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미를 파는 디자인 - 제품의 개념을 바꾸는 디자인 혁신 전략
로베르토 베르간티 지음, 범어디자인연구소 옮김 / 유엑스리뷰 / 2022년 1월
평점 :
전공인 경영 수업에서도, 다년간 활동하며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창업동아리에서도 늘 받아왔던 교육이나 평가의 프레임을 해당 도서에선 완전히 파괴했는데, 마치 머리를 얻어맞은 듯 얼얼하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거의 모든 경영 수업과 창업아이템 지원사업들은 언제나 아이디어 기획부터 시장조사 단계를 아이템 개발의 시초로 보고 ‘진정으로 고객이 원할만한 제품인가? 그래서 수익성이 있는가? 시장조사는 많이 했고 결과는 긍정적이었는가?’에 목맸다. 때문에 모든 질문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설사 어떠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고 해도 현재 시장의 니즈와는 맞지 않으니 실패할 것이 틀림없단 판단을 내리고 기각시키곤 했다. 이러한 반대에 부딪혀 아이디어를 수정하고 또 수정해 결국 최초의 목적에서 한참 엇나간 그저 그런 아이디어, 실패 위험이 적은 평범하고 다른 경쟁업체와는 아주 미세한 차별점이 있는 아이디어만이 채택된 사례가 셀 수 없다. 매번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나 역시 자연스레 시장조사는 아주 중요하고 고객 욕구 간파와 고객 중심 제품 설계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시장조사에 강박관념을 갖게 됐고 말이다.
허나 이 책은 내가 지금껏 배우고 경험했던 내용과는 상반되게 ‘사용자 중심의 혁신은 방법론에 불과하다’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는다. 고객 중심의 설계, 시장조사에 기반한 설계는 기존 시장 내에 존재하는 의미에 새로운 의문을 갖기보다 그것을 강화하는 것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며 말이다.
「어떤 기업이 점진적인 변형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에 투자하거나 같은 방식으로 디자인한다면, 타사와의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디자인은 전사적 품질 경영처럼 기본적인 방어 전략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p.108)」
저자인 베르간티 교수의 이 독창적이고도 허를 찌르는 제안은 내가 그동안 주입에 가까운 배움으로 매몰된 사고를 하고 있었단 사실을 깨닫게 했다. 어느 때보다 급변하는 사업 환경 속에서 기존 경쟁사보다 약간의 기술적 혹은 외형적 개선을 이룬 제품이 과연 경쟁력이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은 실제로 조금이라도 안정적인 길을 택하고 결과적으로 그리 큰 성과 없이 시장에서 소멸한다. 단순히 현 시장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기업이 아닌 새 시장 개척자이자 선도자로 우뚝 서고 싶다면 고객에게 아예 새로운 의미를 선사하는 제품(혹은 서비스)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의미를 파는 디자인>을 통해 얻은 파격적 사고다.
새로운 혁신 패러다임, ‘디자인이 주도하는 급진적 혁신’에 대해 논하는 <의미를 파는 디자인>. 많은 경영학도나 학자, 경영자 및 디자인 전문가들은 물론 자신의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파괴적 영감을 선사할 이 책은 실제 기업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이해가 쉽고 흥미로웠다. 특히 디자인 혁신으로 성공한 기업가들의 혁신 과정과 방법에 대한 진술은 신뢰감을 갖게 했고, 이를 통한 응용을 가능하게 했다. 또 저자의 경영과 혁신에 대한 타오르는 열정과 세밀한 관찰력, 강력한 통찰력을 두루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상당해 감탄을 자아냈다.
어쩌면 이 책을 기점으로 경영 패러다임이 180도 뒤바뀔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생길 정도로 인상적인 도서였다. 아직 학생 신분이었다면 창업동아리와 학부 수업의 필독서로 선정을 교수님께 제안드렸을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
*유엑스리뷰 출판사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