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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염상섭 - 개성의 해방과 문명전환 ㅣ 창비 한국사상선 25
나혜석.염상섭 지음, 강경석 편저 / 창비 / 2026년 2월
평점 :

어느 날 타임머신이 추락했다. 그 충격으로 조종사는 기억을 잃게 되었고 정신을 차려 세상을 돌아보았을 때 그 곳은 1900년대 초 일제식민지 조선이었다. 나름 부유한 집의 자식으로
나혜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그 이는 자신의 시대에서는 통용되던 사상이 추락한 시대에서는 너무 앞서갔기 때문에 배척당하고 돌팔매질 당할 수밖에 없었다. … [창비 한국사상선25 나혜석 염상섭]의 나혜석의 모습은 나에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다가 미래로 가야 할 것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과거로
간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을 진실로 사랑할 줄 알면 모든 다른 사람을 사랑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본질에서 나타나는 가장 높은 사상이요, 가장 높은 경험인 줄 압니다.
(중략) 나는 바랍니다. 우리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고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또 남자를 사랑함으로써 생활개량의 근본 힘을 얻어야 할 것같이 영원히 짝을 지어 살아갈 남자들에게도 자기를 사랑하고
또 여자를 사랑함으로써 생활개량의 근본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천만 번 바랍니다.> (49~50)
당시
여자는 이름도 없이 살았고 칠거지악이라는 말도 안 되는 규율 하에 버려지고 학대당하기 일쑤였다. 속되게
말하자면 ‘소나 개만도 못한 존재’로 다뤄지던 이들에게 나혜석은
자기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라고 말한다. 당시로써는 잘사는 마나님의 배부른 소리로 들릴 지 모르겠으나
얼마나 깨어난 발언인가.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떡 먹고 싶을 때 떡 먹는 거와 같이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요, 결코 마음의 구속을
받을 것이 아니다.> -62쪽
<흐르는
물결을 한편으로 흐르게 하면 기어이 타방면으로 흐트러지고 만다. 젊고 격렬한 흐름도 그 가는 길에서
틀려가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이니 자연을 누구의 힘으로 막으랴.>
63쪽
정조에
대한 그녀의 문장은 2026년 이 글을 읽는 나 자신을 놀라게 만드는데 심지어 1935년 그 당시의 시각으로는 아마 독자들이 난리를 치지 않았을까 우려가 될 정도이다. 요즘 말로 “충격 그 잡채(자체)!” 젊음의 열정을 규율로 다스리고 억누르면 엇나간다는 것은 지금도 통용되는 원칙 아닌가.
나혜석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녀의 삶이 치정과 같은 루머에 가려져 이런 훌륭한
글들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 참 서글프다. 화마로 사라진 그녀의 예술작품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어딘가 잠들어 있는 그녀의 흔적들이 널리 알려져서 “외도로 인해
쫓겨나 외롭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불행한 여인”이 아닌 “시대를
앞선 깨어난 사상으로 여성의 개방을 외친 선구자”로 다시 불리워지길 희망한다.
나혜석에
생각이 많이 기울여 있는 글이지만 염상섭 역시 여성들의 각성을 외친, 당시의 기준으로는 시대적으로 앞서
나간 지식인이었다. 특히 <긴급한 문제 8개조>를 보면 문장 마디마디가 지금의 기준으로는 고리타분하면서
보수적일지 모르나 핵심을 들여다 보면 여성의 각성을 강조한다.
<더구나 우리 조선같이 남자에게만 편리하게 된 번거롭고 까다로운
예절의 형식적 구도덕이 아직도 세력을 독점한 사회는 이같이 정신적 가정파산자의 좋지 못한 행실을 묵인, 간과하니
도덕이 무너짐은 물론이려니와 자손의 교육을 어찌할 수 있으며, 또 결혼법이 완비되지 못하고 조혼의 폐단이
상존하여 나이 고작 많아야 14, 5세에 아내를 맞으므로 생리상 필연적 결과로 사망률이 늘어나 이팔청춘의
나이 어린 과부로 일생을 보내게 되는 여자가 허다하니 이를 무엇으로 구하며 또한 예방하여야 할지 실로 중대한 문제라 하겠습니다.>124쪽
당시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이 가지는 사회적 불평등과 폐단을 콕 집어 언급하는 것이 속 시원하지 아니한가. 당시
여성들에게 있어서 ‘그래도 나에게 남성 지지자가 있다’는
의미있는 발언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아직까지도
개선되지 않은 노동 인권문제를 생각하면 그가 쓴 노동에 대한 다음 한 문장은 가장 와닿는 글이기도 하다.
<노동이
물품이 아니요 천한 역할이 아니며, 도리어 인류생활의 기본 요건이요 신성한 의무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무산계급을 위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눈물을 아끼지 않는 동시에 모든 불합리와 모순 위에 성립된 이
사회현상을 저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57-158쪽
사실 염상섭의 문장은 한자어도 그렇고 문체가 읽기에는 너무나 어려웠다. 어디에서 호흡을 멈춰야 할지 모를 정도로 숨가쁜 문장도 있었고 눈으로는 읽는데 머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인가 옛적 수능시험 대비 국어 문제집에서 보았던 그의 소설 지문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 북클럽은 지금까지 서양의 문장과 철학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번 <6년간 이어진장기 프로젝트의 완결! 창비 한국사상선 완간 기념 독서모임 지원 이벤트>에 당첨되어 전 30권 중 25권인 <나혜석 염상섭> 편을 읽게 되었다.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문학으로 관심 범위를 넓히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혜석이라는 멋진 인물을 발견함으로써 그녀가 쓴 다른 책들을 살펴보게 되어 기쁨의 소회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런 기회를 제공받게 되어 출판사에 감사할 따름이다.
<흐르는 물결을 한편으로 흐르게 하면 기어이 타방면으로 흐트러지고 만다. 젊고 격렬한 흐름도 그 가는 길에서 틀려가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이니 자연을 누구의 힘으로 막으랴.> - P63
<자기 자신을 진실로 사랑할 줄 알면 모든 다른 사람을 사랑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본질에서 나타나는 가장 높은 사상이요, 가장 높은 경험인 줄 압니다. (중략) 나는 바랍니다. 우리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고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또 남자를 사랑함으로써 생활개량의 근본 힘을 얻어야 할 것같이 영원히 짝을 지어 살아갈 남자들에게도 자기를 사랑하고 또 여자를 사랑함으로써 생활개량의 근본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천만 번 바랍니다.> - P49
<더구나 우리 조선같이 남자에게만 편리하게 된 번거롭고 까다로운 예절의 형식적 구도덕이 아직도 세력을 독점한 사회는 이같이 정신적 가정파산자의 좋지 못한 행실을 묵인, 간과하니 도덕이 무너짐은 물론이려니와 자손의 교육을 어찌할 수 있으며, 또 결혼법이 완비되지 못하고 조혼의 폐단이 상존하여 나이 고작 많아야 14, 5세에 아내를 맞으므로 생리상 필연적 결과로 사망률이 늘어나 이팔청춘의 나이 어린 과부로 일생을 보내게 되는 여자가 허다하니 이를 무엇으로 구하며 또한 예방하여야 할지 실로 중대한 문제라 하겠습니다.> - P124
<노동이 물품이 아니요 천한 역할이 아니며, 도리어 인류생활의 기본 요건이요 신성한 의무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무산계급을 위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눈물을 아끼지 않는 동시에 모든 불합리와 모순 위에 성립된 이 사회현상을 저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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