ランチ酒
原田 ひ香 / 祥傳社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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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5. 私は食べて、飲んで、生きていく。そして、生きていれば何かが変わり、それはどこかであの子につながる。
P123. ‘나는 먹고 마시며 살아갈 거야. 살아 있으면 뭔가가 변할 테고, 그게 어디선가 그 아이에게 이어질 거야.’

P166. “그래서 장례식도 납골도 하지 않으시죠. 요즘 그런 분들이 많은 듯하지만, 장례식이나 친척들을 응대하는 일이 번거로워도 그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점점 체념한달까,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점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그리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장례는 치르는 일에는 그런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P223. 何よりも勉強になったのは、どこに行ってもびくびくする必要はなく、わからないことがあっったら店の人に尋ねればいいという簡単なことだった。
P236. 그때 크게 배운 건 어디를 가더라도 주뼛거릴 필요 없이 모르는 게 있으면 점원에게 물어보면 된다는 간단한 사실이었다.

P235. ああ、おいしい食べ物ってなんて素敵なんだろう。なんて、人の気持ちを和ませるのだろう。
P247. 아, 맛있는 음식이란 건 정말 근사하다.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포근하게 해주니까.

아직 마루단 3기의 활동이 다 끝나지 않았지만 더 늦장 부리다가는 내용을 잊어버릴 것 같아 먼저 독후감부터 쓰기로 했다. 낮술이라는 제목과 줄거리만 보면 유명한 일드 ‘고독한 미식가’가 떠올랐다. 드라마를 제대로 본 건 아니어서 ‘회사원 고로 씨의 맛집 탐방기’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음식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결을 가진 책이 아닐까 싶었다.

소설은 열여섯 번의 식사에 그날 밤에 만난 의뢰인의 사연을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그 사이사이에 쇼코의 사연을 들려주는 것도 잊지 않으며 말이다. 음식을 꼭꼭 씹으며 의뢰인과의 대화를 곱씹는 쇼코 덕에 독자도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음미하듯 곱씹게 된다.

작품 속에서 기억에 남는 의뢰인은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지내는 노인이었다. 정확히는 노인의 지인이 의뢰한 일이었지만 그 부분은 차치하고, 먼저 떠난 이를 붙들고 사는 사람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아내의 유언이라며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작별인사를 하겠다는 제자들의 요청을 거부하며, 가족묘에 이장하고 싶다는 아내 쪽 가족을 내쫓은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의뢰인에게 때로는 규정과 규칙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쇼코. 이미 떠난 사람을 놓지 못하는 할아버지도 안쓰러웠고 제대로 작별할 수 있게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것도 중요하다는 쇼코의 의견도 일리가 있어서 어느 한 쪽 편을 들기가 참 곤란했다.

기억에 남았던 또 다른 이유로는 지나가버린 것을 붙들고 사는 이의 모습을 제 3자의 시선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할머니의 유골함을 붙들고 사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 꼴사나웠다. 여기서 꼴사납다는 것은, 여전히 죽은 아내를 붙들고 살아서가 아니다. 자기 고집으로 인해 다른 사람까지 제대로 이별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꼴사나움이다. 본인의 슬픔만 슬픔인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꼭 예전의 내 모습 같아서 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건, 예전의 나도 꼴사나웠다는 거겠지.

규칙과 규정은 번거로울 때가 많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지만 쇼코의 말처럼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작별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는 규칙과 규정도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지나가버린 것을 슬퍼하는 행위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몰입해 주변 상황을 보지 못하게 됐을 때에도 여전히 그걸 슬픔이라 부를 수 있을까. 슬픔에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건강한 방식으로 슬퍼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것을, 쇼코의 말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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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반할 민화 - 생활의 단면 유쾌한 미학, 오천 년 K-민화의 모든 것 알고 보면 반할 시리즈
윤열수 지음 / 태학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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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책이 나와서 너무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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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인간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정수윤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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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을 구매할 때, 혹은 선물 받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된다. 세상의 모든 작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책을 사야만 하는 이유를 특정 작가의 이름에서 찾는 것이다. <슬픈 인간>도 그런 이유로 책장에 꽂혔다. 산문집은 꽝 없는 보물찾기 같아서, 읽고 싶은 작가의 작품을 찾아가는 도중에 다른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번에 발견한 보물은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나의 고독은 습관입니다>였다.

