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뱀파이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 고블 씬 북 시리즈
송경혁 지음 / 고블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짐짓 웃음이 났다. 아니, 거짓말이다. 말 그대로 빵 터졌다고 해야 맞다. 하지만 그 누가 나를 보고 손가락질할 수 있으랴. <충청도 뱀파이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 이 제목을 보고 웃지 않은 자만이 내게 돌을 던질지어다. 그런데 왜 웃음이 났을까? ‘충청도뱀파이어며 그렇게 낯설거나 이상한 단어가 아니거늘. “빠르게 달린다는 너무나도 평이한 문장이 아닌가, 이게 왜 웃길까? 내 나름대로 찾아낸 답은 익숙함과 어색함 사이에서 오는 신선함때문이 아닐까 싶다. 충청도와 뱀파이어, 비교적 익숙한 두 단어도 별안간 이렇게 섞이니 무척 어색하다. 서울도 아니고 제주도 아닌 하필 충청도라니. 게다가 클리셰를 부수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 이 익살스러움에 한바탕 웃었다면 이제는 하릴없이 그의 이야기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수밖에.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건 대체로 익숙하면서 어색한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동창이지만 누군지 언뜻 떠오르지 않는 친구. 유일하게 남은 친척이지만 남보다 거리가 먼 외삼촌. 내게 도움을 주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계 제약회사 직원. 같은 일을 하는 동료지만 국적이 다른 이주노동자. 유일하게 내게 편안함을 주는 동류인 부모님은 이미 사고로 세상을 떴다. 남은 세상은 내게 익숙하지만 동시에 어색한, 이상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또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각자 어설프고 불완전한 존재로 서로 오해하고 물어뜯지만(작중에서 문자 그대로 물어뜯는다’), 그로 인해 오히려 각자가 개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강력하고 생각보다 빠르게 달리지만 몰개성한 뱀파이어가 아닌, 유약하고 쉽게 상처입지만 서로 다른 개인이기에 오히려 더 강한 인간’. 익살을 가장하여 재밌게 썼지만, 이 이야기는 결국 익숙함과 어색함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가족이나, ‘베스트 프렌드는 없지만, 적당히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관계 속에서 서로 돕고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게 바로 인생이라고 넌지시 속삭이는 기분이다.



 권말에 실린 작가의 말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세상의 모든 이가 나를 버린 것 같아도, 아니 실제로 버렸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한 명만 있다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당신에게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사람이 있기를, 또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기를.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우리 사이에서 피어나는 용기가 오늘 하루를 또 살아가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섯 번째 2월 29일
송경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3월
평점 :
품절


만화 <지뢰진>의 작가 타카하시 츠토무는 시리즈 말미에 심장 이식을 받은 킬러 이야기를 그리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심장 아니면 뇌?" 그리고 2022 <여섯 번째 2 29>의 저자 송경혁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람을 죽이는 건 무엇일까? 총 아니면 말?"


우연히 습득한 권총으로 자신이 나온 불법촬영물을 찍고 공유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주인공 현채. 성관계 장면을 불법으로 촬영한 전 애인과, 영상을 최초로 유포한 또 다른 주인공 수현은 이렇게 항변한다. “고의는 아니었어”. 그들은 묻는다.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은 사건, 고작 야동하나 찍고 돌려 본 일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이로 인해 계획에 없던 무고한 피해자 한 명을 포함하여 최소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채의 복수는 정당한가?


현채의 시간은 영상이 웹에 떠돌아다니는 걸 직접 목격한 순간부터 멈춘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대인기피증으로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사회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이 된다. 꼭 총으로 사람을 쏴야만 살인인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옆에 있는 뻔히 산 사람을 죽이는 말과 행위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시간을 만드는 행위는 과연 살인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세상이 벌해주지 않는 악당을 스스로 벌하는 건 과연 정당한가? 사뭇 건조한 분위기 속에서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가 극명히 뇌리에 꽂힌다.


빨간 마후라영상이 나돌던 시절이 3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N번방 사건은 어떻게 되었나. 그 방에 있었다던 수많은 사람들 중 처벌을 제대로 받은 사람은 몇이나 되나. 내 주변에서 선량한 시민의 얼굴을 한 악마들이 얼마나 많이 숨어 있을 것인가. 누군가는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


긴장 넘치는 스릴러를 이끌어 나가는 저자의 스타일리시한 문체는 두 말 할 나위가 없으며,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229일이라는 장치가 재미를 더한다. 비슷한 장르인 야쿠마루 가쿠의 <돌이킬 수 없는 약속>과 흡사 비슷한 분위기면서도, 누구나 곱씹어볼 만한 사회적 이슈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읽은 후에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이다.


사람을 죽이는 건 무엇일까? 총 아니면 말? 객관식 문제의 답은 한 개가 아닐 때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