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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의 기억 ㅣ 사계절 민주인권그림책
최경식.오소리.홍지혜 지음 / 사계절 / 2024년 10월
평점 :
작년에 <미궁의 설계자>라는 연극을 보았다. 남영동 대공분실, 그 공간을 설계한 사람, 데이트 도중 갑자기 끌려가 그 공간에 갇혀 고문당하는 사람, 시간이 지나 그 공간을 취재하러 온 사람의 이야기였다. 나는 건축 쪽은 잘 모르는데 남영동의 그 건물을 설계했던 김수근이라는 건축가는 우리나라에 꽤 많은 건축물을 설계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옛 문예회관, 현재는 아르코예술극장이라고 불리는 대학로의 공연장인데, 바로 이 연극이 공연된 곳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남영동과 비슷한 공간이 아르코소극장에 존재한다며 지하2층 소극장에서 1층으로 통하는 나선형 구조의 계단을 통해 퇴장하도록 안내를 받았다. 난 사실 그 극장에서 25년간 꽤 많은 공연을 보아왔는데 거기에 그런 계단이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공연 속에서 눈을 가린 채 팔이 묶인 채 나선형 구조의 계단을 걸으면 얼마나 올라가는지 몇 층이나 올라갔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눈도 뜨고 팔도 자유롭지만 공연을 보며 먹먹해진 마음을 추스르며 1층으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그림책 <건축물의 기억>은 그 건축물.. 남영동 대공분실에 관한 이야기다.
이 그림책은 대공분실의 창문처럼 좁고 긴 판형인데 만져보면 약간 까슬까슬하다, 표지를 만지면 표지 그림 속 벽돌을 만지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하다.
<건축물의 기억>은 처음 대공분실에 관한 간단한 설명 이후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초반에는 가해자의 이야기, 후반에는 피해자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해자의 이야기는 가해자의 말로 전개되고, 피해자의 이야기는 3인칭 전지적작가시점으로 진행된다.
최경식, 오소리, 홍지혜 세 작가님이 함께 하신 작품이라 그런지 매우 다른 그림체를 세 가지를 볼 수 있는데 다른 작가님들은 모르겠지만 연필화는 최경식 작가님인 것 같다. 이 연필화는 건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섬뜩한 그림들은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글은 가해자의 섬뜩한 말들..
-꿈을 깨뜨리고 현실을 깨우쳐 줘야지.
-다 국가를 위한 일이야.
그리고 계속되는 가해자들의 자기합리화.
-누군가 해야 할 일을 기꺼이 할 뿐이야.
-우리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책임 회피까지.
-그렇게 심하게 하지도 않았어.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어.
후반부는 차가운 푸른 빛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작은 상자 같은 느낌의 네모난 방이 여러 개 있다. 그 안에 갇힌 피해자는 한쪽 구석에 앉아있기도 하고, 벽에 귀를 대고 다른 소리를 들으려고도 하고, 진술서를 쓰기도 하고, 욕조에 물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덩치 큰 가해자와는 대조되는 작고 고개 숙인 피해자.
어쩌면 여러 개의 방들은 벽 너머 다른 방들인지도 모르겠다.
피해자는 저항하다 결국 굴복하고 만다.
-결국 그는 그들이 불러 주는 대로 받아 적었다.
-몇 번의 번복 끝에 진술서를 마쳤다.
-처음으로, 아파서가 아니라 슬퍼서 울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피해자만 400명이라고 한다. 민주화를 위한 그들의 노력 그리고 그들의 희생에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그들의 희생위에 세워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우리는 아니 나는 잘 지켜내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도 했다.
이 책에는 남영동대공분실에 관한 설명이 따로 나와 있지는 않다. 어쩌면 독자가 스스로 찾아보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360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홈페이지 링크를 첨부한다.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namyoungdong/index.html
이 홈페이지에서 설명을 보고 그림책을 다시 읽었더니 그림책 속에 나온 장면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12월 4일 7시에 사계절 출판사 유튜브에서 이 그림책 작가님 세분과 권윤덕작가님이 라이브북토크를 한다고 하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찾아보시길.
https://www.youtube.com/@sakyejulbook
그리고 이 책은 5살 딸아이에게는 읽어주지않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조금 더 커서 한국사에서 현대사를 배우게 되면 그때 함께 읽어보고 함께 민주인권기념관도 가보아야겠다.
네이버카페 제이포럼에서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그림책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적은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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