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미술관 - 잠들기 전 이불 속 설레는 미술관 산책
이원율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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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문기자 출신 선생님께 독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신문은 중졸 수준의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글의 수준을 맞춘다고 하셨다. 쉽게 글을 써야 하는 기자답게 이 책은 쉽게 읽힌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거슬리는 단어가 보인다. '비전공자.'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글임을 밝히는 단어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을 믿어도 되나?'라는 의심이 든다. 책 표지를 다시 확인한다. 전문가의 감수를 받았나? 작가의 이름만 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이나 단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 이 책은 고려시대 김부식이 나라가 주도하여 편찬한 정사(正史)'삼국사기'가 아니라 일연 스님이 신화나 설화를 모아 쓴 야사(野史)'삼국유사'쯤으로 생각해야 하나?

전문가. 전공자를 따지는 세상에 살다 보니 미술에 관한 학위나 교육 수료 자료 하나 정도는 증거로 내놔야 하는 걸로 생각했나 보다. 사실 전공자, 비전공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일이든 관심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알고 파고든다. 중요한 건 자격증이 아니라 얼마나 그 분야에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관련 책을 읽었으며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왔냐는 거다. 책 뒤에 참고문헌이 있다. 32권의 책이다. 32권의 책을 읽고 참고하여 쓴 글이다. 책 중간중간 자료를 올리기도 했다. 표시한 책이 32권이지만 이외 다른 책들과 여러 경로로 통한 기사, 영상을 참고했을 거라 추측한다. 한 편의 글을 올리는 것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자료를 찾는데, 하물며 책을 내면서 얼마나 준비를 했겠는가? 책을 낸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책임의 무게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문학적 상상력을 더했다고 밝힌다. 시대적 배경을 벗어나지 않도록 고증을 거쳤으며 터무니없는 내용은 배제했으니 의심의 눈초리는 거두어도 된다고 머리말에 적혀있다. 작가 소개만 보고 의심을 한 것이 살짝 미안해진다.


'왜 많은 책중에 '하룻밤 미술관'이었을까?'

 별 관심이 없던 그림이 어느 날부터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도 들어온다. 작가도 모르겠고 기법도 모른다. 그냥 뭔지 모르겠지만 그림에서 이야기가 묻어 나와 나에게 전해온다. 그렇게 그림에 관심이 가서 화가와 작품에 관한 책을 모아 본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는 읽지 않을 테니 아이들, 초중 학생을 겨냥해 만든 책이 있으면 책장에 일단 꽂아두었다. 읽을 것 같았는데 읽지 않은 채 처음 꽂아둔 그대로 있다. 쉬운 그림책으로 만든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책이 쉽고 재미있다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내가 가진 그림에 관한 책은 재미가 없었다. 화가, 유파, 사조 등등 지루한 설명이 넘친다. 그러는 중에 이 '하룻밤 미술관'을 만났다. 미술에 관심은 있으나, 미술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이에게 '하룻밤'이라는 말은 솔깃했다. 적어도 어렵고 지루한 책은 아닐 거라는 이야기다.

그림을 듣다.

책을 다 읽은 후 한 문장 평이다.

분명 눈으로 읽고 있는데 작가의 문체는 나에게 이야기하듯 작품을 설명해준다. 아니 설명은 설명인데 지루함이 섞여 있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해준다. 그래서 듣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남자의 말로,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요.'

'시작했습니다.'

' 아니었습니다.'

'~꼭 쥐려는 것처럼요.'

밤마다 읽었다면 성시경이 말하는 '잘 자요'처럼 들리려나?

나는 밤에도 낮에도 읽었다. 잠이 오는 이야기라 아니라 흥미로워 계속 읽었다. 날 새면서 읽는 책? 그래서 하룻밤인가? 그렇다고 하루 만에 읽지는 않았다.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인데  감상도하고 그림에 대한 여운도 있지 않겠는가.

앳된 소녀가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앞을 봅니다. 은은한 눈빛, 살짝 벌린 입술, 가녀린 목…… 허름한 복장의 소녀는 분위기와 달리 값진 진주 귀걸이를 차고 있습니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연이 뚝뚝 흘러내립니다.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는 쉽게 짐작 가지 않습니다. p.36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명화로 알고 있지만 작가의 설명을 보고 다시 그림을 보면 느낌이 다르다. 생명이 들어가 있다.  이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눈으로 뭔가를 말하는 것 같고, 입술로도 말하고 있는데 그게 뭘까? 

 작가의 상상에 나의 상상이 더해진다. 그림이 말하는 걸 알고 싶다. 이 소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진다. 그림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작가, 작품의 소개, 배경도 있다. 감상만 있는 책이라는 오해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18세기 조선시대 중인이었던 화가 '최북'의 그림 <공산무인도>, <풍설야귀도>의 그림이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자신의 눈을 찌른 괴팍한 화가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접하기도 한다. 빌헬름 하메르스회의 <햇빛 속에 춤추는 먼지>를 소개하면서 그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은둔자 같은 삶인데 그의 활동을 도운 사람이 있었는지 대답해 준다.

 작가는 독자에게 흥미를 안겨주기 위해 상상만으로 단편소설로 푼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그림을 보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보는 일도 작품을 감상하는 색다른 방법 중 하나라면서.

그래, 잊고 있었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 오로지 학문적, 미술적 기법, 역사적 사실만으로 공부하듯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제주도 유민 갤러리에서 만난 <에밀 갈레의 버섯 램프>는 나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램프로'와닿지 않았던가?

읽다 보면 당신이 알고 있는 그림의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전혀 모르는 명화의 속사정을 알게 되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이 생애 첫 미술책으로 기억되면 좋겠다고 한다. 미술에 대해 적당히 아는 것을 넘어,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마무리했다.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나의 생애 첫 미술책은 아니다. 하지만 생애 첫 미술책으로 기억될 만큼 그림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조금 더 그림을 알고 싶은 맘도 들었다. 작가의 의도대로……

 지금, 미술관 홈페이지에 예약을 위해 접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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