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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배달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7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1월
평점 :
이따금, 생은 너무나 혹독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게되면, 그 사람은 꼭 날 사랑하지 않고
착하게 성실하게 살아도 안 좋은 일은 꼭 빵빵 신나게 터져주곤 한다.
신은 있는 걸까. 신이 있다면 날 왜 이렇게 힘들게 만드실까.
삶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날 좀 그만 때리세요.
나 좀 제발 내버려두세요. 외치고 싶다.
퉷, 더러운 운명같으니라고.
삶은 때때로 '내가 어찌할 수없는' 무언의 강제적인 힘처럼 느껴진다.
안 그래도 더러운 삶에 사랑의 부재까지 더해지면
비뚤어진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극에 치닫는다.
스스로 고립되며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자존감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고
태봉이처럼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길 원하는 사태에 이른다.
물론 진심은 아니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를 인정할 수 없을 뿐이다.
더는 상처받기 싫다는 말의 표현이다.
여기 소설 속. 우리와 닮은 아이들이 있다.
태봉-
아빠가 회사에서 쫓겨난 뒤 산산조각난 가정의 아들이다.
무너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힘들어하던 엄마는 결국 집을 나갔다.
엄마는 나를 버렸고, 아빠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나는 더 잃을 것도 더 바라는 것도 없다.
장래희망을 '잉여인간'이라고 적어낼 만큼, '죽지못해' 산다.
슬아-
왕싸가지다, 하지만 똑똑한데다 예쁘다. (쳇 뭐 소설 속 여주인공들이 다 이렇지 뭐.)
완벽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추구하는 엄마에게 상하와 함께 입양되었다.
그러나 엄마의 기대를 맞추지 못하고 엇나가던 상하를,
엄마는 도로 파양시켰다. 난 엄마의 삶의 데코레이션일 뿐 가족이 아니다.
높은 성적으로 엄마의 기준에 부합해 살던 내가 기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엄마가 기면증에 걸린 날 버릴까 두렵다. 나도 상하처럼 될까.
난 엄마에게 묻고싶다.
'대체 난 언제 버릴거에요?'
태봉과 슬아가 만나 신비로운 웜홀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현실이 너무나도 끔찍했던 그들은 '평행우주이론' 이란 이론을 중심으로
그 웜홀이 분명 현실과는 다른 세계로 이끌어 줄거라고 믿으며 그 웜홀을 향해 달리기에 이른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웜홀에 들어가서 어떤 세계로 들어가 어떤 것을 보는 지는
스포일러니까 쓰지 않겠음 호호
삶에는 한 가지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 맞는 다른 방식을 찾아 나서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세워놓은 한 가지 기준에 부합하려고 애쓸수록 더욱 진창이지 않았던가.
그 기준은 내가 세운 게 아니다.
이제부터 나의 설계로 내 기준을 세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고독할지언정 기꺼이 그것을 선택할 것이다.
특별한 배달, 태봉 아버지의 일기장에서 ,p.144
왜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해의 과정 없이는 어른들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는 무조건 생략하고 감추며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라고 한다.
예고가 없기 때문에 아무 대비도 없이 날벼락을 맞아야 하는데도
크면 다 알게 된다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크면? 그건 너무 늦은 말이다.
이미 뒤틀린 것은 걷잡을 수 없이 금이 가기 때문이다.
슬아의 독백, p.204-205
"(…)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한답시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을
자랑 삼는 사람들 때문에 모두 병들어가는 거라고? 잠깐만……."
슬아 엄마와 젬마아줌마의 통화, p. 212
이 글들 속에서 내가 느낀건,
1.사회 밖으로 내쳐진 이 시대의 가장들의 현실과 그 가장들에게 건네는 위로
2. 부모와 자식간의 단절된 소통이 얼마나 큰 오해와 부작용을 가져오는 지에 대한 경고
3. 자식을 인형으로 여기는 요즘 부모들의 과한 욕심에 대한 경고
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태봉의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울컥하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 아빠도 태봉이 아부지처럼
사업 부도로 친구도 잃고, 지인들에게 외면받고,
천원짜리 한 장도 없어서 집에 쌀도 없을 때가 있었으니까.
근데 나는 철없이 맨날 먹을 게 계란후라이뿐이냐며 아빠에게 툴툴 대곤 했으니까.
"진짜 죽고 싶었다. 한강다리에서 한강을 내려다 본 적도 있었다.
근데 내 자식들, 너랑 니 오빠때문에 죽질 못 하겠더라.
내가 죽어서 보험금이라도 두둑히 나오면 모르겠는데,
그러면 진짜 난 바로 뛰어내릴 수 있었는데. 그것도 안 나오니까.
나 없으면 너네 어떻게 사나 싶었다."
라며 죽고 싶었던 그 때의 심정을 내게 털어놓는 아빠의 촉촉한 눈가를 보고 마음 아팠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부분에서 덤덤해질 수가 없었다.
이 책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다.
난 정작 두 주인공의 얘기보다 그 조연들에 대해 느낀 게 많았다.
'빌어먹을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괴물, 진석구' 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자본주의에 딱 걸맞는 합리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만 이 세상에 산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하는 상상-
태봉의 아빠를 보면서 이 시대의 아빠들이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힘이 들까.
실패한 아빠들이 부디 태봉의 아빠처럼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자신의 선택으로
투명인간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싶은 바람.
퀵클리쌩의 고래삼촌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며
두 다리를 잃고도 할리 데이비슨을 사 세워놓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은,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해서 당도한 것이다.
라는 책 속의 교훈까지.
난 이 책을 쪽쪽 빨아먹었다. 아이고 배불러.
두 세번 더 읽어도 빨아들일 것들이 더 있겠다 싶다.
큰 글씨로, 알아듣기 쉬운 말만 써있는 청소년문학이라
조금 가볍게 본 것이 사실이다. (죄송...)
하지만 정말 똑똑한 사람은 가장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한다고 하지 않나.
김선영 작가님은 현명한 삶에는 도가 튼 분인가보다.
현 시대 가정과 교육과 현실이 소설 사이사이에 골고루 녹아있다.
그리고 나도 이제 내 선택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련다.
그래, 이 살은 다 내가 지금껏 선택해 먹은 음식들의 결과야.
그래..................이건 누가 내게 억지로 먹인 게 아니야.............
이건 엄마가 날 하체비만으로 낳아서가 아니야...................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