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오경아 지음 / 샘터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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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샘터 잡지에 연재하는 가드닝 기사가, 딱 2쪽짜리 짧은 글임에도, 아파트 사는 우리 집에서도 가능하겠다 싶은 쉬운 주제를, 삽화와 더불어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잘 다뤄서 잘 읽고 있던 참에 이 책을 선택했다.

 

'엄마'가 언급된 책 제목에서 단순히 포근함, 따스함, 편안함을 상징하는 정도의 표현을 생각했는데, 저자에게 서른 중반에 연이어 겪은 부모님과의 이별이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던 듯 하다. 방송작가로 십수년을 일했던 저자가 서른 아홉에 가드닝을 공부하러 늦깎이 유학을 떠날 결심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던 듯.

 

나도 서른 중반 넘어 경력 관리니 성공의 길이니 집어치우고 1년 넘게 소위 '딴 짓'을 해봤는데,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건 확실하지만, 동시에 이게 잘하는 짓인가 하는 의문, 주변의 부러워하면서도 별종 취급하는 의문의 눈길, 뭐 먹고 살지? 같은 현실적 경제적 고민에 결국은 항복하고 얼마 전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왔는데ㅜ, 가정도 있는데 서른아홉에 하나 있던 집 팔아 유학 가서 6년을 공부한, 저자가 대단하면서도, 본문 중에 행복함 속의 고뇌가 종종 드러나는 데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 많이 공감됐다.

 

서두가 길었는데, 저런 내용은 다 곁다리고 결국 이 책은 주인공은 레이크 디스트릭트. <오만과 편견> 영화 보다 도대체 영국 어디에 저런 곳이? 하며 검색해 봐도, 2011년 영국 가며 조사했을 때도(못 가 봤다ㅜ), 늘 나오던, 다들 그렇게 칭송하던 '기막힌' 풍경의 그 곳에, 저자가 유학생활을 마무리 하며 6년만에 딸과 들러 적은 단상을 엮은 책이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타고난 자연 자체도 대단하지만, 많은 이들의 남다른 보존 노력이 있었기에 유지될 수 있었던 거라는 걸 알았고, 중간 중간의 사진만 봐도 숨이 헉 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도처에 등장. 이상한 건물이나 전망대 같은 게 불쑥 튀어나와 방해하지 않는 풍경이란 게 감동을 더 키운다.

 

다만, 책 내용이 겉멋 없이 수수하고 솔직한 단상들이어서 부담 없이 읽힌 건 좋았는데, 글맛이랄까? 짜임새는 좀 부족했다고 본다. 하긴 이 책 컨셉에 너무 쫀쫀한 글들이 담겨 있었으면 더 어색했을 지도 몰라.

 

 

 

p11: 그때부터 난 내게 허락된 삶의 시간을 믿지 않게 된 듯싶다. 내일이 온다고 누가 나한테 약속을 해준 적도 없는데 왜 난 내일이 온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을까? 이 시한부 삶에 왜 난 10년 후, 20년 후를 걱정하느라 지금의 사는 재미를 놓치고 있었을까? 그래서 결심했었다. 삶이 그렇게 내게 뒤통수를 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이게 너무 겁 많고, 소심했던 내가 갑자기 두 딸을 데리고 영국 유학을 결심하고 전 재산이 집 한 채인 사람이 그 집을 팔아 영국 정원을 즐기며 지난 6년을 산 어이없는 이유다. 하지만 맘대로 살아온 지난 6년 동 안의 내 삶에 전혀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삶을 살아도 아쉬움과 미련은 역시나 생기게 마련이구나, 또 다른 교훈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늘 같은 색이었던 내 삶에 참 푸르고 싱싱했던 '내 나이 서른아홉'에서 '마흔다섯'이 있었음에 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p33: 멀리 떠나왔던 건 결국 다시 돌아가기 위한 길이었다. 떠나오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도 있었다. 하지만 떠나오지 않았다면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영원히 몰랐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도 해본다.


p109: "너, 어른이 된다는 게 뭔 줄 알어?" // "글쎄?" // "인생이 별거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거. 근데 그 별것도 아닌 인생이 죽도록 힘들다는 걸 알게 되는 거."


p124: 마흔의 중반 고개를 넘는 지금도 나는 내가 이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 답이 없다.


p153: 호수의 물결이 햇살에 정신없이 반짝거린다. 내 눈에 이토록 아름다운 반짝거림이 실은 잔물결의 부대낌이다. 삶이 그런가 보다. 나에게 지독한 부대낌이 누군가의 눈에는 빛나는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처럼!


p172: 이 삶이 지금보다 천천히 흘러가기를, // 이 삶이 지금보다 덜 싸우며 살게 되기를, // 이 삶이 지금보다 조금 더 초록이기를,


p259: '너무 작고 초라한!' 이 지구에 기가 눌리는 걸 어쩔 수 없다. 이 산에 흩어져 있는 바위보다 더 작은 나다. 이런 내가 왜 지구를 다 짊어질 듯한 걱정으로 이 짧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고 어리석다.


p327: 너무 잘생기고 예쁜 사람 앞에서 서면 주눅이 드는 것처럼 멋있고 화려한 정원은 맘을 편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박해서 푸근하고, 만만해서 만나면 얘기가 술술 풀리는 사람처럼 그녀의 정원은 정겹고 편안했다. 이 만만한 정원에서 베아트릭스는 매일 식탁에 올릴 채소와 허브를 따고, 그걸로 요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 정원이 얼마나 화려하고, 얼마나 많은 상징과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것일까? 내가 심을 수 있을 정도의 꽃을 심고, 내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채소를 길러낼 수 있는 곳이라면 이걸로 정원은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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