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의 하이쿠 기행 1 - 오쿠로 가는 작은 길 바쇼의 하이쿠 기행 1
마쓰오 바쇼 지음, 김정례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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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바쇼의 하이쿠 기행1 오쿠로 가는 작은 길

바쇼가 일본 동북부 지방을 여행한 뒤 남긴 기행문.

하이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덩달아 바쇼가 방랑 여행을 떠난 뒤 지었다던 기행문이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되었다. 책은 전 3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머지는 노자라시 기행과 오이노코부미 편이다. 책의 부제 ‘오쿠노 호소미치’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일본 동북부 오쿠 지방으로 떠나는 길이라는 의미이고, 두 번째는 멀고 깊은 곳, 즉 내륙의 오지를 의미한다. 바쇼는 이전 여행에서는 비교적 쉬운 길로 다녔기 때문에 마지막 여행에서는 험난한 여정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고전 작품인 만큼 주석이 정말 많은데, 그 정도가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쩔 때는 한 문장에 주석이 여러 개가 들어갈 때도 있어서 책 페이지를 앞뒤로 번갈아 가면서 읽다 보면 정신 사납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렇다고 본문만 읽기엔 그 안에 깔린 배경지식을 놓치게 돼서 책을 앞뒤로 넘겨가며 읽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쿠노 호소미치는 기행문의 형식을 갖추었으면서도 특이하게 그 성격과 어긋남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기행문이라 하면 시간 순서에 맞게 사실과 자신의 감상을 기록하는 것이 주된 목적임에도 바쇼의 기행문은 사실과 어긋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히려 바쇼와 동행한 제자 소라의 기행문이 더 정확할 정도이다. 그래서 주석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짚어줄 때마다 작가의 실수, 혹은 착각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문학적 재구성을 위한 것임을 해설을 읽고 나서 알게 되었고, 그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바쇼 하이쿠를 읽으면서 패랭이꽃에 대한 계어 해석이 헷갈리는데, 하이쿠에 따라 여름이라고 해석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가을로 해석하는 작품도 있어서였다. 가을로 해석하는 경우, 가을에 피는 일곱 가지 꽃(秋の七草)에 패랭이꽃이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만엽집에서 가을꽃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하지만 국내 번역된 만엽집 8권을 찾아보니 패랭이꽃은 여름 계어로 분류되어 있었다). 반대로 여름은 문맥상 여름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작품일 경우, 그리고 (이건 내 추측이지만)창작 시기를 우선시한 작품일 경우 앞의 상징성을 고려하지 않고 개화 시기에(6-8월 개화) 따라 해석한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오쿠노 호소미치의 경우 기행문의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만엽집의 상징성보다는 여행 날짜에 맞춰 작품을 해석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하면 다른 의문도 든다. 만약 다른 번역가라면 이걸 똑같이 여름으로 해석했을까? 시기를 무시하고 전통에 따라 가을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나? 다른 하이쿠 시인들도 패랭이꽃을 넣어서 작품을 썼을까? 등 질문이 연이어 떠오르는 통에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해진다. 패랭이꽃이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심란하게 하는지. 내가 갖고 있는 하이쿠 책에서는 바쇼 말고 패랭이꽃이 들어간 하이쿠를 찾을 수 없어서 마지막 질문은 의미 없는 것이 되버리고 말았지만 만약 있다면 그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또 떠오르고 만다. 하이쿠 기행에서 시작해서 패랭이꽃으로 끝나는 이 과정이 다소 황당하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작품 해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많이 없어서 재밌기도 하다. 다만 이걸 누군가와 나누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아야 한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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