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대산세계문학총서 7
조라 닐 허스턴 지음, 이시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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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라 닐 허스톤은 미국 흑인 문학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갖는 작가다. "흑인의식"이 예술혼을 통해서 꽃피던 1920년대 할렘 르네상스 시절에도 그녀는 겁나게 독립적인 정치적 입장("어떤 인종집단도 전체로서 간주할 필요가 없다"[자서전 171])을 지녔던 지라 흑인 "문학계"에서도 왕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또한, "급진적"/"보수적", "흑인," "혁명적" 등등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그녀의 복잡성. 이러한 복잡성은 그녀의 자서전, 소설에 생생하게 구현되어 있다. 그란디 아이러닉하게도 바로 이 복잡성이 흑인성 추구 및 인종차별 "폭로"에 "혈안"이 되어 있던 (중산층) 동시대 흑인 문인들, 1930년대에 풍미했던 사회적 사실주의, 그라고 1960년대 (배타적으루 남성들로 우글거리는) 흑인민족주의 미학 운동이 그녀를 백안시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과 '민족/인종'의 맹안적 혹은 아포리아적 관계를 다시 목도한다. 

미국 문학사에서 "흑인" 문학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 할 리차드 라잇(대표작: {토박이}) 역시 허스톤의 1937년 소설이 인종의식이 결여된 것이라고 맹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에 허스톤은 자신은 흑인 소설을 쓰고 자픈 것이지 "사회학적 논문"을 쓰려는 게 아니다라고 맞받아 쳤다.

 앨리스 워커는 1975년 {미즈}지에 [조라 닐 허스톤을 찾아서]라는 유명한 글을 발표한다. 이 글로 인해 허스톤은 흑인여성작가들이 "전통"을 찾아가는 은유가 되었다. 워커가 보기에 허스톤이야말로 흑인들을 온전하지만 복잡하고, 축소된 바 없는 인간으로 "제대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해롤드 블룸이 {서구의 정전}에서 논한 바 대로 남성 작가들이 자신들의 문학적 아버지를 맹렬하게 거부하는 전통에서, 허스톤과 그 딸들은 흑인들의 전통 개념을 벼리어 낸 셈이다. 전통속의 전통, 흑인 여성의 목소리.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1937)에서 허스톤은 흑인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흑인)여성들이 자기해방적인 여성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심오한 원천으로 그려낸다. 이 점은 소설 초두의 유명한 장면에서 이미 예고되는 바, 주인공 재니 크로포드가 자기 안의 성적인 에너지에 처음으로 반응하는 이 유명한 장면은 강렬함 그 자체이거나 그것으로 가득차 있다. 꽃이 활짝 그라고 무성히 핀 배나무와 배꽃 주위를 윙윙거리는 벌들을 봄시롱 자신의 성적 에너지와 이성애에 눈을 뜨는 이 장면은 생명, 생기,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또한 이 장면을 바라보는 재니가 어떤 인간인지를 잘 보여주는디, "무성한 꽃들에 먼지묻은 벌들이 빠져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재니는 생명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계시를 보게" 된다(11).  그녀는 또한 "하나의 신비를 물끄러미 바라봄시롱" "사랑의 포옹과 황홀한 떨림을. . . 기쁨에 젖어" 바라본다(11). 재니는 "저것이 바로 결혼일 것!"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여기서 우리는 재니에게 아무런 억압이나 부정이 없다는 점을 발견한다. 대신, 겁나게 자극을 받은 재니는 "회한없고 달콤한 고통"을 느낀다(11). 이 장면은, 성적 애(愛)너지와 이성애적 사랑에 대한 한 흑인 여성의 억수로 긍정적이고 생생한 반응은 노예시절에는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활짝 꽃핀 배나무와 꽃들 속을 노니는 벌의 이미지는 이 소설 내내 자주 반복되는 주제 이미지이다. 재니가 "하나의 계시"로 느끼는 이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이 들은 "들리지 않은 목소리와 비젼을 확증"하고자 하는 갈망을 갖게 된다(11). 그녀는 해답을 찾으려 정원을 내내 서성인다. 그녀는 "세상의 시작을 노래하는 꿀벌들에게 키스를 함시롱" 자신의 삶을 축하하고 향유하기 위해서 "배나무가 -- 활짝 핀 여하한 나무"가 되고자 한다 (11). 열 여섯 살이던 이 때부터 꽃가루를 묻혀주는 꿀벌(자신의 삶과 사랑을 나눌 남자)을 찾아나서는 그녀의 탐색이 시작된다 

