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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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읽고 11살 아들에게 물었다.

「 돈을 내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법을 제정해도 괜찮을까? 」

아들이 답했다.

「 물론이지! 아빠. 요즘은 사람보다 무기의 질이 국가의 군사력을 결정한다고. 돈으로 무기를 살 수 있으니 좋고 말고. 단 많은 돈을 내게 해야 해. 」

평소 볼 수 없었던 아들의 논리적인 면모에 놀라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 오, 굉장히 그럴싸한 발상인데? 그런데 그 법을 제정했을 때 문제는 없을까? 」

아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의 물꼬를 트려 했으나 실패했다. 내 도움으로 그 제도가 불공평과 불공정의 문제를 야기 할 수 있다는 데 가까스로 공감했으나 갸우뚱거리는 머리를 멈추지 못했다. 내가 모든 남성이 군대에 가는 의무를 지는 까닭은 군사력을 증진하는 것 너머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을 때 아들은 자리를 떠났다. 욕심이었다.

멈추지 못하고 아내에게 다가가 바버라 해리스의 사례를 말해주었다.

매년 수십만 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마약 중독자에게서 태어난다. 이 아기 중 많은 수가 학대나 방임으로 고통받는다. 바바라 해리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기반 해결책을 제시했다. 마약 중독 여성이 불임시술을 받거나 장기간 피임하면 현금 300달러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 바바라 해리스의 해결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어. 그런데 해리스의 접근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았다고 해. 불임 시술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에 시장의 논리가 끼어들면 안된다는 거지. 시장의 논리가 끼어들면 자녀를 가지는 의미가 퇴색된다는 게 주요 논지야 」

아내는 빠르게 대답했다.

「 아니, 그럼 어쩌자는 거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아이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은 건가? 그렇게 따지면 많은 아이를 낳았을 때 많은 복지 혜택을 주는 것도 시장의 논리인가? 너무 편한 의견 아니야? 」

아내의 말에 담긴 함의가 가볍지 않다.

2

합리성을 기치로 내세운 경제학적 사고 방식이 곳곳에 침투해 승전보를 울린다. 뉴욕시가 공중권 을 사고 팔게 해 도시의 유연성을 증가시킨 소식이 인상 깊다. 도시 중심가의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해 특정 시간대에 차량 통행료를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하니 교통이 원활해졌고 시민들의 불만도 줄었다.

시장의 방법을 택하지 않은 전장에서 패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선한 마음으로 어린이 노동을 전면 금지 시켰더니 어린이의 삶이 더 고통스러워졌다는 뉴스다. 시장이 행하던 순기능을 없앴기에 아이들이 소득을 거둘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승전보에 힘입은 몇몇 경제학자는 공리의 합으로 사안의 옳고 그름을 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리의 합을 고려하지 않은 과거의 관행을 "불필요한 관행"이라 말하고 불필요한 관행을 따르는 사람들을 비교육의 희생양으로 생각하며 안타까워한다.

경제학자의 사고 방식은 내 행동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난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규범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아들이 뾰족한 말을 뱉었을 때 남을 존중하지 않는 말투를 사용하는 건 잘못이라고 혼내는 한편 「 그렇게 행동해서 네게 어떤 이득이 있니? 그렇게 행동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어 」 라고 더한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유심히 보니 여러 곳에서 공리주의의 깃발이 펄럭인다. 괜찮을까?

3

비싼 요금을 감내하면 놀이 기구를 빨리 탈 수 있다. 2022년 브라질 축구 대표팀이 한국에 방문해 한국 축구 대표팀과 경기를 했다. 당시 브라질 선수들은 에버랜드에 들려 여러 놀이기구를 즐기기도 했다. 에버랜가 제공하는 우선 탑승권 요금제에 감사한다. 에버랜드는 큰 광고 효과를 얻었고 브라질 선수들은 기다림 없이 놀이기구를 즐겼다. 브라질 선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나 역시 즐거웠다. 경제학자들이 좋아할 예시다.

미국의 샌디에고·미니애폴리스·휴스턴을 비롯한 여러 도시가 카풀차로로 빨리 통근할 수 있는 권리를 최대 100$에 팔고 있다. 명절 귀경 길에서 10m 나아가기도 버거울 때 버스 차로로 빠르고 당당히 달리는 벤츠를 상상하니 기분이 나쁘다. 부자와 빈자가 체감하는 돈의 효용 곡선은 다르기에 부자와 빈자에게 100$는 같지 않다. 따라서 부자는 빈자보다 적은 비용으로 카풀차로를 이용하는 것이고 이건 불공정하다.

