들을 사람들의 마음에 옮겨놓고 싶다. 수목원에 와서 그냥 분주하게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사라지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자연의 숲을 심어주고 싶다. 그냥 도시에서 어쩔 수 없이 바쁘게만 사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나무들을 심고 싶다. 야생초들을 심어놓고 싶다. 그래서 그 마음속에서 나무들이, 야생초들이 자라고 꽃 피고 열매 맺고 해서 그 가슴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 본문
p23: 존재하는 동안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킨다는 것. 나아가 자신의 삶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주며 마무리한다는 것. 나무들은 저렇듯 무심하게 '살아간다는 것'의 참 의미를 실천하고 있는데, 어느덧 인생의 가을 문턱을 훌쩍 넘어버린 나는......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어떤 열매를 기원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일까? 생각에 잠겨본다.


p26: 멸종위기식물인 털복주머니란 // 꽃 피어 존재하는 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지금이 소중한 것이다.


p35: '나의 얼굴은 남의 얼굴에 물에 비치듯 비치고, 나의 마음은 남의 마음에 물에 비치듯 비친다.' -〈잠언〉27장19절


p49: 오늘 내가 보는 것,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늘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고 분노하게 하는 것, 오늘 내게 알 수 없는 오해를 가져오고 통곡하게 하는 것들이 있을 때 조용히 안으로 잠기며 고향 땅에 묻고 온 한 그루의 아카시아나무를 떠올려볼 일이다. // 진실은 때로 오랜 시간을 요구할 터이니. 겸손과 인내로 그 시간을 견뎌낸 진실은 어떤 것보다 강렬한 향기를 뿜어낼지니.


p52: 사람이든 식물이든 잠깐의 감탄이 지속적인 감동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향기와 생명이 있어야만 한다. 향기와 생명이 깃들지 않은 화려함은 오히려 천박하고 경멸스럽다. 내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조화를 곱게 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p58: 남의 길에 놓인 돌을 치워줄 수 있는 사람, 그 길옆에 꽃을 심는 사람, 그래서 훗날 그 길을 걷는 누군가가 그 꽃을 보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p63: 젊은이들이여, 누군가가 첫눈에 당신을 사로잡아 당신의 마음이 흔들릴 때 양지쪽에 다소곳이 머리 숙인 할미꽃을 생각해라. 그러면 겹겹이 옷을 입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의 눈이 조금은 더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p91: 천천히 좀 더 천천히 거닐면서 난 때때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사십 대 초반, 내가 고민하며 나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반복해본다.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날 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주변인들에게 남을 것인가. 선생은 어쩌면 일평생 단 한 편의 강의를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나 자신에게 항변하고 있었다. 수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이뤄낸 교재며 노트들은 모두 다 망각될지라도 그가 살아간 모습만은 오래오래 제자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정직하게 살아갔는가 하는 것 말이다.


p99: 서로가 만나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때 아름다운 만남이다. 너로 인해 더 왜소함을 느끼거나 너의 수려함으로 내가 초라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행복한 만남이 아니다.


p130: 때때로 가는 길이 혼미하고 힘에 겨우면 높은 데로 올라 내려다보아라. 그러면 길이 보일 것이다. 그 길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인지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 지혜로운 자는 그 길 어딘가에 서 있을 자신의 모습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p135: 나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 삶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있다. 나무를 심어야 할 시기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삶은 외롭다. 땀 흘려야 할 여름이 무료하며 풍성한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빈곤해진다. // 긴긴 인생을 지나고도 열매 맺지 못한 자의 고독과 슬픔.


p161: 꽃들도 모두 별을 움직이는 바로 그 법칙에 순종한다.


p162: 염려는 우리의 현실이요, 삶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염려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우린 염려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살아가곤 한다.


p169: 그 나무가 오늘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싶다. "이사 온 나무는 그리움을 품고 산다"라고.


p192: 존재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남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 내가 태양을 바라보는 동안 내 뒤에는 그늘이 생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남의 태양을 가리고 서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라져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p198: 분주한 세상사. // 현란하게 출몰하는 시간 속에서 참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가끔 이런 안개 낀 날의 세상과 마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때문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사소한지 모르고 지내던 우리는 자질구레한 일상들이 자취를 감춘 자욱한 안개 속에서 비로소 참모습을 드러내는 인생의 윤곽을 바라볼 것이며 크고 작은 오솔길을 만날 것이다.