이 유명한 장면은 재니가 성적인 주체로서 그라고 새로운 세대로서 성장해나가는 긍정만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노예제도 시절에 살았던 재니의 할머니의 몸과 정신은 말그대로 식민화되었다. 재니의 엄마는 비참한 삶을 살다가 백인 선생의 강간질로 집을 나갔다. 즉, 재니의 엄마 세대에게도 흑인여성의 몸은 식민화되었던 것이다. 재니 할머니가 보기에, 흑인여성의 몸이란 안정적인 결혼을 통해서만 보호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래서 할머니 "존 테일러가 재니에게 키스를 함시롱 수작을 거는 짓거리"(12)를 보게되자, 재니를 60에이커의 땅을 지닌 로간 킬릭스에게 후딱 결혼시키려 한다. 하지만, 활짝핀 꽃나무가 되려고 하는 재니의 성적 에너지, 그라고 "꽃가루 묻히기"(pollination 즉 이성애)를 통해서 성적 에너지를 만족시키려는 재니의 갈망은 재산이 좀 있는 남자의 보호하에서 안온한 결혼생활을 하라는 할머니의 결혼관에 회의적이다. "로간 킬릭스 생각은 배나무를 망쳤다"(14).  


나중에 재니는 세 번 결혼하게 되는데, 매번 결혼을 결심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을 배나무와 연결시킴시롱, 그 나무 안에서 자신이 상상해 온 사랑하는 "꽃가루 묻히기"가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로간에 대해서 약간 회의적이긴 하지만, 할머니가 하라는 대로 로간과 결혼한다. 하지만, 로간과의 결혼 생활은 할머니의 말과는 달리, 자신의 몸을 실현시키는 것과는 동떨어졌다. 재니는 "결혼생활에 있을 법한 달콤한 무언가"를 욕망함시롱 할머니에게 충고쫌 해달라고 허지만, 이 할마씨는 아내로서의 희생만을 훈계한다. "아가, 좀 기둘려라. 살다보믄 니 생각도 바뀔거시여"(24). 재니는 "무성히 꽃필 시기"를 헛되이 기달리고 마침내 "이 결혼은 사랑을 피우지 못한다. 자신의 첫 꿈은 죽었고 그래서 그녀는 여성이 되었다"고 깨닫는다(25).  


재니가 원하는 것은 결혼생활이 주는 안정과 보호가 아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죽을 때꺼정 "모든 것에 흩뿌려지는 꽃가루와 봄철", 즉 "자신을 꽃피게할 꿀벌"(32)이었기에 재니는 로간을 떠나 조 스탁스와 함께 이튼빌(*자서전에 보면 이곳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자치 타운이며, 실제 허스톤의 고향이기도 하다)로 간다. (이 흑인 자치 타운에서) 조 스탁스는 나중에 돈많은 지주가 되고 또 시장님꺼정 된다. 로간을 버리고 조와 야반도주를 허는 재니에게서 우리는 할머니의 결혼관 대신에 자기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따르는 흑인여성의 모습을 본다. 즉, 할머니의 삶이 보여준 흑인여성의 헌신적인 여성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내는 개인적 여성주체로서 여성. (독립적인 여성 개인 주체. 이것은 허스톤의 자서전의 핵심 테마이기도 하다).  


