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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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에 책을 다 읽었다. 아니 에르노의 책은 이로써 네 번째였다. 주말 내내 얼어붙은 여자 책 속 문장의 조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 사이 며칠이 지나 수요일 밤이 되었고, 마침 창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 샤워를 하고 난 뒤 개운한 기분으로 침대에 엎드렸다.

여름이 왔다고 까슬까슬한 여름 침구로 바꿔본 건 올해가 처음인데, -계절은 금방 지나간다고 믿었기 때문이지만- 그건 어쩌면 여름은 모든 것이 유예되는 계절*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인용

‘아니 에르노’를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하는 이유를 하나만 꼽자면 문장력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장 칸에 아니 에르노의 책이 몇 권 끼워져있다. 그의 세밀한 감정 묘사는 건조하고, 그래서 차갑기도 하지만 갑자기 끓어오르듯 뜨겁기도 하다.

책의 냄새와 활자를 좋아하는 내가 특히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전체적인 내용 숲을 보기보다는 숱한 문장 속에서 반짝이는 표현 찾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마치 사진작가가 한자리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숭고한 행위 뒤에 멋진 사진 한 장을 쟁취하듯, 아니 에르노는 늘 주변을 관찰하며 표현을, 그리고 문장을 빚어내는 듯했다. 결코 멋부리지 않았지만 저절로 태가 나는 그런 문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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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여자>라는 제목은 얼핏 보면 유럽의 스릴러 소설을 떠오르게 하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기록이다. 펜촉을 꾹꾹 눌러 담아 썼으리라. 아니 에르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가 전통적으로 남성에게 부여한 특권들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특권들을 문제 삼고 후대에 넘겨주지 않는 일이야말로 우리, 소녀들, 여성들의 임무다."

과거를 되돌아보건대 나 역시 (순탄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몇몇 나쁜 기억이 있다. 여성이라 경험했고, 견뎠어야 했고, 보이지 않는 멍처럼 새겨진 순간들이 있다.

목소리 높여 임무를 수행하지는 못할지라도 이렇게 읽고, 읽어보기를 권유하며,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자 몇 자 적어본다.

얼어붙은 여자는 anybody 이자, somebody 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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