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언제든지 스스로를 망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꿈이나 희망, 기세 좋던 에너지 같은 것들은 그저 근거 없는 자신감만을 양분으로 하고 있던 것일지도.
수이의 손을 잡았을 때,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창고 구석에서 수이를 처음 안으면서 이경은 자신이 뼈와 살과 피부를 가진 존재라는 것에 감사했고,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기억에 남는 건 이런 일들밖에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무언가를 씻어서 찢거나 토막 내고 물에 끓이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시간과 비용과 ... 무엇보다도 건강하고 넉넉한 육체와 정신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그 모든 것의 해답은 좋아서 혹은 싫어서였는데 그 두가지 말은 무섭도록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라서 상수는 늘 자기가 설명서가 필요한 연마기나 절삭기 같은 기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외로움이 없으면 더 외로울 것이다"라고 썼다. 그녀는 혼자 지낸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러면서도 혼자 있는 것을 늘 두려워했다. 사실 흔히 볼 수 있는 이 명백한 역설은 친밀함을 가장 강렬히 원하는 사람이 대체로 거부에 가장 예민하기 때문에 생긴다. 우울증에 걸렸든 걸리지 않았든 타인은 흔히 스트레스와 불안의 원천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