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의 사랑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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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인의 사랑

평범한 회사원인 가와이 조지. 맞선을 통한 결혼은 싫었던 그는 어느 날 찻집에서 일하는 나오미를 보고 그녀를 키워서 자신의 아내로 맞을 생각을 한다. 몇 번의 만남 속에 그녀와 친해진 그는 그녀를 설득해 동거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상적인 결혼 생활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사치와 이성관계로 인해 그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출판사 소개글처럼 ‘읽는 재미’만은 있었다. 다니자키 선집들 중에서 두꺼운 편에 속했던 책임에도 술술 읽혀서 읽는 것만큼은 재미있었다. 다만 이전 단편들에 비해 성적인 묘사가 늘고 자극적이어서 읽는 내내 불편함과 불쾌함은 있었다. 앞의 단편들은 작가의 성향을 헤아려서 고혹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치인의 사랑에 와서는 성도착증 환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집요한 묘사와 가치관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 책이 나왔을 때 ‘나오미즘’이라고 불릴 정도로 나오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했다고 하던데 나로서는 아직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엮이는 남자마다 다 목을 맬 정도로 그렇게 매력적인 여성이었던 건가…?

치인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바보라고 한다. 결국 바보의 사랑이라는 뜻이 되는데… 이렇게 보니 제목이 내용에 비해 너무 순한맛이라 타 출판사에서 미친 사랑이라고 번역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주인공부터 시작해서 일본인 서양인 가리지 않고 나오미에 미쳐서 놀아나기 바빴으니…
결국 나오미의 본 모습을 알고도 끝까지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가와이만이 치인으로 남아버린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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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죽음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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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죽음

<인어의 탄식> 인어라는 새로운 종족의 신비로움에 매료된 중국 청년이야기
<마술사>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마술쇼
<금빛죽음>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온몸을 바친 청년이야기

P29. 그런데 눈 안쪽은 또 달콤하고 서늘한 윤기를 품어서 깊고 깊은 영혼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영원’을 응시하는 듯한 숭엄한 빛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인간의 어떤 눈동자보다 유현하고 묘원한 훈영이 감돌고, 낭려하고도 애절한 요영이 번뜩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습관적인 ‘미’를 훌쩍 뛰어넘는, 인간보다 신에 가까운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P123. 이윽고 눈을 떠 방 한복판 탁자 위에서 금빛의 몸 그대로 얼음처럼 차가워진 오카무라의 사해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 집 고용 의사의 설명에 의하면, 금박으로 인해 온몸의 모공이 막혀 죽었을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보살도, 아라한도, 악귀도, 나찰도, 모두 금색 사체 아래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부러 비슷한 주제로 작품을 엮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단편집의 주제는 미의 추구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은 인어, 마술과 같이 어떤 특정 형태가 되기도 하고 예술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 미의 추구라고 했지만 사실 각각의 주인공들이 보이는 건 추구를 넘어선 집착에 가깝다.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해 집착하거나, 마(魔)에 홀려 스스로 희생양이 되거나, 자신만의 예술을 고집하다가 스스로 예술품이 되어버리는 모습은 광기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서있던 이들은 끝내 아름다움에 미쳐 그곳에 자신의 몸을 던져버린다.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스스로의 선택에 몸을 내맡긴 이들에게도 과연 비극일까?

개인적으로 <인어의 탄식>이 기억에 남았다. 미지의 존재가 지닌 아름다움을 몇 페이지에 걸쳐 다채롭고 풍부하게 묘사하는 걸 보고 이래서 다니자키, 다니자키 하는 거구나 싶었다. ‘아름답다’ 이 한마디를 이토록 다양한 단어로 묘사해낼 수 있는 것은 이 사람밖에 없지 않을까.

쏜살문고에서 나온 다니자키 선집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는 건, 표지의 그림이 작품과 딱 맞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던 그림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아!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데, 그럴 때마다 이것만큼 이 소설을 관통하는 표지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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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박연정 외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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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문신, 소년, 작은 왕국으로 이루어진 다니자키 단편집.
문신. 이상적인 발을 가진 여성에 집착하던 문신가의 눈에 든 한 소녀가 문신을 받고 난 후 매혹적인 여성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 이야기.
소년. 부잣집 도련님과 어울리게 된 소년이 점차 가학적인 놀이에 눈을 뜨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작은 왕국. 시골 학교로 부임한 선생님과 자기만의 규칙으로 반을 지배하게 된 전학생의 이야기.

P11. 그 여인의 발은 고귀한 살갗으로 이루어진 보석처럼 느껴졌다. 엄지에서 시작해서 새끼로 끝나는 가지런한 다섯 발가락의 섬세함, 에노시마 해변에서 캐낸 연한 선홍빛 조개에도 뒤치지 않을 발톱의 색감과 구슬과도 같은 발뒤꿈치의 완곡미, 그리고 바위 틈에서 새어 나오는 맑은 샘물이 항상 발치를 씻어 내고 있다고 착각할 만한 윤기.

첫 작품 <문신>을 읽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다니자키의 묘사는 ‘아름답다’보다 ‘매혹적이다’라는 단어가 잘 어울렸다. 평범한 단어들인데도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단어들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서술자의 은밀하고도 집요한 시선처리는 문장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 시키기도 하지만 불쾌감을 느끼게 할 정도라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소년>과 <작은 왕국>은 두 작품에 나오는 아이들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전자는 아이들의 잔혹함과 가학적 성격이 순수함에 가려져 있었다면, 후자는 아이들의 지나친 순수함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볼 수 있었다. 순수함과 잔혹함의 경계에 선 아이들의 모습을 두 가지 측면(칭찬받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어디까지 번질 수 있는가, 놀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아이들은 무슨 짓을 벌이는가)에서 볼 수 있다는 건 꽤 흥미로웠다.
다만 <소년> 같은 경우는 폭력적인 행동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읽기 힘들었다. 주의 문구가 하나쯤 필요하진 않았을까… <작은 왕국>의 경우 어른의 시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만의 위계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이 묘미였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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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6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서은혜 옮김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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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들을 모아놓은 단편집.

