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야 하는 비밀 - 성폭력 예방 그림책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125
카롤리네 링크 지음, 자비네 뷔히너 그림, 고영아 옮김 / 한솔수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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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야 하는 비밀> 카롤리네링크 글 자비네 뷔히너 그림 고영아 옮김 한솔수북

 

저는 예지랑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저는 정말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설명해 주는 편이고 예지도 있었던 일이나 자신의 감정을 자세하게 잘 설명하는 편이죠.

올해 들어 예지가 자주 하는 말 중에 비밀이야!”가 있어요. 가정 보육 중이긴 하지만 제가 24시간 옆에만 있는 건 아니고 설거지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는 동안 잠시 혼자 있는 시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해 주거나 TV에서 본 거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그건 비밀이야!”라고 하거든요. 저는 항상 말하죠. 비밀은 있어도 되지만 엄마한테는 그 비밀까지도 다 말해야 한다고. 그래서 이 그림책 제목을 보자마자 꼭 읽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동안 엄마한테는 비밀까지도 다 말해야 한다는 게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제목을 정말 잘 지은 것 같아요.

예지에게 책 제목이 <말해야 하는 비밀>이라고 했더니 비밀은 숨기는 건데?”라는 반응을 보이더라구요.

 

꼬마 여우 피니는 숲속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요. 친구들과 부엉이 선생님을 좋아하죠. 그런데 엄마 아빠와 친한 친구 볼프강 삼촌이 집 근처로 이사를 와요. 피니도 볼프강 삼촌을 좋아해서 함께 나무 위 집도 짓고 엄마 아빠는 볼프강 삼촌에게 피니를 맡기고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가기도 하죠. 그런데 어느날 볼프강 삼촌이 피니의 몸을 만졌어요. 피니가 싫다고 큰소리로 말했는 데도 뽀뽀까지 했어요. 그리고 볼프강 삼촌은 지금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라고 하죠.




피니는 정말 귀여운 미소를 가진 아이였어요.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뒤 부터 피니는 불안한 표정, 생기없는 표정으로 변해버려요.

피니네집은 아이가 있는 집 답게 언제나 어질러져 있어요. 그런데 이 일을 당하기 전과 당한 후 어질러져 있는 양상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를 찾아볼 수 있어요. 늑대 인형을 통해 드러난 피니의 심정이죠. 처음엔 쇼파 위 하트 쿠션 위에 올려 놓았던 늑대 인형이 나중에 보면 쇼파 밑에 그냥 막 놓여있고 나중엔 침대 다리에 꽁꽁 묶어놓은 모습도 확인할 수 있어요. 커다란 늑대 손만 그려 놓기도 하죠.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 것 말고도 피니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던 거죠. 그래서 어쩌면 엄마아빠는 피니의 행동 변화를 알아차렸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아마도 선생님이 피니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부모님과 선생님은 이미 피니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피니가 솔직히 이야기했을 때 어른들의 반응은

비밀을 털어놓다니 정말 용감하구나. 말해 줘서 고마워.”

아주 끔찍한 비밀이었네. 이제라도 얘기해 주어서 정말 다행이야.”

이렇게 용감하다니, 아빠는 네가 참 자랑스럽구나.”

삼촌이 한 행동은 정말 나쁜 짓이란다. 다시는 우리집에 못 오게 하마.” 였어요.

 

문득 나는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믿었던 친구가 내 새끼를.. 얼마나 화가 날까? 얼마나 속상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저렇게 말해줘야하는 부모의 역할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예지에게 책 제목이 <말해야 하는 비밀>이라고 했더니 비밀은 숨기는 건데?”라는 반응을 보였어요. 그래서 어떤 비밀이길래 말해야 하는지 알아보자고 하고 책을 읽었죠.