"자신을 꽃피게 할 꿀벌"(32)을 꿈꾸는 재니. 그녀가 상상한 능동적이고 활력에 찬 결혼 생활은 조 스탁스와의 실제 삶에서도 여지없이 산산조각난다. 그녀는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야심가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강제된다. 조와 살면서 재니는 "물건을 팔도록 상점 안에" 늘 있도록 강제되며 자신이 좋아하는 대화자리에도 참석하지 못하도록 금지당한다. 게다가, 남자들이 재니의 아름다움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가게 안이나 주변에서는 머리를 꼭 쫌매라"는 남편의 잔소리에 시달림시롱 산다 (55). 즉, 남편의 복종 요구하에서 그녀는 능동성은 재갈이 물리며 감수성은 질식된다. "결혼 생활의 남모르는 상태를 곰곰히 생각하자니 그녀는 다시 그에게 열리지 않았다" (71).  

조가 죽고 난 후 재니는 독립적인 성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분명히 한다. 그녀는 "사람들을 찾아서 지평선을 향해 가는 위대한 여행을 할 준비가 되었다"(89). 할머니와의 강력한 유대 대신에 정신적 분리와 독립을 발전시킴으로써, 이제 그녀는 자신의 신체적 에너지가 이끄는 대로 자기 실현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살았던 대로 살 수 없더. 이제 나는 내 삶을 살 꺼야"(114).

티 케익과 재니의 사랑은 재니가 자기를 해방시킨 성적 여성 주체임을 잘 보여준다. 그를 만난 이후 그녀는 자신의 이성애를 유감없이 꽃피운다. 게임을 하고 한밤의 낚시하는 법을 마치 "규율을 깨는 어린애 마냥" 즐겁게 배움시롱 재니는 티 케익을 자신을 "꽃피워줄 꿀벌"로 받아들인다(106). 그들의 사랑은 젊은 넘들은 돈땜시롱 늙은 년을 잠시 쫓아다닌다는 관습적인 신념을 깨드리며, 활력과 기쁨에 찬 새로운 사랑을 보여준다 "춤추고 싸우고, 노래하고, 울고, 웃고, 매번 사랑을 얻고 읽고. 돈벌려고 낮내내 일하고, 밤새 사랑싸움허고"(131). 게다가 그들은 돈을 더 많이 벌려고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붙어)있으려고 함께 일한다. 이렇게 새로이 탐험되는 신체는 재니의 할머니 세대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흑인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긍정하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자신의 느낌과 뜻에 따라 움직여 가면서, 자신의 몸을 탈식민화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론, 자기를 해방시킨 성적인 주체로가는 이러한 탈식민화에는 나름의 (역사적) 통행세 혹은 대가를 요구하는 법. 허리케인이 몰아치고 티 케익은 재니를 구하려다 개에게 물려서 광견병에 걸리고 어찌할 바 없는 재니는 자신을 보호하려다 그를 쏘게 된다. 결국 재니는, 가슴에 단단히 쇠사슬을 묶어두었던 친구 비피 왓슨이 있는 곳으로 홀로 되돌아간다. 

이 소설에서 허스톤은 소위 흑인여성성의 절정판(cult of black womanhood)과 관련되지 않는 새로운 흑인 여성성과 섹슈얼리티를 보여준다. 재니의 몸과 섹슈얼리티는 백인과 흑인 남성들에 의해서 착취되고 유린될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다. 이제 흑인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는 과거보다 더 자유로운 장(field)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점차적으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주체로서 흑인여성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깨닫고 실현한다. 재니가 활짝 핀 배꽃 아래서 성적인 에너지와 이성애에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반응하듯, 자기를 긍정하는 이 "새 여성"은 자신의 몸을 탈식민화하고 자신을 해방시킨 성적 주체가 되는 "먼지가득한 길"(dust tracks)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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