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 어느 지방 방송작가가 바라본 노동과 연대에 관한 작은 이야기
권지현 지음 / 책과이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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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를 보면 작가 권지현은 20년 차 방송작가이자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영남지회장을 맡고 있다고 되어있다. 제목에 이은 ' 노동과 연대에 관한 작은 이야기'라는 부재가 부담스러웠던 것은 방송작가 노조의 지회장을 맡고 있다는 소개 때문에 혹시 너무 노조 편향적인 글이 많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PART3에 노동과 연대에 가치를 생각하며)에서 노조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기는 하지만 마치 오랜 세월 내공이 쌓인 사람처럼 절대 급진적이거나 자신들의 이야기만 옳다고 보채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세상의 비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본인의 나아갈 방향과 목적이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조용하고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며들듯이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고요한 밤 라디오를 듣던 한 소녀는 글쓰기를 통해 꿈의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간다. 글쓰기의 고단함은 결국 스물셋의 나이에 방송작가의 길을 가는데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이 책은 작가가 방송작가의 일을 시작하고 대부분의 선배 작가들이 방송작가의 열악함을 내세우며 다른 길을 찾으라고 할 때에 모두가 반대하는 방송작가의 열악한 그 이유가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져 계속 방송작가의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쪽으로 곁눈질하지 않고 한길을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쉽게 읽힌다. 글 초반에는 너무 뻔한 일들을 너무 쉽게 쓴 거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지만 책을 다 읽고 알았다 20년 차 작가는 독자들에게 사연을 읽어주듯 쉽고 편하게 다가가려고 오히려 정제된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글을 어렵고 뭔가 있어 보이게 복잡한 어휘들을 가져다 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런 글은 독자로 하여금 곧 외면당한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겉멋을 모두 빼고 솔직 담백한 내면의 이야기들까지 읽고 나면 라디오에서 한편의 긴 사연을 들은 것 같다. 작가는 20년의 세월 동안 어려운 말들을 어렵지 않게 갈고닦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것은 아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넘어지지 않기위해 그들만의 공간에 머물러 있을뿐, 우리 곁에 늘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보이는 대로만 판단했던 닫힌 인식과 왜 보이지 않는지 질문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일상이 그들을 없는 존재로 만들었을 뿐.

99페이지.

작가의 시선은 일관되게 따뜻하다. 어떤 유명인의 성공담보다는 열악한 노동자, 장애인, 눈 돌리면 볼 수 있는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사연을 쓰기를 원하고 대충 듣고 마는 것이 아닌 직접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소통하고 행동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사회적인 차별에 대한 본인 의견도 분명한데 오래된 사회적인 편견,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관습에 스스로도 힘들었다는 솔직한 의견, 특히 엄마로서 책임 지워지는 일들에 대하여 '엄마를 돌봄 노예로 박제할 뿐이다' 176p라는 거침없는 표현까지도 서슴없이 사용한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어서 같은 감정과 채무감을 느끼는 여성이자 엄마로서 작가의 거친 표현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책을 읽는 내내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의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이야기를 나눈듯하다. 방송작가의 길은 책에 나온 그대로 아직은 많이 열악한 것이 맞는 것 같다.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멋있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아직은 고용문제 역시 많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방송에서의 화려한 부분만 보고 방송작가의 꿈을 키우는 후배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이들에게 이런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좋은 선배가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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