“예전부터 나는 사람 만나고 사귀는 걸 싫어했다.”(p264)

첫 문장부터 마주한 솔직하고도 담백한 진심에 순간 누가 내 이야기를 쓴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나도 사람과의 교제에 서투른 편이라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기 때문이다. 작가는 신경질적이고 제멋대로인 성격과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을 이유로 꼽으며 자신의 고독이 습관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설명한다. 또한 선천적인 기질로 인해 자신을 ‘동굴 속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서술하며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해 고독자를 위한 위로를 받았다고 덧붙인다. 여기까지만 읽었는데도 작가가 제목에 ‘습관’을 넣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습관은 특정 행위의 반복이 굳어진 것인데, 작가는 선천적인 기질을 이유로 스스로를 고립시켜 고독을 반복했다. 그 행위에 자의가 얼마나 포함되었는지는 몰라도 어쩔 수 없이 반복된 고독은 몸에 배게 되었고, 결국 고독은 작가에게 취향이 아니라 습관이 된 게 아니었을까. 만약 고독이 그에게 습관이 아니었다면, 제목에 다른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내가 좋아서 동굴에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독을 강요당하고 있다.”(p268)

그렇다면 나의 고독은 어느 쪽일까. 취향일까 습관일까. 예전에는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거처를 옮기고 코로나로 인해 사람과의 접촉이 줄어들면서부터, 여전히 나는 고독을 즐기는 사람인지 의문이 든다. 홀로 있는 생활이 싫은 건 아니다. 지금의 생활이 주는 장점이 있고, 나는 그 안에서 여유로움과 안정을 느낀다. 다만 가끔씩 ‘정말 이대로도 괜찮나?’라는 생각이 들 때면 작가의 말처럼 진정한 고독 생활이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글을 읽고 나서 내가 가진 고독의 시발점을 생각해 보았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혼자 있기를 원하게 된 걸까.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무작정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있는 걸 누가 싫어할까. 하지만 모르는 다수와 거리낌 없이 부딪치기에 내 성격은 너무 예민했고, 겁이 많았다. 예민함을 끌어안은 채로 사람을 상대하려면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아쉽게도 나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여러 자극을 버텨내지 못했고, 결국 그걸 감내하면서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려버렸다.

“필경 인간이 고독한 것은 주위에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리라.”(p271)

이 말대로라면 고독한 사람은 가여운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말은 고독한 사람에게 너무 듣기 좋은 말이 아닌가? 나는 이 말이 고독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처럼 들린다. 마치 네가 고독한 건 네 탓이 아니라는 것처럼. 작가는 널 이해하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의미에서 했을지 몰라도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고독한 사람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해도 결국 자신을 가둔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고독을 깨는데 타인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시작은 나여야 한다. 이건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자유가 좋다는 핑계를 대며 혼자 있을 수만은 없을 테니까. 자신의 고독이 습관임을 알게 된 나에게도 이를 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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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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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설국>을 읽기 전이라 읽을지 말지 망설인 책이었으나 작품 평이 갈린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이번만큼은 배경지식을 먼저 쌓아보기로 했다. 읽기 전만해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 아는 것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사실뿐이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의외로 작가와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다고 여겼던 것은 그 정보들을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연결 짓지 못한 탓이었다.

