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뭐든 해 봐요 - 판사 김동현 에세이
김동현 지음 / 콘택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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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자기 연민에 빠지는 날들이 있다. 참 사는게 힘들다. 남들은 다 잘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힘든가 싶고, 열심히 했는데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자괴감 들고, 실패하면 다시 뭔가를 시도할 용기가 잘 나지 않고..그렇게 나약한 인간임을 느끼면서도 에이 다른사람들도 다 그렇지 라고 위안하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같은 사람을 만나는 순간 그런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사지멀쩡한 사람도 공부가 어렵고, 사는게 힘든데, 장애를 안고서도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간 사람의 이야기는 한참을 읽다가도 이게 소설인가? 실제 인물인가? 자꾸 책장을 뒤적이게 된다.

이사람 누군가 찾아보고 싶어 인터넷에 검색하니 얼마전 유퀴즈에도 나온 실제 판사님이었다. 표정도 넘 밝고 말하는 것도 온화해서 그냥 얼핏 봤다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 같은 분이었다. 세상에 대한 불만과 억울함 같은것이 한점 없는 사람처럼 시종 평온한 말투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걸 보고 있으려니 세상 초월한 사람같기도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더래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텐데, 카이스트 재학 중 간단한 시술을 받다가 시력을 잃는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청천벽력이었을 것이고, 앞날이 밝은 청년이었기에 어찌보면 더 크게 좌절할 수도 있었을텐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이 너무 놀라웠다. 삼천배를 매일같이 한달간 하고 저자가 스님에게 들은 말이 인생의 해답이었을 것 같다. "육신의 눈은 뜨지 못했지만 이제 마음의 눈을 뜨게 되었다."

1부에서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다' , '누군가의 도움을 기꺼이 받을 수 있다면', '소소한 성취감이 쌓여 괜찮은 삶을 만든다' 와 같은 말만 보아도 이분의 긍정적인 태도를 알수 있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태도만으로 로스쿨 졸업, 변호사, 판사가 되는 성취까지 쉽게 다다를 수 만은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 생각하니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저자는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카이스트 시절 성적이 좋지 못했던 것까지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비장애인이었을때보다 장애인이 되고 난 뒤 학점이나 성과가 더 좋았던 걸 보면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간절한 상황에서 더 초인적인 능력 발휘가 가능한 것 같다. 그러니 내 실패를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어쨋든 자랑스럽게도 장애를 극복하고 재판연구원, 장애인 인권센터 변호사를 거쳐 2020년부터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시각장애인 선배 판사님들이 있다니 알면 알수록 놀랍다. 선배 최영 판사도 임용될 당시 화제가 되었었는데 그의 말에도 깊은 울림이 있다. "시각장애인 판사라서 부담스러운게 아니라, 판사라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는 우리의 시각이 오히려 차별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고 동등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대한민국 헌법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라고 한다. 이렇게 초인적인 능력치를 발휘한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신체적 차이, 경제적 차이, 사회문화적 차이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사회에서 한사람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물리적/사회적 장애물을 철폐하는 일에 모두가 같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얼마전에 미국 장애운동가 쥬디스 휴먼의 일대기를 다룬 '나는 휴먼'이라는 책도 읽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장애인이면서 사회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인식 전환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사회로 가는 길이 더 빨라질 것 같은 기대가 든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여러 시선으로 바라본다. 무시하고 차별하기도 하고,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하며, 대단하다고 감동받기도 한다. 어떤 대상을 접하고 어떤 감정이 드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점은 나는 그런 대상이 되기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위해 사는, 어딘가 불편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한 인간일 뿐이다. "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김동현 판사님의 스토리를 통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흔한 진리를 다시한번 되새기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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