뉴욕시 퍼블릭시어터는 여름마다 센트럴파크에서 무료 야외공연을 연다. 인기가 많은 공연이기에 입장권을 받으려면 긴 줄을 기다려야 한다. 이 수요를 포착해 대리 줄서기 사업이 등장했다. 경제학자는 대리 줄서기 사업의 출연을 나쁘게 보지 않으며 심지어 암표를 긍정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대리 줄서기와 암표는 효율적으로 자원을 분배한다. 거래가 성립했기에 효용 또한 증가했다. 공연의 이득이 공급자가 아닌 이가 가져간다는 게 맘에 걸리지만 이는 애초에 뉴욕시가 공연에 요금을 적절하게 책정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경제학자에게 대리 줄서기와 암표의 출연은 재화에 바르지 않은 가격표가 매겨졌다는 증거다.

하지만 뉴욕시가 야외공연에 암표가 발생하지 않을 만한 가격을 매기면 본래 뉴욕시가 전파하고자 했던 메시지 -뉴욕시에 거주하는 모두가 야외공연을 볼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가 완전히 훼손된다. 과거에는 동승자 없이 카풀차로로 달리면 벌금을 내야 했다. 이제 카풀차로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살 수 있기에 벌금이 요금이 되었다. 벌금의 요금화로 카풀차로 제도에 담고자 했던 원래 취지 -교통 체증과 대기오염을 줄인다- 가 훼손되었다.

경제학자는 가치를 가장 높게 책정한 이에게 재화가 돌아간 사실을 말하며 시장의 우수함을 말한다. 하지만 부자는 재화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최고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부자'기 때문에 최고 가격을 지불했을 수도 있다.

재화를 분배하는 방식은 여러가지다. 가격을 부여하는 방법도 그중 하나고 각자의 방식은 장단점을 가진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재화를 분배하는 방식이 재화의 성격을 규정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선착순으로 분배하던 재화에 가격표를 매겨버리면, 그 재화는 더 이상 과거와 같지 않다.

4

적지 않은 교회가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어린이에게 달란트를 상품으로 준다. 어린이는 매년 열리는 달란트 시장에서 달란트를 문구·장난감·과자와 교환할 수 있다.

내가 5학년 때 일이다. 집사 한 분이 교회에 안 나왔던 아이가 교회에 오면 자기 돈 1000원을 쥐어줬다. 다른 몇몇 집사가 분개해 이를 공론화했고 1000원을 쥐어주던 집사는 속상한 가슴을 만지며 교회를 떠났다. 자본주의의 세가 더 커진 요즘에도 돈으로 아이를 전도하는 방법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11살 아들은 명절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 가는 게 마뜩잖다. 3시간 동안 차를 타는 건 힘들고 도착한 곳엔 또래 친척도 없기에 심심하다. 내가 아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면 용돈을 넉넉하게 받으니 감당하라"고 말하는 걸 아내가 듣자 다그쳤다.

「 철아.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

오늘날 도덕 규범의 기반은 과거처럼 견고하지 않기에 "옳고 그름"을 강조하는 것보다 행동의 "이익"을 강조해 타인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게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달란트를 주는 것은 허용되나 돈을 직접 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이유는 뭔가? 달란트에는 교회가 강조하는 유일신의 은혜란 개념이 내포되어 있으나 "돈"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이익으로 치환해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에 아내가 거북함을 표현한 까닭은 무엇인가? 금전적 동기가 바람직한 동기를 밀어낸다는 걸 아내가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조부모의 집으로 기꺼이 가게 하는 방법으로 "용돈"을 들이미는 것은 떠올리기 편한 방법이다. 도덕을 말하며 아들을 설득하는 방법은 지난하다. 앞서 언급했던 바바라 해리스가 마약 중동자가 임신하는 걸 막기 위해 금전 이득을 제공했던 방법 외의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이 어딘지 잊어선 안된다. 아들이 자신을 이 땅에 있게 만든 우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보답했으면 하고 바라는 내 기대는 인센티브로 채울 수 없다. 도덕을 이득으로 대체해 가르치려는 시도는 도덕이 내포하는 긍정적 효과를 제거한다. 도덕이 시장 경제로 대체되면 도덕 규범을 곱씹고 행동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삶에 대한 바른 태도를 함양할 수 없다. 인간 사회에는 제도와 법으로 채울 수 없는 구멍이 허다하다. 그 구멍을 채우며 인간이 다툼을 최소화하며 진보케 하는 윤활유는 더 많은 이득을 얻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더 높은 '덕'을 성취하려는 염원이다. 이 염원을 이득으로 대체하면 당장의 문제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후에 당도한 사회는 우리가 본디 원한 것과 다를 것이다.

