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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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은 단순해서 아름답고, 단지 필요한 것은 그것을 지킬 용기뿐이 아니던가.‘ (p.149)

 

   엄마는 뉴스룸의 열렬한 애청자였다. 그래서 뉴스룸이 시작하는 시간이 되면 (만약) 월드컵 한일전이 있다고 해도 무조건 채널을 돌렸다. 당시 뉴스룸에서는 이 책에 언급된 근 6~7년 전부터 시작된 한국 현대사의 극적인 사건들이 리얼하게, 그리고 마음이 저릴 만큼 아프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나는 뉴스의 ㄴ자도 회피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그 주제들이 소위 ‘장난 아니었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 축을 이루는 사건이기도 했기 때문에 외면의 효과는 그닥 없었었다. 오히려 나는 지금은 촛불혁명이라 불리는 그날의 광장에 가서 저 뒤편 푸른 지붕을 향해 “물러나라!”를 한없이 외쳤기도 했기 때문에 그냥 자세히 그려진 뉴스를 피했을 뿐, 현실은 충분히 직시하고 있었다.

 이 책은 세월호 침몰과 대통령 탄핵, 이후 새로운 정권의 시작과 북한과의 회담 등 그가 뉴스룸의 메인 앵커로 활동 했던 손석희 자신이 경험하고 기억한 “장면들”을 그린 에세이이다.

 저자의 팬이라면 이 책에 쓰여진 그의 생각과 겪었던 일들, 당시 했던 말.말.말 등에 대해서 “오오, 이 분은 진실되고 참된 언론인이었다!”라고 할 것이고, 안티라면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 당시의 일을 구구절절 읊으면 내가 믿을 줄 알고?!”라고 할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제가 믿는 정론의 저널리즘을 제 의지로 실천해보고 훗날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 책 속의 내용은 그가 생각하는 정론들이 그 당시 장면들과 함께 얽혀있다. 나는 이성80 갬성20 느낌의 이 책이 좋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뒷이야기’를 너무나 담담하게 풀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오호, 그 분께서 조심하라 했다는 말인가?” 하는 서스펜스적 감상도 더불어. 

진실은 단순해서 아름답고, 단지 필요한 것은 그것을 지킬 용기뿐이 아니던가

- P149

공분(公憤)이란 것에는 감정뿐 아니라 논리도 들어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명분 없는 감정만 가지고 공분을 느끼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공분의 감정이 사그라들 때가 오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 어젠다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감정이란 것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쩔 수 없이 감정이라는 부분이 걷어내지고 논리만 남아 있을 때, 그때가 사실은 매우 애매한 지점이 되는 것이다. 이 어젠다를 계속 끌고 갈 것인가, 그러기엔 사람들이 너무 지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시청자들이 우리 뉴스를 떠난다면 그 어젠다를 이어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와 효력이 있는 것일까. - P70

정치,사회적으로 오랜 억압구조, 혹은 모순의 구조 속에서 일어난 현상을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다룰 수 있는 것이 옳은 저널리즘이라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만일 그런 저널리즘을 막는 세력이 있다면 이를 돌파하기 위한 운동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P288

언론은 담장 위를 걷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진실과 거짓, 공정과 불공정, 견제와 옹호, 품위와 저열 사이의 담장. 한발만 잘못 디디면 자기부정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경고는 언제나 유요하다. 다만, 그 담장 위를 무사히 지나갔다 해도 그 걸음걸이가 당당한 것이었는지 아슬아슬한 것이었는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터이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뉴스를 떠나 있는 지금의 나는 염치없이 평안하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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