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말한다 - 세계를 바꾼 여성의 연설
이베트 쿠퍼 지음, 홍정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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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이자 스포츠를 사랑하는 세 아이의 어머니인 이베트 쿠퍼(Yvette Cooper) <여성이 말한다>이다. 이 책의 원서 <She speaks>는 초판이 나온 뒤 얼마 되지 않아 증보판으로 구성되어 출판되었다. 그만큼 여성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으며 또한 그 목소리의 기록에 대한 갈증이 있지 않았다 생각된다.


  이 책을 페미니즘의 기록으로 본다면 일종의 거부감을 가질 사람들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문의 글과 같이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점철된, 그리고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연설의 장에 여성 역시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이라 생각하며 읽기를 권장하고 싶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의 연설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격려하고 자극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힘과 목적의식이 담겨진 수많은 연설 중 수록할 연설을 고르는 것에 굉장한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 책에 담긴 40개의 연설과 이와 함께하는 주체, 목적, 배경, 뒷이야기 등이 힘있게 다가온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고대 영국의 전사 여왕 부디카Boudica부터 2022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국민 연설까지, 각각의 연설은 괴롭힘과 학대와 협박의 위협 가운데 큰 용기를 가지고 낸 목소리로 이루어졌다. 나는 이 연설 중 가장 와 닿았던 두 가지 연설을 꼽아 보았다.


광야에서 부르짖는 목소리! 그것은 한 여성의 목소리입니다. ‘남자들로 가득한 이 드넓은 광야에서 그녀는 수많은 군중 사이로 외칩니다.” (58쪽 조지핀 버틀러 Josephine Butler의 연설 광야의 목소리)


 1871년 폰티프랙트 보궐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현직 하원의원이자 자유당 소속 후보인 휴 차일더스Hugh Childers를 저지하며, 또한 그가 지지하던 감염질환법Contagious Diseases Act’를 철폐하고자 했던 조지핀 버틀러의 연설문 중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첫 문장의 힘이란!! 연설문의 트리거가 된 감염질환법이란 여성이 매춘을 했다는 혐의만으로도 강제로 의료검진을 받아야 하며, 성행위로 전파되는 질병에 감염되었을 시 강제 구금한다는 법안으로, 스틸강간(Steel rape)라고 불리었다.


 당시 군부대 등 감염질환의 주체이자 가해자는 남성이었는데 오히려 여성을 통제하고 매춘부를 괴롭히는 수단이 된 것이다. 그녀는 이런 사회적 취약 계층인 여성을 보호하는 캠페인을 오랫동안 진행하며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켰으며 이 같은 활동은 추후 여성 참정권 운동으로 이어졌다.



 작가가 꼽은 이 책 속 가장 중요한 연설은 2001 6월 베를린에서 독일인 의사들 앞에서 진행된 에바 코르Eva Kor의 연설이다그녀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로, 나치의사 요제프 멩겔레의 실험에 동원된 1500개의 집단 중 생존한 200명도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녀는 1944년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쌍둥이 자매 미리암과 함께 생체실험에 동원되었으며 수용소 해방 이후 루마니아를 거쳐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살았다

 

 이후 그녀는 과거 생체실험의 주체였던 나치 의사와 만남을 가진 뒤 홀로코스트 참상이 실제 사실이라는 공개적인 확인을 받은 뒤 그를 용서했으며, 이 연설을 통해 다시는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훼손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녀는 자신이 행한 용서가 그 누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인 치유의 행위라는 것을 거듭 밝혔다. 자신의 인생을 뒤바꾼 기억이자 잔인하고 슬픈 역사의 증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내 어깨를 짓누르던 고통스러운 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가 용서를 통해 마음속 짐에서 자유로워졌다 할지라도 이런 피해자들을 진정으로 치유하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잊지 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서 비롯할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말한다.

“이 책은 여성은 침묵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 이 책에 실린 여성들은 조용히 있지 않을 것이다.” (35쪽 서문 중)

 

 아직도 세상에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설이 떠돈다. (이런저런 성별론을 차치하고서) 세상의 성별은 결국 두 가지뿐이다 - 여성 아니면 남성

 교육기관의 상위 졸업자가 여성이 대다수이고 유리 천장을 깨부수고 기업의 수장에 자리 잡은 여성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위치에 있는 남성에 비해 여성은 언제나 위협과 음해의 대상으로서 자신뿐 아닌 가족 역시 보호받아야 할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Women should have each other’s backs.

이런 시기에 여성은 서로를 지지해야 한다이 목소리의 기록을 응원하며 11가지 여성을 지지하는 여성의 글 링크와 함께 이 책에도 실린 파키스탄의 시민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의 인용문을 남겨본다.

  

"So here I stand, one girl among many. I speak not for myself, but so those without a voice can be heard. Those who have fought for their rights. Their right to live in peace. Their right to be treated with dignity. Their right to equality of opportunity. Their right to be educated."

많은 소녀들 가운데 한 명으로서 저는 여기에 서 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말합니다. -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운 사람들: 평화로운 삶을 살 권리, 존엄한 대우를 받을 권리, 평등한 기회의 권리, 교육받을 권리.

"당신이 말을 꼭 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절대 뒤로 물러서서 누군가 그 말을 대신 해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당신이 누구든 무엇을 입든 당신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 P31

"광야에서 부르짖는 목소리! 그것은 한 여성의 목소리입니다. ‘남자들로 가득한 이 드넓은 광야’에서 그녀는 수많은 군중 사이로 외칩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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