이제서야 떠올리는 거지만 나는 대학생 때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책에서 다루는 것만큼 깊이 있지는 않았지만 수박 겉핥기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다. 책을 읽으며 강의 시간에 배운 것을 차근차근 떠올리니 조각나있던 퍼즐들이 하나 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아마 당시에 영화 <이즈의 무희>를 비롯한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은 내가 그의 작풍을 소화해내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학생 때의 나는 설국을 그저 일본미美의 징수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 안에 숨은 허무를 들여다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를 감안하고 읽은 소감은 ‘미리 알아서 다행이다’였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설국>을 읽었다가는 나 또한 작품의 난해함에 골머리를 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자는 시간 순대로 흘러가지 않는 작품의 전개 방식을 언급하며 <설국>을 이해하려면 인과관계 위주의 스토리 흐름보다는 시를 읽듯 한 행 한 행의 이미지로 읽어 나갈 것을 추천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일생은 허무로 시작해 허무로 귀결되는 느낌이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누나와 조부모님의 죽음을 시작으로 스승의 죽음, 약혼녀와의 갑작스런 파혼, 아끼던 후배의 자살, 마지막으로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자살까지. 주위 사람의 죽음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관은 허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이었고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명예의 전성기를 맞은 노년에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선택은 말 그대로 ‘허무’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의 죽음이 허무하다 느끼는 것은 노벨 문학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대나무를 떠올렸다. 하늘을 향해 올곧게 자라나는 대나무처럼 그의 꼿꼿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영원히 부러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만약 부러질 때가 온다면 부러지기 전에 스스로 부러뜨릴 것만 같은, 그런 단호함 마저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었을 때 먼저 부러졌구나 싶었다. 나는 꼿꼿함이 부러졌다는 그 사실이 허무했던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을 일본 문학 전문가가 아니며 그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라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이제 막 가와바타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려는 나에게 좋은 입문서가 되어주었다. 아직 <설국>을 읽지 않은 사람, 읽었지만 알쏭달쏭했던 사람들에게도 이 책이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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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 - 인도, 문명의 나무가 뻗어나가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 시리즈 1
강희정 지음 / 사회평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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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음악에 이어 이번엔 동양미술이었다. 기존 미술이야기 시리즈와 달리 나라별로 나왔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인도 미술. 인도에 대해 공부한 적은 있어도 인도 미술하면 떠오르는 것은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는 간다라 미술 정도였다. 생각해보니 인도 미술 하면 떠오르는 작품 이름이 없었다. 서양미술 하면 대표적인 화가들부터 작품 이름 몇 가지는 댈 수 있었던 반면 인도? 그것도 미술 분야에서? 굳이 이름을 대자면 아잔타 석굴사원과 같은 불교 석굴 정도였다. 이름을 대면서도 석굴은 미술이 아닌 역사 유적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인도 미술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린 채로 책을 읽게 되었다.

이런 내 생각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 책은 동양미술의 정의부터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양미술이 ‘회화’에 집중되어 있다면 동양미술은 회화, 조각, 건축, 공예 등 예술 전반을 통틀어 지칭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 내가 위에서 말한 것도 동양에서는 미술에 포함된다는 이야기였다. 두 미술의 차이가 단순히 지역을 넘어 범주에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면서 동양미술에 대한 관심이 올라갔다.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의 차이점이자 공통점은 종교였다. 차이점은 서양미술이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동양미술은 불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공통점은 둘 다 종교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신과 관련된 종교화나 건축물 위주의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종교를 바탕으로 발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비슷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바로 스투파 입구에 장식한 조각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조각에는 석가모니와 관련된 일화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어느 한 사람이 완성시킨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조각가에게 의뢰를 해서 그때그때 끼워놓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소망을 담거나 했다는데, 이 모습이 꼭 중세 유럽에서 부자들이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성당을 짓고 화가에게 후원을 해 벽화를 그려 넣었다는 일화와 겹쳐지면서 내심 웃음이 나왔다. 시기도, 종교도, 지역도 다르지만 사람들의 소망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스투파와 관련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스투파가 변형돼서 탑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단어뿐만이 아니라 ‘탑’ 자체에도 해당된다는 건 이번에 안 사실이었다. 인도의 산치 스투파와 경주에서 볼 수 있는 탑은 한눈에 봐도 형태가 꽤나 달라서 인도에서 유래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걸 찬찬히 뜯어 보니 간소화 되긴 했어도 스투파와 관련된 부분들이 남아 있었다. 만약 이 사실을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경주에 갔을 때 탑을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을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아쉬웠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책이어서 그런지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이제 겨우 쿠샨 왕조에 들어선 것을 보며 본격적인 인도 미술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구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는 여러 문화가 융합된 나라고, 그 안에서 꽃피운 여러 건축물들과 문화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기대하고 무굴 제국도 이 중 하나다. 멋진 책을 내느라 고생하신 편집자 분들과 교수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다음 시리즈가 얼른 나와서 쿠샨 왕조부터 이어지는 인도미술 이야기도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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