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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곰 ㅣ 김영진 그림책 5
김영진 글.그림 / 길벗어린이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펼치자마자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 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우리의 일상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처럼.
그녀의 일상이 낯설지 않은 것을 보면 내게도 피아노 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거겠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 '아내'라는 이름을 달면서
나도 모르게 슈퍼우먼이 된다.
다른 곳을 보고 말하며 한 손에 프라이팬을 들고 요리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이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적은 예산으로 최대 효과를 볼 수 있게 누구보다 알뜰해야 한다.
그러나 그 알뜰함 속에 나는 없다.
미르학교 준비물, 그린이 과자, 미르아빠 슬리퍼에는 아낌이 없다.
폭풍 전야 같은 아침전쟁을 치르고 난 뒤
찾아 온 고요함은 어쩐지 자신을 더 쓸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가씨적과는 비교도 안되게 보잘 것 없어진 내 모습에
아침 한끼 마음껏 먹기가 어려워진다.
허한 마음이 엄마를 곰으로 만들었다.
엄마가 곰이 되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우아'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일상에서 엄마가 곰으로 변해버리다니,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고 흥미로운 상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환상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는
할머니가 등장으로 맥락과 명분을 갖게 된다.
아이들은 각자의 머릿 속에 각자의 엄마를 떠올리며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야기 속 엄마와 비슷한 엄마를 혹은 우리 엄마가 동물로 변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등등
아이들에게는 엄마는 어떤 의미일까?
짝꿍책을 활용하여 아이들 생각을 들여다보았다.
친구, 사랑, 잔소리쟁이, 기쁨, 시키는 쟁이, 요리사 등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그렇다면 엄마는 아이에게 어떤 의미이고 싶었을까?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 곰이 되어버린 엄마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해버리자
집안은 엉망이 된다.
엉망이 된 집은 할머니가 대신하여 치워주지만
엉망이 된 마음을 대신하여 채워줄 엄마는 여전히 부재중이다.
엄마의 부재로 세 부자의 일상이 달라진다.
아빠는 그린이를 돌보고, 미르는 그런 아빠를 도우며, 그린이는 엄마를 위해 사과를 닦는다.
철벽 같았던 엄마의 마음 속에도
가족이 함께하는 풍경의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엄마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엄마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상에
그 당연함의 이유였던 엄마란 존재의 부재로
엄마의 마음에 귀 기울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머님들과 만나 아이의 일을 상담하다보면
아이를 위하여 어머님들이 내려놓아야 했던 삶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는가를 느끼게 된다.
나 역시 아이가 생김으로 인하여
전과는 다른 삶의 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엄마가 되는 길이라 나 스스로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내 스스로에게도 오늘만큼은 묻고 싶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꿈꾸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반 뒷 게시판에 김영진 작가의 말이 늘 붙어있는 덕인지
아이들에게 표지를 보여주자마자 대번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와 '이상한 분실물 보관소' 책 제목이 아이들 입에서 나오며
반겨한다.
일상에 환상 한 스푼을 더하여 만들어내는 이야기꾼답게
피아노 치는 곰은 아이들의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