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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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있는 '소년'이라는 단어에 뻔한 상상을 거두길 바란다.

'우주'라는 단어로 이 책이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추측도 금한다.

처음 소설 제목을 보고 공상과학 청소년 소설쯤으로 생각했다. 책 두께가 만만치 않다. 소설 마지막 옮긴이의 글까지 포함하면 695페이지다. 읽어야 할 책의 두께에 놀랐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이 정도 분량이면 상하 2권, 1~3권으로 만들 수 있는데 한 권으로  만들어 준 출판사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를 듣는 소년은 루스 오제키의 장편소설이다.  제목을 보고 청소년 소설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은 청소년 소설이 아니다. 아,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소년 '베니'가 주인공이니 청소년 소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구나.

사람과 자연, 동식물, 사물, 모든 세계를 아우르는 모두의 이야기다. 철학, 인문학, 종교, 예술, 교육, 환경 등등. 이렇게 방대한데 소설이 되나? 된다. 아주 조화롭게.

루스 오제키란 작가가 8년 동안 집필하며 그 어려운 걸 해 낸다.


작가 소개

루스 오제키(1956~ )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혼혈아로 어린 시절 괴롭힘을 당했고 정신적인 문제를 겪었다. 소아정신 병동에 입원하기도 했다.

스미스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나라대학에서 일본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뉴욕에서 영화 아트디렉터로 경력을 쌓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이후 소설 창작으로 영역을 옮겼다. 2013년 발표한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 A Tale for the Time Being》는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2022년 여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스미스칼리지 문예창작과 교수. 선불교 승려이기도 하다.

루스 오제키/정혜영/인플루엔셜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소년과 말하는 책의 마법 같은 대화

  듣는 소년, 말하는 책이라. 책의 홍보 문구인데 포인트를 확실하게 표현했다. 문장을 잘 뽑는다. 뉘신지 모르겠지만 훌륭하십니다.

 소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열두 살의 소년이 아버지가 죽고 사물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며 이야기를 시작된다.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소년 베니는 여러 소리 속에 혼란을 겪으며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소년 베니가 자신의 책을 만나고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소년의 이야기는 1인칭으로, 서술자 책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면 된다. 여러 등장인물과 그들의 속내를 표현할 방법으로 작가가 선택한 방법이다. 중요한 등장인물로는 엄마, 마약 중독에 정신적 문제가 있는 아름다운 소녀 알레프, 휠체어를 타는 예술가 B맨, 선불교 승려 아이콘 등이 있다.

소년 베니가 상실을 극복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소설 속에 또 다른 책이 등장하는데 액자 소설 형식도 있다. 뭔가 좀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자연스럽다. 읽다 보면 소설과 소년 베니의 대화도 누가 말하는지 헷갈릴 정도로 하나의 이야기다. 천재적 소설가의 능력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사물의 소리를 들으면서 혼란스러운 베니는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거부의 과잉 행동을 한다. 결국 베니는 정신과 의사와 마주하고 분열정동장애 전구 단계라는 진단을 받는다. 베니의 마음을 독자인 내가 안다. "베니가 사물의 소리를 듣는 게 맞다고!" 내가 대신 말해주고 싶다. 현실에서도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우리는 그들을 미쳤다고 말하고 의사는 진단을 내린다. 낙인이 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어느 것이 진짜인가? 나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미친 사람이라 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이해불가에서 이해를 해 줘야 하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을 읽다 보면 감탄이 나온다.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구나 싶어서.

피부에 '나'로 끝나고 '너'로 시작하는 경계선이 표시되어 있다면 그날 밤 그들은 그것을 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 p.55

오해마시라 소년 베니가 아닌 베니의 부모가 성인 남녀로 만나 사랑을 나누는 상황이다.


