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 반짝하고 사라질 것인가 그들처럼 롱런할 것인가
이랑주 지음 / 샘터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세상의 온갖 시장을 보고 배워 오겠다고 떠난 일종의 테마 여행기인 셈인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 읽었다. 한 마디로 목적한 바를 이룬 책.


애초에 실용서에서 이런 걸 따지는 나도 병이지만ㅜ, 안 적어두면 병날까봐 언급만 해두자면... 사실 글 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이런 유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나친 숭배나 과장도 많았고, 실무적/실용적 관점에서 내내 얘길 풀어가다가 급작스레 '그래서 변해야 산다~' 하는 식의 자기계발서식 결론으로 마무리 짓는 뜬금없는 전개도 많았고... 저자 입장에선 억울하겠지만 '작품'의 잣대를 들이대 자잘하게 따지자면 흠이 많았다.
하지만 그럴 듯한 제목 달고, 뻔한 얘기만 주절대다가 끝나는 얻을 거 하나도 없는 실용서가 대다수인 세상에, 세계의 시장들에서 우리 시장들이 살 길을 찾고 제시해 보겠다는 본래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는 면에서 이런 작은 흠들을 다 덮고도 남을 정도로 좋은 내용이었다.


작가가 따로 정리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소개한 시장들의 사례에서 영감 얻을 게 많았다. 진열 방식, 상품 구성, 가격 정책, 인테리어, 이벤트, 미끼 상품(?) 아이디어까지, 한번쯤 생각해 봤음 직한 것들부터, 국내에 당장 도입해도 먹힐 것 같은 신선한 아이디어도 여럿 있었다.


신선했던 본문과 달리 에필로그에선 '본질'을 강조하며 뻔한 얘기로 마무리하는데. 너무 당연한 얘기라 저자도 좀 신선한 화두를 던지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근데 생각해 보면 저자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이 아이디어, 저 아이디어 해도 결국 그게 정답인 걸 어째.


한국에서 전통 시장의 생존 문제는 큰 화두다. 동네 슈퍼나 음식점들도 마찬가지겠지. 근데 마냥 전통 시장이 좋다고만 할 게 아니라 왜 안 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매년 반복되는 기자가 차례 준비를 마트와 전통 시장에서 해봤더니 시장이 더 싸더라~하는 기사 같은 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거다. 개인적으로 젊은 층이 시장에 안 가는 이유 중엔 '두려움'이 가장 큰 요소가 아닐까 싶다. 물정 모르는 나 같은 젊은(?) 남자가 시장을 갈 때 드는 느낌은 뭔가 던전 들어가는 느낌이란 거다. 잘 아는 어머님은 시장이 확실히 싸고 좋다고 하시지만, 어머님과 같이 몇 번 가봤던 그 집도 나 혼자 가니까 대접이 다르더라.


전통 시장이 죽네 마네, 대형마트 의무휴업이니, 통큰 치킨 논란, SSM이 골목 상권을 죽인다느니, 전통시장 상품권이니 별의 별 시도, 별의 별 논란이 많았지만, 솔직히 자본의 힘이니 뭐니 다 관두고, 안 되는 집은 안 되고 되는 집은 되는 거다.
아이스크림 한 개 사면 툴툴 거리며 대놓고 싫은 티를 내던 예전 울 집 앞 동네 슈퍼, 그 당시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 때 SSM이 생겼으면 경제민주화니 뭐니 다 관두고 그 집은 절대 안 갔을 거다. 어머니랑 같이 갔을 땐 참 저렴한 가격에 친절했던 집인데 근처 들릴 일 있어 혼자 갔더니 못 알아보고 어마어마한 가격을 불렀던 광명시장 어느 닭&오리 가게, 임신한 아내가 딸기 먹고 싶다고 했다고 나름 최상품 구해다 주겠다며 의욕에 찬 친구 녀석과 일부러 들린 영등포청과시장에서 정말 실한 놈 구했다고 뿌듯해했는데, 어머니가 가격 듣더니 한참을 웃으셨던 기억ㅜ


논란이 되어 없어졌지만 통큰 치킨이 상권을 죽인다고? 요즘 붐이라 우리 동네에도 가격 파괴 치킨점이 꽤 생겼다. 나도 몇 번 가봤고 꽤 괜찮긴 했다. 하지만 나도 동네 친구들도 여전히 거의 2배에 육박하는 가격을 고집하는 원래 가던 특정 치킨집만 간다. 왜? 딱 봐도 좋은 닭을 + 염지 잘 해서 + 잘 튀기거든.


