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 - 이시형 박사의 산에서 배운 지혜
이시형 지음, 김양수 그림 / 이지북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스마트폰 유저다.

공부를 하려고 도서관에 갔다가도 수시로 카톡, 페북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곤 한다.

다른 이들의 생활도 다르지 않다.

친구와 약속을 잡아 만났음에도 

우리는 각각 자신의 핸드폰에게 농염한 눈길을 날리며 

아찔한 손길로 어루만지느라 정신이 없다.

 

남자와 데이트를 해도 마찬가지다.

날 외면한 채로 핸드폰만 바라보는 남자에게 말한다.

"핸드폰만 볼거면 날 왜 만났니?"

 

 

'미래공포증, 여백증후군, 동반의 흐름, 시간 부족증, 습관성 경쟁 강박증…'

너도나도 가진 현 세대의 증상들을 굳이 이름붙이자면 이런 명칭이 나오나보다.

'피로사회'라는 책이 큰 공감을 얻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겠지.

이 현대인의 고질병에 대한 해답을

이시형 박사님은 '산'이라는 '자연' 그 자체에서

찾은 것 같다.

 

 

이시형박사님이 촌장인 '힐리언스 선마을'에는 안테나가 없다.

고로.

TV도 라디오도 핸드폰도 안 터진다. 불통이다.

그 뿐인 줄 아시나, 에어컨도 없단다. 심.지.어 선풍기도 없단다.

 

 

으악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나 바쁜 사람예요. 안된다고. 내 페이스북에 좋아요가 몇개 달렸는지

댓글은 몇 갠지 봐야하고 최신 뉴스도 섭렵해야 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심.심.해.요', '시골은 지루한 곳이라구요. 이봐요 들 난 현대신여성이야.'

'자연도 좋지만요 그건 한가한 사람들 얘기고!'

 

라며 이틀도 버티지 못하고 나올 현대인들이 수두룩할거라 예상한다.

 

 

 

이 책의 1장, 첫 글의 주제. 어찌보면 이 책을 하나로 엮는 말이다.

'만물은 하나다.'

해와 달, 물, 바람등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하나로 이어져있다라는 것을 대전제로 출발한다.

책 전체에 산에 대한 애정으로 꽉 차있다.

어리석은 도시인들을 혼내는 듯한 어조도 조금 섞였다.

 

단순히 자연의 중요성, 자연과 함께함으로 인한 효과들에 대해 나열했다면

이 책은 뻔하디 뻔한 책에 불과했을 것이다. 

 

억새를 바라보며 억새같은 기품이 가득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장면,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눈물 겹도록 아름답다며 감탄하는 장면,

겨울에 발가벗은 나무를 바라보며 '위선도 가식도 없는 정직한 모습'이라고 말하는 장면,

바람도 잔잔한 가을의 선마을을 묘사하는 장면들을 읽고 있노라면

'산이 선생님, 친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나도 선마을로 가고싶다.'

어느새 그런 생각이 떠오르고 마는게다.

 

 

 

특히나 가을에 붉게 물든 산을 바라보며 도정환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참 멋있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몸의 전부였던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 도종환

 

 

사색이라는 게 뭔지 아시는 분이구나.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자연에서 뭘 배우려고 한다면

하루이틀 거기서 지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책들이 많았다.

'피로 사회'

'옥수수의 습격'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유전자변형, 패스트푸드, 생산성을 위해 자연의 시간을 앞당기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부분이 꽤 있어서 이 책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책은 도끼다' 였다.

 

 

 

우리 삶의 목표가 성공하고, 행복하며, 풍요로워지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런 삶이란 무엇일까.

비싼 차를 타고, 최고급 음식을 먹어도 정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고 순간의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면 삶은 피폐해진다.

순간순간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같은 것을 보고도 많이 감동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고,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도끼와도 같은’ 책이라고 그는 말한다.

늘 보던 것은 늘 보기 때문에 익숙해져서, 새삼 다르게 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는 익숙한 것들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얼어붙은 감수성을 도끼처럼 깨주는 작가의 책들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책은 도끼다>, 박웅현

 

 

 

어쩌면 '책은 도끼다'에서의 '도끼'는 좋은 '책'이지만,

이 책에서의 '도끼'는 '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같은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이와

많은 것을 깨닫는 이가 있다.

 

이시형 박사님은 후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텍스트를 펴낸 거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 이 책을 보고도 큰 울림을 갖진 못할 거다.

남다른 감수성과 관찰로 아름다운 책을 펴낸 이시형 박사님의 '시선'과 '글솜씨'는 참으로 부럽다.

김양수 화백님의 그림도 아름답다. 정적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 곳에서 가능하지 않은 '힐링'이

그 곳에 가자마자 쨘 하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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