저랑 예지는 처음 읽는 책은 듣기만 한다는 규칙이 있어요. 그래서 처음 책을 들을 때는 질문 없이 집중해서 그림 보면서 듣기만 하거든요. 그런데 중간 중간 저를 쳐다보더라구요. 듣다가 이상하다고 느껴서였던 것 같아요. 싫다고 하는데 뽀뽀하는 아저씨 장면과 아저씨가 자는 척하는 피니의 몸을 만지는 장면에서 아이가 설명을 필요로 하는 듯이 계속 저를 쳐다 보았지만 우선은 넘어갔어요. 그랬더니 책이 끝나자마자 질문이 쏟아지더라고요.

두 번째 책을 읽으면서는 이야기하면서 읽느라고 책을 덮기까지 30분 이상 걸렸던 것 같아요.

예지는 하지마세요. 싫어요 라고 말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고.

자신의 몸은 다른 사람이 허락없이 만지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야기하다 보니 엄마가 슬퍼할까 봐 이야기 안 할 것 같다 그런 이야길 하더라구요.

엄마가 슬퍼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그래도 이야기해 보라고 했어요.

혹시라도 피니처럼 하지마세요 싫어요 이야기를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그건 네가 잘못한게 아니라고 이야기 해 주었어요. 엄마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너무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안 나오더라 라고...

 

20년 전에 밤늦은 시간에 삼각지역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데 술취한 아저씨가 뒤에서 엉덩이를 만졌어요.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 사람과 나 둘만 있었고 경찰을 불러도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에 버스 오는 거 아무거나 우선 자리를 피했어요. 타고 사람 많은 곳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어요. 그런데 그 게슴츠레한 눈과 그 표정, 그리고 그날 이후 거의 일주일이 넘도록 엉덩이에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에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집에 오는 길에 버스에서 당시 남친에게 말했더니 제가 그 늦은 시간에 거기 있었던 게 잘못이라고 하더라고요. 더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나네요.

호주 퍼스에서 공항버스 기사가 짐을 내려주면서 제 백팩을 메는 걸 도와 주는 척하며 허리를 잡았어요. 목표는 가슴이었던 것 같은데 정말 엉뚱한 손길에 ?”하며 몸을 확 피했고 그순간 그 운전기사는 자기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듯한 액션을 취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두번 해 본 게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우리를 마지막에 내려준 것 역시 계획된 행동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핸드폰이 없어 경찰을 부를 수도 없었고 숙소가 노출되었고 나는 여기 며칠 머물러야 하고 동생이랑 여행 중이고.. 그나마 동생이 아니라 내가 당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같이 여행하는 동생 기분 망칠까봐 정말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일기장에만 쓰고 참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간 고민했어요. 내가 신고를 안 하고 그냥 넘어가면 분명히 다른 여행객에게 또 시도를 할텐데... 그러나 신고를 하기엔 기사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고 여행 중인데 지장이 될 것 같아 그냥 넘어갔죠.

아놔... 쓰다보니 몇 가지 더 생각나는데 저만 이런가요. 뭔 경험이 이렇게 많이 떠오르지..?

20년이 더 지난 일들인데... 지금도 기분이 나빠요. 그리고 성인이 겪은 일인데 그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던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하고요.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을 읽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런 일은 안 일어나면 좋겠지만 이미 일어나 버렸다면 뒷일은 나한테 달려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큰유진처럼 자랄지 작은 유진처럼 자랄지는 달라질 테니까요.

너무 이야기가 길었는데 아무튼 다시 서평으로 돌아와보면..

아이들에게 성범죄 예방교육을 하기에 너무나 좋은 그림책이에요.

안돼요! 싫어요! 하지마세요!” 라고 배운대로 용감하게 말해도 당할 수 있음을 가슴은 아프지만 냉정하게 보여주고..

나쁜 사람이랑 가진 비밀은 나를 아프게 한다는 거..

그런 비밀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거..

선생님과 부모님은 믿고 이야기하면 편안해 진다는 거..

아이랑 이야기 나누기에 정말 좋은 책이었어요.

 

그러나...

저의 진심은 아이들이 이런 그림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네이버 카페 제이포럼에서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그림책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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