본질 + 마트에 없는 무언가를 갖추면 되는 건데, 그 '무언가'가 어려워 보이지만, 책을 읽어보면 별 것도 아니다. 자신의 가게에, 일에 애정이 있으면 누구나 생각해 봤음직한 작은 것들이다.

 

이런 노력들이 어떤 특정 가게가 아닌, 시장 구성원 모두가 한결 같이 그런 분위기라면 그 시너지는 말할 것도 없을 듯.


간만에 '소기의 목적을 이룬' 실용서였다.

 

 

 

 

p4: 아는 세계에서 모르는 세계로 넘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 클로드 베르나르


p9: 모험을 시도하지 않으면 기회도 없다. 드라마도 없고 가슴 뛸 일도 없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도 경계에 서 있으면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된다. 내 두 발로 경계를 넘어야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p34: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난 김병완 작가는 말한다. // "힘을 빼면 더 빨라지고 더 강해진다."


p45: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각도다. 나의 가치를 올리고 오랫동안 살아남는 방법은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나의 각도를 갖는 것이다.


p45: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 더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은 깊이 있는 사고, 형식을 파괴해 본 경험에서 온다. // 선택했다면 이제 무섭게 집중해야 한다. 일탈을 두려워하지 말자. 보다 얼마나 더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남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각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p47: 변하지 않으면 변질된다


p105: 부디 남들과 똑같아지려고 하지 마라. 평범해지려고 하지 마라.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강해서 평범해지는 것보다 자신의 특별한 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훨씬 빠르다.


p117: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면 단골집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p127: 선물용 비싼 과일 바구니 말고, 다양한 과일을 담아 만 원에 한 바구니씩 만들어서 판다면 대박 날 것이다. 제철에 꼭 먹어야 할 과일 삼인방, 예를 들어 사과, 감, 귤을 각각 만 원씩 팔 것이 아니라 이 세 가지를 모아 한 바구니에 만 원씩 판다면 고객들에게 당연히 사랑받지 않겠는가.


p143: 고객은 매장 입구에서 첫인상을 결정한다. 멋진 상품을 많이 팔 것 같은 곳, 별 볼거리는 없을 것 같은 곳, 비쌀 것 같은 곳, 쌀 것 같은 곳...... 그 이미지는 문밖에서 결정된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뭔가를 읽히려면, 10초 이내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매장의 메시지와 내용을 조절해야 한다. 너무 많은 메시지는 오히려 시선을 회피하게 할 수 있다.


p198: 그간 나는 내가 본 것, 내가 아는 것만이 정답이라 생각했다. // 사람은 자신이 보지 않은 것은 아예 없는 것이라고 믿어 버린다.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존재를 부정 한다. 설사 어딘가 있다 하더라도 알고 싶지도 않고, 알기도 싫고, 지금 그대로가 편안한 것이다. 많은 것을 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위대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 부른다. // 화가 폴 호건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생선 세운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세워진 모습을 상상할 순 없었을까? 어딘가 더 나은 방법이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 할 수 있는 열린 사고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넓은 마음만 있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위대해질 수 있다.


p199: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삶에 대한 자신만의 각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해답이 될 수는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고 배운 것을 다시 파괴하는 용기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최고의 각도인 것 같다.

 

p216: 백 년 세월은 내가 한 시간 더 일찍 문을 열고, 한 시간 늦게 문 닫는다고 해서 좁혀지는 간격이 아니다. 기존에 하던 형식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백 년이라는 시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p301: 대박 매출을 기록할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물건을 파는 나의 관점이 아니라 나의 물건을 선택하는 고객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한 번쯤은 다르게 생각해 보라. 한 번쯤은 입장을 뒤집어 생각해 보라. 그의 마음이 되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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