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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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욤 뮈소의 신작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은 책을 좋아하거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제목이다.

개인적으로 기욤 뮈소의 최근 소설 중에는 <파리의 아파트> 를 좋아했었다. 여행지와 미술작품 등과 연관 지어 읽는 재미까지 더해져서 그랬을 거다.



20 :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작가는 주인공인 네이선 파울스를 말한다. 베스트셀러를 배출하고 최정상 자리에 오른 젊은 작가 네이선이 갑자기 절필을 선언했는데... 그 이유는 소설 말미에 가서 밝혀진다. 책 초반에 네이선을 인터뷰하는 형식의 글이 있다. 기욤뮈소 자신의 이야기를 빗대어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보몽섬 같은 미지의 공간을 만들어놓고 당분간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은 작가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생각이 아닐까?



몽섬은 작가가 만들어낸 상상의 섬이다.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 애서톤, 포르크롤 섬, 이드라, 코르시카, 스키에 등의 섬 여행을 하던 중에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소설을 쓴다는 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일이다. 등장인물의 생김새와 성격과 가치관과 인생사부터 재조명함은 물론 배경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거나 혹은 이렇게 탄생시키는 일은 굉장히 멋진 일인 것만 같다. 

소설 속 네이선 파울스는 비밀을 간직한 채 보몽섬에 칩거중이고, 작가 지망생 라파엘은 그를 찾아 보몽섬으로 떠난다.

보몽섬이 조금 더 아름답게 그려졌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섬에서 보이는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이나, 높이 굽이치는 파도, 해가 뜨고 지는 것이나 폭풍우가 치는 등의 기본적인 자연의 모습 말고, 보몽섬의 매력을 드러내는 장면이 별로 없어 아쉬웠다. 실제의 섬이 아니긴 하지만 책을 통해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수집하는 것 또한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릴러 소설 중에서도 가볍게 읽기 좋은 기욤뮈소의 책은 단순 재.미.로 읽기에 좋다. 책을 재미로만 읽는 행위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던데 -그들은 주로 인문학이나 경제학 관련 책을 읽는다-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얘기다. 예를 들어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만 보더라도 재미요소를 제외하고 배울 거리가 곳곳에 숨어져 있다. 유명인의 글귀는 물론, 프랑스에 대한 소소한 지식이라든지 어떠한 용어나 효과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그런 게 그렇다. 그리고 유명한 작가는 다 이유가 있다. 쉬운 문장 하나도 그냥 허투루 쓰지 않았음을 느끼고, 문장의 결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비행기에 가지고 탈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그런 소설 말이다.

#스티븐킹 #유혹하는글쓰기




보몽 섬이 펼쳐 보이는 특별한 마법이란 이처럼 종잡을 수 없는 요소들의 어우러짐에 있다는 걸 은연중 간파했다. 보몽 섬은 카멜레온 같은 곳이었고, 독특하고 개성이 넘쳐 딱히 분류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섣불리 규정하고 분석하고 설명하려 든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에 대해서도 깨달았다.
- P33

네이선은 플로베르의 소설 <감정 교육>의 도입부에 나오는 ‘그건 홀연한 출현 같았다.’를 재현할 마음 따위는 전혀 없었지만 꽤 오랫동안 젊은 여자의 자취에서 묻어나는 정체 모를 감수성과 에너지, 태양처럼 환하게 빛나는 광채에 넋을 잃었다. 말하자면 그는 잠깐 동안 무장을 해제하고 그 자신에게 통제된 취기 혹은 가벼운 심취, 황금빛 주사약, 밀밭처럼 따사로운 빛을 허락했다. - P72

그녀의 흔적은 마치 한 줄기 햇살 혹은 매혹적인 한 방울의 향수처럼 손에 넣으려고 할수록 어디론가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녀가 남기고 간 향기를 음미하고 싶었다. - P88

네이선은 뜨거운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두 손으로 거머쥐고 테라스로 나왔다. 절로 몸이 덜덜 떨릴 만큼 날씨가 쌀쌀한 가운데 장밋빛깔 가로선들이 서서히 움직이며 푸른 실로 자수를 놓은 하늘의 장막 속으로 녹아들었다. 밤새도록 불어댄 북동풍은 여전히 비질하듯 해안을 쓸어댔다. 대기는 간절기도 없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여름에서 겨울로 훌쩍 건너뛴 듯 건조하고 냉랭했다. - P127

편집자들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아나? 자네가 2년쯤 죽어라 고생해서 쓴 원고를 보여주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출간이 어렵다는 말을 하기 마련이지. 그들은 몇 마디 충고를 해주면 자네가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소설을 쓸 때 반드시 참고할 거라 생각할 거야. 편집자들이란 자네가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눈에 불이 나도록 매달려 있는 동안 미드타운이나 생제르맹 데 프레의 식당에서 오후 3시까지 늘어지게 점심 식사를 하며 시시한 잡담이나 즐기는 자들이기도 해. 작가들이 계약서에 서명하길 주저하는 눈치를 보이면 날이면 날마다 전화해 압력을 가하기 일쑤지. 편집자들은 누구나 맥스웰 퍼킨스 (Maxwell Perkins 1884-1947: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토마스 울프 등의 작가를 발굴)처럼 되길 꿈꾸지만 언제까지나 고리타분한 고정관념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야.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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