P26. 인간은 간혹 충족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욕망을 위해 일생을 바쳐 버리기도 한다. 그것을 어리석다고 비웃는 자는 필경, 인생에 대한 방관자에 불과할 것이다.

P128. 그 나이에 안 어울리는 붉은 입술로 히죽, 기분 나쁘게 웃으며 “그렇사옵니다. 돌팔이 그림쟁이들은 아무도 추한 것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습니다.”라며 시건방진 소리를 했습니다.

이번 민음북클럽 선택 도서로 고른 라쇼몬.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무렵 읽기 시작했는데 참 시기를 잘 골라 읽었다고 느껴진 책이었다. 서늘한 느낌이 느껴지는 단편들은 괴기스럽다는 표현이 참 잘 어울렸다. 한 작품씩 읽고 나면 ‘그래서 뭐였지?’라는 정체불명의 불쾌감이 진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과장해서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장하지 않아도 문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서늘함이 왜인지 더 더 하고 글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모든 단편들이 다 흥미롭고, 인상 깊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은 <지옥변>이었다. ‘예술에 대한 인간의 광기는 어디까지 향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듯한 그 작품은 제 3자의 시선에서 한 그림에 얽힌 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어떤 지역 대신에게 지옥의 한 장면을 나타낸 <지옥변상도>의 제작을 요청 받은 한 화가가 있었다. 이 화가는 자신이 직접 본 것만 것 그리는 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에 꿈에서 본 것을 그리거나, 자신의 제자들에게 지옥의 형벌과 비슷한 벌을 주거나 하는 등의 일을 벌였다. 그리고 완성을 위해 대신에게 마차에 갇혀 불에 타 죽는 여성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부탁을 하기에 이른다. 대신은 이 부탁을 이용해 악감정을 품고 있던 화가의 딸을 마차에 가둬 불을 지르고 이를 본 화가는 환희와 희열에 휩싸이고 그림을 완성한다.
자신의 딸이 타죽는 장면을 보면서도 그림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할 수 있다는 희열에 둘러싸인 모습에서 아버지의 사랑조차도 예술을 향한 광기를 넘어설 수는 없었음을 보여준다. 그 부분이 무척이나 소름 끼치는 한편, 흥미가 돋는다. 예술이라는 것은 부모 자식간의 정 마저 넘어설 수 있는 것인가 하고. 하지만 끝내 딸을 뒤따라 가는 화가의 모습에서 의문은 남는다. 그림을 완성한 것으로 집념과 광기가 사라져버려 잠시 뒤로 밀려나 있던 부정이 솟아오르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진정 광기가 부정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백성들에게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대신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작품을 읽다 보면 아름다운 것도 추하게 그리고, 독한 마음 씀씀이 때문에 화가가 악의 축처럼 보이지만, 자신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고 끝내 죄를 물어 화형 시키는 대신을 보면 인간의 악한 본성은 누구에게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자신이 본 것만 그린다는 화가의 말은 결국 지옥은 현세에 존재함을 비유적으로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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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0
오 헨리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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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단편선

미국의 모파상이라고 불리는 작가 오 헨리의 단편선을 모은 작품집. 짤막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은 소소한 반전을 통해 감동과 유머, 아이러니 등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P41. 그녀는 창가에 서서 잿빛 뒷마당의 잿빛 울타리 위를 걸어가는 잿빛 고양이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짐에게 선물을 사 줄 돈이 고작 1달러 87센트밖에 없었다.

P297. 이윽고 달력이 봄이 찾아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정말 오고 나서야 드디어 왔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봄인 법이다.

어렸을 때 읽은 마지막 잎새의 작가가 이 사람이라는 것을 이번 책과향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지막 잎새와 비슷한 작품이 많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첫 작품부터 감동을 박살내는 전개에 살짝 당황해 버렸다. 그러나 몇 작품 연달아 읽고 나니 대략 어떤 구성인지 느껴졌다. 그냥 내가 알고 있는 작품이 마지막 잎새여서 그렇게 착각을 한 것일 뿐, 오 헨리의 작품은 감동만이 아니라 유머와 비극, 아이러니 등 우리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반전이라는 요소를 통해 표현하고 있었다.

마지막 잎새는 병으로 죽어가던 주인공이 담장 그림을 통해 희망을, 경찰과 찬송가는 삶의 희망을 발견한 순간 감옥으로 잡혀 들어가게 된다는 아이러니를, 가구 딸린 셋방에는 끝내 자신의 연인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을, 붉은 추장의 몸값에서는 사기를 치려다 되려 사기를 당하고마는 웃픈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보고 오 헨리의 작품은 인생이라는 상자를 다양한 직업과 사연을 가진 인물들로 하여금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예측불허한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이 전부 다르게 보이는 것이라고. 꼭 그렇게 전하는 것만 같았다.

다만 정말 짧은 분량으로 이루어진 탓인지 매 작품마다 전개 방식이 비슷하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이건 오 헨리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익숙해지면 다소 뻔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에 몰아서 읽기보다는 생각날 때 한 두 편씩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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