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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9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귀자의 소설은 언제나 인간의 상처를 기록하는 문학이었다.
그러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그중에서도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을 향한다.
이 작품은 여성의 분노와 복수의 서사로 알려져 있지만,
그 핵심에는 ‘이해받지 못한 인간의 고독’이 놓여 있다.
그 세계를 가장 또렷하게 마주한 인물은 역설적으로 가해자가 아닌, 감금된 배우 백승하이다.
Ⅰ. 타인의 절규를 마주한 인간
백승하의 존재는 단순한 피해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폭력 앞에서 반응하는 대신, 그것을 이해하려는 자로 남는다. 그의 침묵은 공포가 아니라 관조의 형태를 띤다. 그가 마주한 것은 한 개인의 광기가 아니라, 한 시대의 불안이자 억눌린 구조의 그림자다.
그는 자신을 묶은 여인이 왜 그토록 분노했는지 생각한다.
그녀의 폭력은 냉혹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적인 외침이 섞여 있다. 그녀가 무너지는 이유는 사악해서가 아니라, 너무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분노는 세계를 향한 저항이었지만, 그 방식이 자신을 소멸시키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Ⅱ. 금지된 소망의 본질
이 소설의 제목은 욕망의 역설을 드러낸다.
금지된 것을 소망한다는 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결핍된 존재임을 뜻한다. 강민주는 금지된 자유를 꿈꾸고, 백승하는 금지된 이해를 꿈꾼다. 한쪽은 권력의 역전을, 다른 한쪽은 관계의 복원을 향해 움직인다.
그러나 두 인물의 소망은 닿지 않는다. 그녀는 권력을 통해 인간이 되려 하고, 그는 이해를 통해 인간을 지키려 한다. 결국 그 엇갈림 속에서 둘 다 파멸한다. 욕망은 실현되는 순간 무너지고, 금지는 인간의 도덕적 형태로 남는다.
Ⅲ. 이해의 불가능성, 그리고 문학의 윤리
이해는 문학의 오래된 화두이지만, 이 작품은 그 한계를 드러낸다. 백승하는 그녀를 이해하려 하지만 끝내 다다르지 못한다.
그녀의 세계는 언어의 바깥에 있다. 폭력과 사랑, 증오와 동정이 뒤섞인 그 감정의 혼합물은 이성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이해할 수 없음’ 자체를 하나의 인간 조건으로 제시한다. 이해의 실패는 무능이 아니라, 타인과의 경계를 유지하려는 윤리적 행위로 읽힌다. 백승하는 판단하지 않고, 단죄하지 않는다. 그의 침묵은 수동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 침묵 속에서 독자는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존중하는’ 가능성을 본다.
Ⅳ. 인간이라는 잔존물
강민주가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은 백승하의 의문이다.
그는 자신이 본 것들을 정리할 수 없으며, 그녀의 고통을 명확히 해석할 수도 없다. 그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이 작품은 인간을 단죄하거나 구원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내면에 남은 잔여—폭력의 기억, 이해의 실패,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공감의 흔적—을 남긴다. 문학은 그 잔여를 기록하는 예술이다. 그것은 완결되지 않기에, 오래 남는다.
Ⅴ. 결말 이후의 문학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결말 이후에 완성되는 소설이다. 인물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독자의 사유가 이어지는 시작이 된다. 백승하의 시선은 그 사유의 출발점이다. 그는 세상을 이해하려 했으나, 결국 인간의 본질이 이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그 깨달음의 순간, 비로소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자리— 타인을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는 영역’—에 닿는다. 그곳에서 인간은 완전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된다.
VI. 맺으며
양귀자는 이 작품을 통해 폭력의 사슬을 끊지 않는다. 대신 그 사슬의 질감을, 무게를, 인간의 체온으로 느끼게 한다. 그녀의 문장은 사회를 고발하기보다, 인간의 내면을 해부한다. 그리고 백승하라는 인물은 그 해부의 결과로 남는다.
그는 이해하지 못한 채 기억한다. 그 기억이야말로, 이해보다 오래가는 인간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