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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 세계적인 법의인류학자가 들려주는 뼈에 새겨진 이야기
수 블랙 지음, 조진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소개
▷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 수 블랙
▷ 세종서적
▷ 2022년 02월 20일
▷ 444쪽 ∥ 590g ∥ 148*210*30mm
▷ 고고학/문화 인류학
444쪽 우연일까? 의도한 것일까? 이 책은 정확하게 마지막 장까지 ‘死死死’쪽이다. 책의 소개는 이러하다. “만약 법의학자가 실제로 접하는 사건들을 범죄소설에 쓴다면 그것이 사실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어떠한 말일까?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보다 사실적이지 않다는 것일까? 아니면 소설에 쓰지 못할 만큼 잔인한 걸까?
CSI: Crime Scene Investigation(CSI 과학수사대 시리즈) 제리 브룩하이머의 법의학 범죄 수사드라마이다. CSI 2000~2015년까지 시즌 15 방영, CSI Miami 시즌 10, CSI NY 시즌 9, CSI Cyber 시즌 2 전 세계 150개국에 정말 엄청나게 방영되었고, 인기 또한 엄청나게 높았던 미국드라마이다. 엄청난 에피소드가 있지만, 실제 이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드라마가 너무 과장되어 실제와 너무 다르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는 살인사건이 대부분 등장하는데, 실제 미국의 과학수사대원은 70% 이상이 마약 사건을 담당한다고 한다. 국내의 과학수사대원은 체포/수사권을 행사하지 않고, 총기도 휴대하지 않는다. 결국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은 아닌 것이다.
수 블랙(Sue Black, 1961~) 스코틀랜드 태생의 법의학자, 해부학자이다. 현재 옥스퍼드 세인트존스대학의 총장으로 재직 중이며, 영국 왕립 인류학 연구소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고 한다.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영국 법의학팀을 이끌며 전쟁 범죄 수사에 참여했고, 2004년 인도양에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사망자 신원 확인에 도움을 주기 위해 태국으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2016년 법의 인류학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 제국 데임 작위를 받았다. 법의학 선진국에서도 당연히 최고의 학자이다.
“누가 시신의 머리를 비닐봉투 속에 버렸을까? 창고 속에서 발견된 머리는 누구의 것일까? 오래전 정원에 매장된 그는 누구일까? 세탁기 속에 왜 아내의 뼛조각이 들어 있었을까? 우리의 일은 죽은 자들에게 ‘이름’을 찾아주는 일이며 그들의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편안히 잠들게 한다.” 영화나 실제 현장에서도 형사들조차 현장의 조각된 시신을 보면 구토하기 마련이다. 동물을 도축하는 것과 인간의 조각을 본다는 것은 당연히 다른 것이다. 우리가 시장을 지나면서 돼지머리나 닭의 머리를 보아도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지만, 사람의 형상을 한 마네킹만 보아도 두렵기 그지없다.
P.250 「팔 이음 뼈」 “마르셀라에게는 생후 9개월이 된 딸이 있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에 따르면, 그녀가 어린 딸을 부양하기 위해 성매매라는 고위험 일을 계속했다고 한다. 어느 날 저녁, 마르셀라는 아기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일을 하러 택시를 타고 시내 홍등가로 갔다. 《중략》 아기를 데리러 오기로 약속한 밤 11시경에 마르셀라가 오지 않자, 베이비시터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전화했고, 어머니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영화 ‘추격자’의 딸을 홀로 두고 아픈 상태에서도 일을 나간 미진이 생각나지 않는가? 영화의 장면도 끔찍하지만, 실제 일어난 마르셀라의 사건은 더욱 참담하다. 완전히 태워 없애기 위해 모닥불을 반복해서 태웠고, 그 작은 잔해에서 저자는 마르셀라를 찾아낸 것이다. 용의자는 추격자의 유영철과 같은 연쇄살인범이었다. 시신 절단, 은폐하기 위해 불에 태웠다. 팔 이음 뼈라는 작은 정보를 가지고 범행을 증명해내고, 그녀의 이름을 돌려준 것이다.
책은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다. 삽화나 사진이 실려있지 않지만, 건조하게 쓰인 글을 읽으면서 무서웠지만, 쪽을 넘길수록 안타깝고 슬픈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공포에 떨었냐며 말이다. 자본의 논리로 따지면 이러한 법의학이 비효율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름도 없이 사라질 누군가를 찾아내고, 9개월 된 딸에게 후에라도 전해줄 수 있는 매우 인간다운 일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직업으로서의 법의학자가 아닌, 마치 숭고한 종교인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큰돈을 버는 일도 아니지만,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 그녀에게 존경의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