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카페 싱긋나이트노블
구광렬 지음 / 싱긋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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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어두운 현실을 시인의 감성이 묻은 문장들을 입혀 쓴 작품인 것 같았다.

 자살은 인간만이 선택할 수 있는 극단적 행위라고 하는데 그런 어두운 정의와 별개로 책 속 문장이 섬세했다.

지하철은 각자 고독의 깊이만큼 달린다. 나에게는 팔을, 너에게는 다리만을 줄 것을 우리는 다 갖추었기에 혼자다. 종로3가에 내릴 그는 종로5가에 내릴 나와 무슨 상관이랴. 없어지면 없었다 생각하면 그만이다. (2)”

준혁은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는 대학생이자 위클리 맨이라는 이름으로 한 명을 한 주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상대방은 도움을 주는 자신의 존재를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번에 그의 눈에 띈 사람은 길 건너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명수로, 6년째 취업에 실패하며 고시원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여있다. 준혁이 자신에게 편의점 음식을 갖다 준다는 것을 알게 된 명수는 그에게 따지러 가고 그 와중에 준혁은 명수가 자살카페에 가입했다는 것을 우연찮게 확인한다. 그는 그들의 죽음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동반자살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쓰기 위해 이 모임에 동조하며 위장 잠입하게 된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각각의 이야기들이 있다.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수능을 망친 이후 죽음만이 도피라 믿는 미진, 교통사고 이후 직장 내 왕따와 우울, 공황장애로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영욱, 사회의 차별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괴로운 성 소수자 혜경, 영농 지원 정책을 받고 수많은 노력을 했으나 실패 후 빚만 떠안은 주택, 전 재산이자 희망인 200만원을 보이스피싱으로 날린 현아,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뒤 자살기도에 실패했지만 죽음만이 그 연인과 만날 수 있는 길이라 믿는 슬기.

 결론은 충격적이다. 모두가 예상할만한 결말에 여러 방향이 있겠지만 결코 뻔한 엔딩이 아닌지라 뒷골이 서늘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선택이 필요 없을 때 차라리 라는 말을 쓸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 책 속 인물들이 살 바에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을 하기까지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 비단 개인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참 씁쓸했다.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제도와 어쩔 수 없는 인식이 차라리어차피를 낳는 원인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말 마지막 문장을 곱씹어 본다. 나는 혹시 어쩔 수 없는 인식을 가진 1인이 아닐까..

‘차라리’는 마땅치 않지만 그래도 덜 나쁜 쪽을 택할 때 쓰는 말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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