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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탐구 ㅣ 대우고전총서 4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승종 옮김 / 아카넷 / 2016년 5월
평점 :
말이란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는 것이며, 따라서 언어는 그 쓰임이 중요하고, 언어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언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언어는 사전 속에서 고정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때 그때 기능하게 된다. 언어가 역동적인 이유는 언어가 세계를 묘사하기 이전에, 세계 안에서 ‘행위’로 쓰이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것의 기원은 단순히 대상을 가리키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 공동 행위를 가능하게 하고, 타인의 행동을 조정하고 예측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언어는 처음부터 ‘의미 체계’ 가 아니라 상황 속 반응을 연결하는 도구였다. 그리고 삶이란 것 자체가 진리나 사랑같은 단일한 목적만을 지녔다면 언어란 것은 단일한 구조가 되었겠지만 현실의 삶이란 생존, 협력, 갈등, 감정 표현, 권력, 놀이, 위로, 기만, 설득, 고백, 약속 등등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 따라서 이 모든 상황을 하나의 언어가 하나의 기능으로는 감당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언어는 단일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목적에 즉석으로 전용될 수 있는 범용 도구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어란 처음부터 완성된 체계를 지닌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붙힌 기능들의 축적물이다. 언어란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계한 것이 아니라 사용되어지면서 그렇게 굳어버린 흔적에 불과하다. 그래서 언어의 구조란 깔끔한 논리 체계로 잡혀 있는 게 아니라 삶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퇴적층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언어에 다양한 사용 양식이 겹쳐지는 이유는 언어가 세계의 본질을 담기 위해 생긴 체계가 아니라 목적도 방향도 단일하지 않은 삶의 흐름 속에서 수없이 다른 행위들을 즉석에서 연결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무엇을 꿈꾼다는건 내가 미래에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라는 소망을 단순히 “꿈꾼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꿈을 꾼다” 라는 명제에서 ‘꿈’이라는 명사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위치를, ‘꾼다’라는 동사는 그 미래를 향한 소망과 지향을 뜻한다.즉 “꿈꾼다” 라는 말은 단순히 꿈을 꾼다는 말이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의미 전체를 압축해 놓은 표현인 것이다. 사실 언어의 이러한 쓰임은 굉장히 다양한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가끔은 그러한 축약형 문장들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요즘에는 더더욱 언어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대충 묶어서 유통시키는 장치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다. 축약은 소통을 원활하게 하지만, 동시에 사유의 세밀함을 희생시키게 된다. 그래서 언어란 늘 편의성과 오해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