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도시
스카이 제서니 지음, 이대은 옮김 / 죠이선교회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신학교 시절 싫어했던 질문이 있다. “비전이 뭐에요?” 아마도 이 질문에 거부 반응을 보인 건 워낙 이상한(?) 비전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전부처럼 말하는 분위기를 싫어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반작용으로 비전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정말 비전이 없는 걸까. 있다면 무엇을 비전이라고 말할까. 비전을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볼 질문이 있다. 오늘이 내일을 위해 존재할까? 내일이 오늘을 위해 존재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내일이 오늘을 위해 존재한다. 내일이 있어야 오늘이 있다. 비전이 무엇인가. 오늘을 살기 위해 내일을 보는 것이다. 오늘은 보이는 내일이다!

 

바라 본다는 것은 이미 무엇이 존재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만들어 보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무엇을 보는가. 하나님이 완성시킬 나라를 보는 것이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인가.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질서, 아름다움, 그리고 풍요로움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특성을 통해 이론적인 하나님 나라가 아닌 실제적인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이라는 광야를 살아간다. 광야의 특징은 결핍이다. 질서의 결핍, 아름다움의 결핍, 풍요로움의 결핍이다. 결핍은 두려움을 만든다. 광야에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힘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이 생긴다. 또한 전쟁이라는 잘못된 힘은 많은 사람을 더 큰 두려움으로 밀어 버렸다. 광야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대피대응이다.

 

광야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인간의 노력으로 광야의 결핍을 풍족함으로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은 곧 광야를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더 이상 광야에 관여하지 않는 것, 그것이 대피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할은 개인 영혼구원을 담당하는 선교사와 목사다. 나머지 역할들은 평가 절하된다. 문제는 주님이 아직 오시지 않고 있고 광야에서 언제까지나 숨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길은 대응이다. 대응은 광야에서 사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이러한 대응 모델이자 근거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 나라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직접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다. 우리의 힘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광야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줄 수 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결국 비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에덴동산의 흔적을 가지고 광야를 살아가는 순례자, 동산지기들이다. 그렇다. 우리는 동산지기로 부르심을 받았다. 다른 말로 소명이다. 소명은 다 똑같지 않다. 최고의 소명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각자 동산 지기의 역할이 생긴다. 이것이 특수 소명이다. 각 자 받은 대로, 다양한 영역에서 예수님처럼 나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일차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교회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지체들로서 한 몸인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광야와 달리 하나님 나라가 소외 없는 곳이라면, 그 출발점은 교회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신자로서 누구나 해야 할 공동 소명이다. 저자는 구제와 식탁의 현장에서 소외 없는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교회를 통해 온 우주에 드러날 것이다. 결국 동산지기는 최고의 소명(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공동 소명과 특수 소명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소명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무슨 소명이든 순종하는 것이 동산지기의 자세다.

 

이 책은 하나님 나라, 교회, 그리고 세상이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동산지기로 교회와 세상에 필요한 소명을 부여 받았다. 교회냐, 세상이냐,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해야 할 대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구원 혹은 사회구원이라는 어느 한 쪽의 극단적인 반응은 피해야할 것이다. 비전은 명확하다. 그러나 비전을 이뤄가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다양함이 충돌이 아닌 조화를 이루는 현장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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