"그건 한때 모래였어요."베니가 말했다. "모래였던 때를 기억하죠. 새들을 기억하고 새가 걸어 다니며 작은 흔적을 만들 때 그 발이 어떤 느낌인지도 기억해요. 그건 유리가 되고 싶어 한 적이 없어요. 새를 좋아해서 창문에서 새들을 지켜보기를 좋아했죠. 그래서 울었어요. 내가 유리창을 치면 안 되는 거였는데 하지만 울음을 멈추게 해야 했어요." 그가 눈을 들었을 때 1억 개의 걱정과 혼란의 주름으로 쭈글쭈글한 늙은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신경 쓰지 마세요."  -p.110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독기 어린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깨물고 싶어져요."
"좋아." 그녀가 움찔하면서도 안 그런 척하며 친절하게 말했다."나를 깨물고 싶어?"
"아뇨!" 그가 부아가 나서 말했다. "선생님의 말이요 그걸 깨물어서 뱉어내고 싶어요!"
-p.426



인상적이고 공감이 가는 문장이다.

나는 자네를 믿는다네. 그건 그 의사의 문제야. 자네는 자네의 문제만을 처리할 수 있어. 자네가 목소리를 듣는다면, 도와주는 게 자네가 할 일이야. 자네는 비서가 되어야 해. 대필자가 되는 거지. 혹시 대필자가 뭔지 아는가? 그건 받아쓰는 사람이야. 받아쓰기가 뭔지 아는가? 그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적는 것이지. 어쩌면 그게 시야. 어쩌면 그게 이야기이고. 남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자네가 목소리에 형상을 부여하는 걸세. p.356

 

나를 따라다니며 내 인생을 묘사하는 책이 있다고 누구에게 말하면, 나를 영원히 병원에 가둬버릴까 봐 두려웠어. p.424


 국내에서는 '우주를 듣는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지만, 2021년 바이킹에 의해 출판된 책 제목은 The Book of Form and Emptiness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책. 형태와 공허의 책이라고 해석할 수도. 소설은 사람마다 자신의 책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책이 혹자는 영혼이라 표현하겠고, 자신의 또 다른 자아내 안의 천사라는 표현도 할 수 있다. 내면의 목소리. 그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나? 나는 듣는다. 아주 가끔. 큰 시련을 겪고 나서나, 아주 고요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질문을 할  때. 첫 시작은 사춘기가 시작되는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내 안에 나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작은 또 다른 '나'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는데 뿌연 안개 같은 존재였다. 유명 강사들이 강연에도 내면의 소리를 듣는 이야기를 한다.

있긴 있다는 이야기다. 지칭하는 말은 달라도. 그래서 공감하면서 읽었다.


 처음 내용을 모르고 우주를 듣는 소년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외계인과 소통하려는 영화 '컨택트'가 생각났다. 동물의 말을 듣는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도 떠올랐다. 읽으면서 다른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아니 이 모든 게 포함된 이야기다. 책을 받고 2주 안에 책소개를 한다고 약속을 했다. 책을 받은 주말을 빼고 매일 조금씩 읽었다. 읽다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베니가 자신의 책을 만나면서 진도가 팍팍 나갔다. 베니가 진짜를 만났구나 싶었다. 모든 일이 그러하다. 진짜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여러 과정을 거쳐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 물건, 상황을 만나 결실을 맺는다. 처음부터 쉽게 만나면 이게 진짜인지 모른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책을 다 읽고 말하고 싶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책을 읽기 전에도, 읽으면서도, 찾아본 자료들도 나열하고 싶었다.

책이 말했다. "쉿 들으라고"

그래. 그러기로 하자.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에서 수상하면서 말했다.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책의 주제가 당신의 관심사가 아닌가? 재미가 없어 보이는가? 책 두께에 흥미를 잃었나?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는데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을 응용해서 말해 본다.

선입견과 편견을 1인치만 버리면 더 많은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이 책은 당신을 더 알게 하고 주변을 이해하며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줄 것이다.


 당신은 우주 속에 떠 있다. 세상의 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 위에 서 있다.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기고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지휘봉을 들고 온갖 열정적인 물건들에 둘러싸여서 말이다 한 번의 빠르고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모든 목소리들이 당신이 지휘봉을 내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음악을 만들어낼 것이냐 미칠 것이냐, 그것은 순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다.


(서평단으로 참가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솔찍한 리뷰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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