p211: 진정으로 성공을 꿈꾸는 자는 다른 이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감동을 줄 수 없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무리 규모가 커도, 아무리 많은 노력을 했어도 감동을 줄 수 없다면 그것은 실패다. 감동을 주지 못한 예술, 감동을 주지 못하는 책, 감동을 주지 못하는 수목원, 감동을 주지 못하는 여자, 감동을 주지 못하는 남자, 감동을 주지 못하는 선생....... 그들이 감동을 주는 데 실패 한 까닭은 한 가지 때문이다.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조화보다 황량한 벌판에 외롭게 핀 야생화가 더욱 감동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도처에 자극적인 유혹은 널려 있는데 진실한 감동이 희귀해지는 시대이다. // 감동이 그리울 때, 누군가가 나를 감동시켜 주었으면 하고 바라거든 당신만의 아름다움으로 세상과 마주 서라. 그 이름다움이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순간, 세상은 무한한 감동으로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p219: 왜 멀리서 바라보는 곳은 항상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 흥미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또 왜 그렇게 자주 내가 가진 것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데 실패하는 것일까? // 아침고요수목원에는 여러 개의 정원이 있다. 그 정원의 내부에 서 있을 때는 자신이 서 있는 정원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형태와 내용이 이루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기가 힘들다. 그러나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정원을 바라다 볼 때, 정원의 형태와 아름다움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도 이런 정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곳에만 머물 경우,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곳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만한 기준과 시선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러기에 사람은 때때로 삶이 갑갑하고 짜증난다고 생각될 때 잠시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떠나 먼 곳으로 가볼 필요가 있다. 그 곳에서 자신이 머물던 자리를 관조하며 바라볼 필요가 있다. // 행복은 그것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의 것이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는 것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224: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인가? // 전정을 하면서 생각한다. 때로 정신없이 살다 보면 나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피해를 받고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는 주변 사람들을 잊을 수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은 존재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남에게 폐를 끼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목(古木) 곁에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이치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사라져야 할 시기까지 예상해야 할 것이다.


p231: 들에 핀 야생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비록 남들에게 내세울 것 없는 수수한 이름의 꽃일지라도 오늘 하루를 위해 피어나는 꽃이기에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p235: 침묵 //// 지금은 차라리 // 메마른 들풀과 차디찬 강물이고 싶다 // 초조한 이들은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 거짓된 이들은 정말이라고 언약하지만 // 이미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 정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말없이 길을 가고 싶다 // 조용히 사랑하고 싶다 //// 그러나 슬픈 겨울이 지나가면 // 아픈 진실은 드러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p258: 언젠가 다가올 내 인생의 겨울이 다소 쓸쓸하기는 하겠지만 공허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p272: 진정으로 소중한 관계라면 어느 정도 거리를 갖자. 그것은 상대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며 서로의 사랑에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완충지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공간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는 더 튼튼하게, 아름답게 다져질 것이다.


p276: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 작은 꽃들을 허리 굽혀 살펴보는 동안 나는 또 누구에게 이렇듯 이름 모를 수많은 풀꽃 중의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일까, 아픔이 밀려왔다. // 작은 꽃들, 그렇다. 우린 서로 작은 꽃들이다. 평범하지만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작은 꽃을 피워갈 존재들.


p279: 서둘러 인생길을 가는 자는 아무것도 진정으로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천천히 가는 자는 인생의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성급하여 급히 말하는 자는 아무것도 바꾸어놓지 못하지만 참고 천천히 던진 몇 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 숲은 오늘도 내게 속삭인다. //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라.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p290: 이제 우리 저 찬 바람이 부는 들판에서 겨울나무처럼 만나자. 모든 겉치레는 벗어던지자. 그럴 듯한 논리도 치우자. 벌거벗은 나무처럼 정직한 모습으로 만나자.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자. 봄을 이야기하자. 희망을 이야기하자. 그래서 우리 서로에게 텅 빈 가슴을 채워주는 겨울나무가 되자.


p292: 모든 나무 심는 사람은 꿈을 꾼다. 아니, 꿈꾸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다.


p292: 땅은 멀리서 바라보기에 아름다운 곳이다. 땅은 시 속에서 아름다운 곳이고 노래 속에서 아름다운 곳, 그림 속에서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그 땅에서 내가 직접 땀을 홀리며 살아야 될 때, 그곳의 삶이 나의 현실로 다가올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멀리서 정원을 바라보는 자는 그 정원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을 보고 있지만, 그 정원을 가꾸는 자는 끊임없이 돋아나는 잡초를 보게 된다.


p305: 거듭 말하지만 내일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꿈을 꾸는 동안 그는 행복할 것이며,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 있어 그의 삶은 더욱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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