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돌려드립니다
권일한 지음 / 좋은씨앗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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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삶이다. 신앙에서 삶은 만두속과 같다. 너무 맛있어 보이는 만두를 한 입 베었는데 속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해보라. 제대로 속은 느낌일거다. 괘씸하다. 남이 만든 만두가 그렇다면 그나마 낫다. “왜 그러냐!?”고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만든 만두가 그렇다면 어쩔 텐가. 어느 시인이 내 만두를 먹었다면 이렇게 말했으리라. “껍떼기는 가라!”

 

좀 더 솔직해보자. 왜 껍떼기만 남았는가? 아니 왜 껍떼기만 남겼는가? 만두속을 채워야하는 부담감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삶으로 신앙을 채우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어느 정도 괜찮아도 생활신앙은 뭔가 불편하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을 돌려준다는 말이 모두에게 환영할 만한 말로 안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을 받는다는 것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과 파란약을 먹는 선택과도 같다. 빨간약을 먹으면 가상현실을 벗어나 현실을 보게 되고, 파란약을 먹으면 가상현실에서 계속 산다. 빨간약은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불편한 진실을 보지 않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면 파란약을 먹으면 된다. 성경은 빨간 약일까, 파란 약일까. 적어도 저자는 파란약을 돌려준다고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빨간 약을 먹었다면 불편한 진실과 싸워야 한다. 성경이 보여주는 진실을 내 삶에 채워야한다. 채우기 위해 먼저 읽어야 한다. 저자는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 정황과 문맥으로 읽기, 시간과 공간으로 읽기, 질문하며 읽기, 낯선 이야기로 읽기 등. 다양한 방법을 말한다. 이러한 방법의 목적은 하나다. “스스로 읽기 위해서!”. 읽어야 생각이 나고 생각이 행동으로 연결된다. 로고스 서원의 김기현 스승님은 이렇게 말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 당한다.” 끌려 다닐 텐가, 끌고 갈텐가.

 

스스로 읽었다면 나눠라. 나눔을 통해 내 생각을 검증받아야 한다. 나눔은 말보다 듣기가 먼저다.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말하지 마라. 어떤 이야기든 존중하고 수용할 마음이 없다면 나눔이 아니라 일방적인 가르침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나눔은 밥과 함께 나누면 좋다. 밥과 함께 사소한 수다가 깊이 있는 나눔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나눔을 통해 서로의 것을 내 것으로 채운다면 훨씬 풍성한 읽기가 된다. 저자는 왜 성경을 돌려주는 가. 내가 읽고, 우리가 읽고 싶어서다.

 

남이 말해주는 것보다 내가 깨달은 것으로 살아내는 힘이 큰 법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나눔을 통해 살이 붙게 되고 더 큰 힘을 가지게 된다. 이 힘으로 당신의 삶을 살아내라. 누구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였다면, 이 책이 당신에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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