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사랑과 상실에 관한 포토 에피그램
헤르츠티어 지음 / 싱긋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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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익숙했던 것이

한순간 아득해지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밤을 뒤척였을까

_그토록 익숙했던 것이 (291쪽)

 

밤을 뒤척이는 파도 같은 이 문장이 참 좋았다. 사진 속 멍하니 해변에 앉아 밤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의 심정이 낯설지 않았다. 한밤에 깊은 탄식인듯이 언젠가 내가 뱉었던 말인듯이. ‘얼마나 많은 밤이 필요한진 몰라도, 익숙했던 건 결국 아득해진다. 사랑의 시작에 점을 찍는 순간 그 끝에도 점 하나가 찍히는 것처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랑과 상실의 포토에피그램이 특별한 사진에세이를 여수의 한 카페에서 읽었다. 혼자 떠난 여행. 둘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혼자 가고 만 그런 여행. 맘에 여유 좀 갖고 즐길 그런 책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을 잘못 골랐다. 그만 경솔했다. 사랑과 상실을 부제로 내세웠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부터 나는 사로잡혔다. 헤르츠티어라는 작가의 글과 사진에 빠져들수 밖에 없었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를

빤히 보게 되는 강렬한 끌림.

내가 조금만 다가가면

네가 조금만 다가오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예감 가득한 인연.

그걸 뭐라고 부를까.

말 한번 붙여보고 싶고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고도 싶지만, 그뿐인 것.

그러다 헤어질 쯤엔

마음이 급해지기도 하는 것.

끝끝내 그렇게 잊히고 마는 그런 스침.

시간이 흘러 훗날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_눈을 뗄 수 없었지 (44)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는 강아지 사진 옆에 나란히 있는 이 글을 읽고 속으로 웃었다. 누군들 이런 경험이 없을까. 영화 장면을 보듯 섬세한 언어로 쓰여진 작가의 글솜씨에 감탄했다. 별의미 없이 지나가는 순간적인 마주침까지도 헤르츠티어 작가에게는 하나의 의미였구나 싶었다. 이렇듯 이 책에는 사랑과 상실의 순간으로 가득하다.



일본에서 중년 남자가 급사했다.

평사원으로 삼십 년 봉직.

아버지는 성실한 가장이었어요.”

가족은 그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렸다.

동료들은 회사에 남아 있는 유품을 정리해

집으로 보냈다.

좁은 책상에서 남자가 보낸 삼십 년이

마침내 집에 돌아왔다.

 

_삼십 년이 집에 돌아왔다 (186)

 


당기듯 밀어내게 하소서.

닿을 듯 멀어지게 하소서.

반가운 듯 돌아서게 하소서.

마중하듯 배웅하게 하소서.

설레듯 슬퍼하게 하소서.

 

_어떤 기도문 (292)

 


표현 하나하나가 놀랍다. 이런 걸 역설의 미학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면서 또 쉽게 공감이 되는 게 신기했다. 다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정말 많다. 사진이 정말 좋은데, 글 역시 결코 사진에 밀리지 않는다. 한 문장도 공들여쓰지 않은 게 없어 보였다.


8? F8.0에는 사랑 장례식이라는 그의 소설이 있다. 말 그대로 사랑을 매장하는 한 연인의 이야기. 유쾌했고 진지했고 뭉클했다. 출판사를 배경으로 한 건데 이기호 작가 소설을 읽는 것만큼 재밌었고, 술술 잘 읽혀서 깜짝 놀랐다

 

헤르츠티어라는 작가를 알게 돼서 다행이고 고맙다. 이 책은 아픔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무겁고 우울하지만은 않다. 아니, 무겁고 좀 우울하면 어떤가. 슬플 때 슬퍼하는 게 뭐 잘못된 거라고. 다른 힐링 에세이를 표방한 책들과도 차이가 있었다. 일단 디자인도 너무 좋지만, 퀄리티가 다르다. 사랑만큼 이별상실의 슬픔도 존중하려는 그의 태도도 너무 믿음직스러웠고. 진짜 위로가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책에 담긴 사진과 글은 각각의 이야기들인데, 끊김이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가는 이야기다. 그 때문에 작가가 무척 맑은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는 버려진 분홍 돌고래 인형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는 사람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슬픔을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바라보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음미해보고 싶다. 


좋은 포옹이란

두 팔의 그림자를 포개어
잠시 아픈 당신이 되어보는 것.


_‘좋은 포옹의 한 예’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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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사랑과 상실에 관한 포토 에피그램
헤르츠티어 지음 / 싱긋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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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사로잡는 색감 진한 사진에, 가슴을 먹먹하게 치는 문장들. 페이지 넘기는 게 아까워서 아껴 읽는 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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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이 너였다 - 반짝반짝 빛나던 우리의 밤을, 꿈을, 사랑을 이야기하다
하태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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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를 컨셉으로 내세우는데 모르겠다. 다 읽고 나서도 정말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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