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행복한 하루 - 포토명상, 길상사의 사계
이종승 글.사진 / 예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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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피(加被)을 받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포토 명상, 길상사의 사계’를 펴낸 이종승님은 바로 그런 재가불자중의 한 분입니다.
그는 1년 365일, 봄 여름 가을 겨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살았습니다.
아니, 몸으로 아닌 마음으로 절속에 푹 빠져 있었다는 말입니다.
스님도 아니면서 머릿속에, 마음속에, 걸으면서, 먹으면서, 자면서,
온통 부처님과 절 생각으로 가득 차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는 그랬던 것같습니다.
소신공양이란 말은 들어보았어도 ‘사진공양’(寫眞供養)은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그는 가진 게 없어, 그것밖에 할 게 없어 사진공양을 했다고 겸양을 하지만,
그가 가진 것은 너무나 크고 그가 이룬 것은 놀랍고 대단한 일입니다.

일여거사(一如居士), 그가 2년전 ‘웰빙휴가’ 관련사진을 길상사를 찾은 것은
불교에서 말한 ‘억겁의 인연’일 것입니다.
도심속 참선의 현장을 찍으러 왔나요? 아마도 그랬겠지요.
불도(佛道)에 문외한인 일여가 원(願)을 세우게 된 게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그것은 그의 바탕이 희여서(素)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논어(論語) 팔일(八佾)편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흰 바탕위에 무심지경에서 렌즈를 들이댔을 것입니다.
‘무공해 사진’ 300장. 연출한 사진은 한 장도 없답니다.
그는 부처님에게만 참공양을 한 게 아닙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인 어머니에게 공양사진 160여장을 보여줬다지요.
어머니는 “좋다. 참 좋다” 하시며 ‘열반’에 드셨겠지요.

‘이토록 행복한 하루’(예담 출간, 235페이지, 10000원)에 실린 100장의 사진을
들여다 봅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조용하다못해 속삭이는 듯한 그의 글은 상큼한 감동을 줍니다.
하나님은, 부처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합니다.
사진을 잘 찍으면 글이나 못쓰던지, 글을 잘 쓰면 카메라는 젬병이든지 하면
좋을 텐데, 분명히 총애하는 중생이 있는 것같습니다.
내밀한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발효된 듯한 글맛을 느낍니다.
맛깔스럽습니다. 기분이 착 가라앉고 자아를 성찰하게 됩니다.

법정스님의 거친 손을 찍고, 노래자랑을 사양하며 어색하게 웃는 선지식의
자연스런 표정도 읽고, 화룡점정 점안식의 결연한 스님의 표정도 비켜가지 않습니다.
길상화보살님이 누구십니까?
시성 서정주님보다 우리말 사랑에 남달랐던 백석시인의 영원한 여인이 아닙니까?
보살님의 서원은 도심속에 이렇게 아람한 도량으로 남았습니다.

참 좋고 좋은 일입니다. 길상사에는 우리네 인생이 고스란히 있습니다.
길상사에는 스님들의 안타까운 구도와 일상의 웃음과 수녀들과의 정담이,
마당에 줄을 그어대며 빗질을 하는 여유가, 중생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듯
총총대는 다람쥐가, 참으로 정갈하게 놓인 흰 고무신과 검정고무신의 절묘한 조화가,
직박구리새가, 가람 지붕위에서 바라본 ‘연등 옷’이, 만삭의 배를 이끌고도 악착같이
3천배를 하는 새각시가, 연꽃과 원추리의 공존이, 웅숭깊은 찻물이, 동자승의 해맑은 웃음이,
어느 젊은 보살의 극락전 포행이, 그윽한 매화향기가,
선잠을 털어내는 죽비소리가,
합장하는 손이, 땀을 줄줄 흘리는 아줌마의 기도가, 도반이, 염불이, 염주가, 삭발이,
목탁이, 걸레질이, 돌절구속에 단풍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길상사에는 너무너무 많은 것이 있습니다.
아니 삼라만상이 다 있습니다.

그는 3천배를 하는 마음으로 새벽이면 새벽, 한 밤중이면 한 밤중,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며 길상사의 기쁨과 환희와 음영을 모두 엿보았다 합니다.
이게 그의 작품입니다. 삼백육십오일, 사계절, 그는 사진공양에 헌신했습니다.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어느 거사의 ‘나무아미타불’ 선창만 따라 외며
절하다 보면 새벽공양 시간이 옵니다. 3천배입니다.
저는 실패하여 2천배에 그치고 말았지만,
아무 것도 모른 고1 아들은 악착같이 따라해 큰 서원을 이뤘습니다.
사진기자인 저자도 3천배를 했답니다.
비록 마치지는 못했으나 그는 그렇게 원을 세웠답니다.
기특하고 지극한 마음가짐입니다.
일단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합니다.
그의 글과 사진이 바로 그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가 그 전보다 나아지셨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불행하고 긴장되고 늘 무엇에 쫓긴 듯 초조하십니까?
그렇다면 극락전의 반들반들한 놋쇠 문고리나
아니면 나뭇가지로 ‘만든’ 빗장을 보러 오십시오.
업무스트레스로 골치가 지끈지끈거리는 어느 오후,
일여거사는 “형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나누는 우애 참 좋아요”라는 헌사와 함께
막 출간돼 뜨근뜨근, 참한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겨우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주는,
그윽한 차 한 잔도 보시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일여거사님, 성불하십시오.
나무관세음보살.

우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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