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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쫓던 사슴 : 내 안의 빛
조안나 매키너니 지음, 풍 응우옌 쿠앙 & 후인티 킴 리엔 그림, 박지숙 옮김 / 반출판사 / 2022년 12월
평점 :
태양을 사랑하는 아기 사슴은 태양이 떠오른 시간은 따뜻했고, 춤추고 노래하며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태양이 사라지면 어둠에 갇힌 세상이 두렵고 싫었습니다. 세상 반대쪽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사라진다는 엄마의 말에 질투가 났고, 태양과 친구가 되어 함께 지내고 싶었지요. 봄의 설렘이 시작된 아침, 가족들과 작별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태양을 찾아 떠납니다. 긴 여정 중에 개구리, 해바라기, 여우를 만났지만 아무도 태양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지 못했고, 흰 날개를 가진 올빼미는 어둠 속에서 친구가 되어 줄 달의 존재를 깨우쳐줍니다. 밤이 무서워 눈조차 뜨지 못했던 아기 사슴이었기에 그제야 달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태양만큼 아름다운 달이 눈에 들어왔고 부드럽고 온화한 은빛 달과 함께 집으로 돌아갑니다. 더 이상 밤이 두렵지 않게 된 아기 사슴은 박쥐와 올빼미, 고슴도치, 반딧불이가 눈에 들어오고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줄도 모르고 밤의 아름다움에 푹 빠집니다. 태양을 따라다니느라 자신이 얼마나 자랐는지 알지 못했던 아기 사슴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주변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태양만 쫓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낮에도 밤에도 빛으로 가득 찬 평온한 세상을 온전히 즐깁니다.
행복을 쫓던 파랑새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눈부시게 빛나던 태양의 세상만 행복으로 알던 아기 사슴.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가 불행하다고 여기던 어둠의 세계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통념이 깨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지혜의 상징인 올빼미는 아기 사슴에게도 어둠이 더 이상 불행한 세계가 아님을 달의 존재를 통해 깨우쳐주지요. 나에게 있어 올빼미와 같은 친구는 과연 누구일까? 잠시 쉼표를 찍고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살면서 마주하는 불행과 좌절의 순간에 그것이 더 이상 불행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친구가 내게도 있습니다. 그림책을 비롯한 수많은 책 속의 스승들, 백 마디 말보다 진실한 눈빛으로 그저 묵묵히 손 잡아주던 온전한 내 편이 있습니다. 올빼미는 그런 고마운 존재를 다시 떠올리며 감사하게 했습니다.
“밤에는 달을, 낮에는 태양과 함께 가보렴. 그들은 둘 다 너의 친구란다.”
올빼미의 한마디 속에 깊은 철학이 숨겨져 있습니다. 꽃길만 걷기를 바라지만 인생길이 어디 꽃길만 있겠습니까. 흙길도 있고 진흙탕도 있고 언덕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만나야 제대로 인생길 걷는 것일 테지요. 꽃길 좋아 꽃길 옆에 집 짓고 한평생 산들 꽃 지고 나면 흙길뿐입니다. 꽃길, 그것도 다 한철입니다. 인생 새옹지마라고 하지요? 좋을 때가 있으면 힘든 때도 오고 어떤 때라도 영원히 계속되는 법은 없습니다. ‘고(苦)를 고(苦라)로 깨닫고 락(樂)은 락(樂)이라고 알아 인생은 고락 함께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는 불가의 가르침이 그대로 겹칩니다.
아기 사슴은 봄의 설렘이 시작된 아침,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벚꽃 흩날리던 ‘꽃길’을 지나 스스로 어둠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 용기가 있었기에 더 이상 엄마 품에만 머물지 않고 훌쩍 자란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자랐는지, 주변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오직 태양만 따라다닌 아기 사슴을 보며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면서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던 지난 시간이 떠오릅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틀을 깨는 시기가 있지요. 나이 중년을 넘어서야 내 삶에 쉼표를 찍고 낮에는 태양과 함께, 밤에는 달빛과 함께 산책을 즐기며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평온했고,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요.” 세상 밖으로 뛰어나가 자기만의 멋진 뿔을 만들어 당당한 수사슴으로 성장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지난 5년간의 어둠의 시간을 잘 통과해낸 내가 보였습니다. 뭉클한 감동과 감사로 마지막 장면을 와락 안아주었습니다. 이젠 낮에도 밤에도 수사슴과 함께 걸으며 환하게 웃는 내가 보입니다. 2023년을 시작하며 읽은 첫 그림책인데 '내 안의 빛'을 올해의 슬로건으로 가슴에 달아봅니다. ㅡ라니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