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 라는 시간은 참 오묘한 시간인 것 같다.
어찌 생각하면 아침형 인간에게는 하루 중 무엇을 하기에도 어중간한 시간일 수도, 느지막히 하루를 시작한 이들에게는
활기차게 시작하는 시간일 수도, 그리고 하루 중 가장 나른하고 졸리는 시간일 수도, 한 낮이 저물어가면서 서서히 긴
햇살이 드리우기 시작하는 아스라함이 있는 시간인 듯 싶다.
<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는 서울에서 활동하며 서울을 품었던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동네의 고택들을 서울에 머물며
서울에 대해 글을 쓰고자 했던 저자가 직접 돌아보며 그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예술가들의 체취와 흔적을 찾아내어
같이 산보를 떠나 듯 우리에게 나직히 들려준다.
어느 한 방면의 예술가에만 국한되지 않고 건축가, 문학가, 미술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있기에 저자의
풍부한 상식에 놀랍기만 했다.
책 속에 소개된 곳들은 겨우 15여년의 서울 생활로 내가 직접 가본 곳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지명을 많이 들어봤을 만큼
제법 유명한 곳도 있고, 낯선 곳도 있고, 알고 있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곳도 있어 저자의
상상력과 감성이 느껴졌다.
예술인들과 저자가 머물렀던 장소를 하나씩 연결지어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 소개하기에 어디든 마음에 드는 작가부터,
마음에 드는 장소부터 읽을 수 있어 좋았는데, 난 내가 좋아하는 '윤동주의 시작 공간' 부터 먼저 읽었다.
학창시절 그의 생애에 대해 제법 공부를 했다 싶었는데도,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와 반갑기도
하고 비참하게 절명한 그의 생애가 다시 한번 되새겨지는 듯해서 안타깝기만 했다.
언제나 그 자리는 많은 사람들이 늘 지나다니는 거리, 건축이지만, 그 곳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예술가들의 역사와 인물, 건축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그 곳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고 앞으로
그 곳들을 지나다보면 이 책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