5

경제학자는 선물 교환을 선호하지 않는다. 선물을 받는 이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으므로 선물보다 돈을 주는 것이 효용을 극대화 한다. 상대방이 지불한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와 비교해본다면 선물 교환은 가치를 훼손시킨다. 경제학은 사회 관행을 같은 방식으로 검토한 후, 사회 관행이 효용을 방해하는 비이성적 장애물이고 원칙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역기능적 제도"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경제학이 생각하는 효용은 단지 "경제학적 효용"일 뿐이다.

매년 가을이면 아버지는 산에 올라 송이 버섯을 캐 장모님와 우리 가족에게 배달한다. 아내와 장모님은 그 송이버섯을 좋아하고 매년 기다린다. 송이가 풍기는 향에는 산이 감춘 송이를 찾아내는 아버지의 솜씨와 산을 오르는 고됨을 감내하는 당신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향기는 돈으로 대체될 수 없다. 마음을 전하는 데는 돈보다 송이가 더 바람직하다.

개인의 투표 효용은 0에 수렴하기에 투표를 경제학으로 평가하면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이다. 허나 난 투표를 하고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투표장에 나가는 경제학적으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길 바란다. 투표는 효용을 넘어서 책임과 신념의 범주에 있고 투표가 민주 시민으로서의 덕을 상기시키고 길러주기 때문이다.

경제학자가 비합리적이라 치부하는 관습을 열어보면 이득으로 치환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관습의 결과만을 얻기 위해 시장의 방법을 적용하면 관습이 내포하는 긍정적 효과가 제거된다. 가치를 최대화하는 재화의 선택지는 다양하고 시간과 장소와 목적에 맞게 사려 깊게 선택해야 한다. 돈은 숫자로 쉽게 환원 가능한 경제학적 효용만을 최대화할 뿐이다. 비합리적인 관습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나 모든 관습과 규범이 이성의 대척점에 있는 건 아니다.

6

돈이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되면 좋은 결과를 만든다. 시장 경제로 얻은 인류의 번영은 말할 필요도 없고 덕을 상기시키는 수단으로 돈이 잘 동작하는 예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드라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주인공이 약속 시간에 늦자 홀러 판사는 여러 자선 단체의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양심에 따라 기부하라고 한다. 효과적인 꾸짖음이다. 단순한 사과로 잘못을 넘기지 못하게 했으며 자신의 권위도 세우는 한편 사회에 좋은 일도 했다.

공리주의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심하게 아프거나 죽을 가능성이 큰 사람과 직업상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먼저 백신을 맞게 한 선택의 기반은 공리주의다. 이 방식을 택했을 때 백신 하나하나가 잠재적 고통과 불행을 최대한 완화하므로 각 백신의 '선'을 극대화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허나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를 숙고 없이 '돈'과 '이득'을 적용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좋지 않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여러 예시는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샌델은 재화의 속성을 깊이 파악해 경제학적 방법을 적용해도 될지 않을지 토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옳은 말이다.

이 책은 평소 내가 아들을 훈육하는 방식을 돌아보게 했다. 아들이 "8만원 내고 신호 위반하면 안되?" 라고 물었을 때 "8만원은 비싼 돈이야!" 라고 답하는데 그쳤다. 이제 '벌금' 과 '요금' 의 개념을 알려 줄 수 있다. 의도적으로 신호를 위반하면 우린 8만원과 함께 '덕'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며 그 행동은 조금씩 우리 마음에 남게 되고 그 행동을 한 자신은 더 이상 과거의 자신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줄 수 있다.

나와 자식이 자신과 타인의 삶과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 바른 태도를 가지길 바란다. 이 바람을 실현하려면 이득을 따져 행동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능력 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 판단을 통해 행동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감수성도 길러야 한다.

내가 잊고 있었던 이 당연한 사실을 알려 준,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게 만들어 준 샌델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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