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읽다, 쓰다 -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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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너무나 가볍게 읽히는 에세이들이 난무하는 것 같아요. 책을 읽고 싶은데 이젠 그런 책이 싫증나서 다시 고전문학으로 돌아갔어요.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한 건 <오만과 편견>이었죠."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만난 멤버가 하는 말을 들으며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책이 '별로'라고 폄하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안 읽으면 그만이니까. 우린 그런 책을 쓰지도 못했으니까. 같은 이유를 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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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올드하네요. 고전을 읽다니. 이젠 그렇게 진지한 책은 안돼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대세예요." 

당시 내가 읽고 있던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던진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나는 갑자기 올드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좋아하는 문장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런 문장들은 깊이 있는 (소위, 진지한) 책들에 많이 있다. 
진정 요즘 세대는 고전보다는 가벼운 책에만 손길을 주는 건지, 요즘 세대라는 건 몇 살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위에 언급한 두 명과의 대화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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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계속 고전을 읽고 있다. 귀엽고 아기자기하며 텍스트보다는 그림이 많은 책들을 읽는 날도 있겠지만, 조금은 어렵고 복잡한 고전의 세계에 우리는 분명히 빠져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살다 읽다 쓰다> 는 고전문학에 대한 짧은 감상을 모아놓은 책이다. 김연경 작가님이 쓰신 이 책을 읽다보면, 고전문학을 소개하기 위한 줄거리라기 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짧은 독서일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좋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드는 책. 미처 다 읽지 못했던 세계 고전 문학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 지금이라도 다시 접해 볼 문학 작품을 결정할 수 있게 토닥여주는 책. 전혀 지루하지 않은 책 말이다. 

 

<마담 보바리>를 쓸 때는 스스로를 "손등에 납덩어리를 얹어 놓고 피아노를 치는 사람"에 비유했는데 그 살인적인 고통을 5년 동안 감내했다. 대체로 플로베르는 동굴 속에 칩거한 고독한 ‘곰‘, 크루아세의 은둔자를 자처하며 고행하는 수도승과 같은 자세로 문학에 임했다. p39


- P39

그렇다면 더더욱 <신곡>이 당시 고급 문학(종교 문학)의 언어이자 유럽 공콩어였던 라틴어가 아니라 ‘여자도‘ 읽을 수 있는 피렌체 속어, 즉 현지어로 쓰였다는 사실을 강조해야겠다. 신의 준엄한 정의와 무한한 자비의 세계로 입문함에 있어 그 문턱을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는 생각은 혁명적일뿐더러 갸륵하기 그지없다. 과연 시성답다. p63


- P63

생활인으로서 그는 가난과 간질병, 유형살이, 도박벽, 비교적 파란만장한 사생활 등 불행 내지는 결함이 많은 인간이었지만 소설가로서는, 물론, 천재였다. 과연 인간은 천재로 태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천재로 자라나는 것인가. 30여년 째 <죄와 벌>을 읽어 오며 새삼스레 부질없는 질문을 던져 본다. p121


- P121

사실상 첫 소설인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처럼 되고 싶은 희망을 슬쩍 내비친 그녀가 실은 "식구들 가운에 유일하게 못생긴 편이라 지식과 교양을 쌓으려 열심히 공부"한 메리에 가까웠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p145


- P145

몇몇 소설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인간 실격>은 거의 사소설에 가까운, 말하자면 ‘가면의 고백‘이다. 맨손 체조만 좀 했어도 그의 우울증은 치유됐을 것이라는 미시마 유키오의 냉소적인 말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고통을 향한 그의 집요한 엄살에 모종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p255


- P255

이렇듯 <변신>은 장밋빛 진보를 약속한 근대의 몽상에, 안일한 인간관과 세계관에 물음표를 찍고 진화 대신 퇴화(인간에서 동물, 심지어 벌레로!), 상승 대신 전락, 성공 대신 실패, 축조 대신 해체를 얘기한다. 죽음의 순간에 삶이 조망되듯 인간이 인간이길 멈출 때 비로소 그 본질이 밝혀진다. <변신>을 덮는 순간 우리가 저 치명적인 변신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건 이 때문이다. p266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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