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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 좌파에 대한 현재적 대화들 ㅣ 바리에테 10
주디스 버틀러 외 지음, 박대진.박미선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을 중심으로 버틀러의 전체 이론적 궤적을 다시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체입장과 관련하여 보편성은 최근 비판이론에서 논쟁적인 토픽들 중 하나다. 좌파 담론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보편성”을 교조적으로 활용했음을 주목해왔으며 “보편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보편적”인 것이라 명명된 것이 사실은 지배 문화의 편협한 속성이며, “보편화가능성”이란 제국적 팽창과 분리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론의 정치적 힘이란 그 스스로를 혹은 그것이 만들어낸 개념들, 어휘들, 이데올로기들, 지식-주장들(knowledge-claims)을 “진리”로 유통시키는 역능에 좌우된다.
서구 페미니즘 내부에서 일어난 논쟁의 중심인물이었던 버틀러의 이론적 궤적의 핵심에 있는 것은 필자가 보기에 스스로를 “진리”로 유통시켜야만 하는 정치 기획의 보편주의적 입장이 노정하는 토대(주의)적(foundational) 아포리아에 대한 끈질긴 천착이다. 버틀러에게 보편성이란 선험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저러한 정치 기획들이 주장하는 “보편성”들은 항상 경합중이다. “보편성” 획득을 위해 경합중인 특수성들은, 특수성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폐제 메커니즘을 통해서 “보편적인” 것으로 “태어난다.” 여성 (주체), 보편성, (페미니즘) 이론의 정치적 기획들과 관련하여 버틀러의 입장은 반토대주의(anti-foundationalism)이다. 198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논쟁 심장부에서 버틀러는 여성이라는 “보편화된” 범주를 다시 본다. 버틀러의 작업은 여성이라는 용어/개념을 토대주의적(foundational) 으로 사용했을 때 부딛히게 되는 아포리아에 대한 철학적 재검토로 응축된다.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에서 버틀러는 페미니즘을 특수와 보편을 연결하는 번역적 정치 실천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우리”의 주장이 효과를 내고 합의를 강제하고, 특정 주체인 “우리”를 “보편주체”인양 수행적으로 “둔갑”시키기 위해서, “우리”의 주장은 일군의 번역을 거치게 된다. 또한 “우리”의 주장은, 여러 “보편적” 주장들이 경합하며 그 의미와 힘이 만들어지는 다양한 수사적(rhetorical) 문화적 맥락 속에서 펼쳐지기 마련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이것은 그 어떠한 “보편성” 주장도 문화적 규범 및 힘들의 관계와 동떨어진 채 발생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사회적 장에서 규범들이 경합 중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규범들을 통해서 설정되는 경계들을 가로지르는 문화적 번역(translation)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주장도 가능하지 않다. 번역없이는, “보편성”이라는 개념은 경계들과, 특수성들이 지닌 차이들을 가로질러 “보편적”이 되지 못한다. 역사가 일러주듯, 번역이 없이는, 보편성 주장이 경계들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식민적 확장주의적 논리를 통해서일 뿐이다.
“보편적인” 범주들로서 여성과 젠더를 해체시키는 버틀러에게 주체구성과 주체입장(subject-position)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 즉 열린 기획으로 남아있다. 문화적 번역과 경합의 견지에서 (페미니즘의) “보편성”과 페미니즘 정치 기획의 주체로서 여성들을 어떻게 더 심도있게 다시 무대에 올려놓을 것인가는, 특수성을 지닌 정황적(situated) 주체들인 우리 각자의 몫이다. 여러 사회 운동들 간에 어떤 공통적 기반이 있을 법한지를 살펴보되 이러한 기반을 초월적인 토대들에 의지하지 않은 채 발견하고, 공동의 정치 기획을 생산, 실천하는 것 말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번역실천을 통한 공동의 정치기획의 예로 2007년부터 활동해 온 반차별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공동행동>은 장애인, 이주노동자/이주민, 성적 소수자, 성노동자, 문화활동 및 문화정책 연구 집단, 사회당, 여성민우회 등이 집단마다 다르게 가해지는 차별들에 대항하고자 결성된 모임이다. <공동행동>은 반차별법에서 배제된 여러 집단들이 그 법안에 다시 포함될 것을 요구하면서 반차별법에서 소외된 집단끼리 구성한 다소 느슨한 연대체이다.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점은 요구사항과 특성이 다른 여러 집단이 반차별법에서 배제된 집단으로서 그 법안에 각 집단이 포함될 것을 요구하면서 필연적으로 각 집단들을 하나의 주장으로 묶어줄 어떤 종류의 보편성을 필요로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공동행동>은 반차별법에 대항하여 힘을 모으고 포럼을 열고 각 집단이 부각시키고자 하는 쟁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배우는 대화를 하면서 공통의 기반을 찾고자 하였다. 이런 식의 연대 모임은 단순히 이상적이고 모여야 한다는 당위(버틀러라면 어떤 “초월적 기반”)에 기초해서만 지속될 수 없다. 오히려 <공동행동>을 구성한 각 집단은 실제로 서로 이해관계와 견해가 부딪히고 이를 조정해가야 하는 끊임없는 우연적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예컨대, 여성장애인 운동과 트랜스젠더 주체 운동이 만나는 경우를 보자. 장애인 권리 운동은 장애인을 인간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러한 “보편적” 요구는 곧 왜 장애인 화장실은 성별이 없는가(즉 왜 장애여성을 생각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질문 형식의 주장은, 장애여성을 인간으로 대해 달라는 것이 곧 성별을 가진 인간의 기존의 기본적 요건을 가진 존재로 대해 달라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곧 트랜스젠더 운동이 제기해온 성별이분법에 대한 문제제기와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특히, 개인화장실, 성별 표식이 없는 화장실을 요구해 온 트랜스젠더 운동의 과제를 생각하자면 말이다. 이 두 집단이 차별에 저항하는 것을 공동목표로 하는 투쟁에서 조우한 경우 이 두 집단은 “인권”을 보편적 의제로 설정하면서 끊임없는 대화와 번역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한 집단 혹은 특정 집단들이 내세우고자 하는 “보편성”은 특수성을 보편적인 것으로 번역하는 실천을 통해서 언제나 경합에 부쳐진다. 보편성이 번역을 통한다는 점은 이론의 정치적 힘이 특수와 보편을 매개하는 번역능력과 번역실천에 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앞서 언급한 예에서 우리는 번역실천, 즉 자신의 이해관계를 공유가능한 언어로 만들고 잠정적이지만 공동투쟁의 지반을 만들어나가는 행위로부터 다양한 주체들이 네트워킹을 통해서 운동하고 연대하는 방식, 연대의 부재, 새로운 운동 주체의 출현 방식을 보다 역동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