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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10월
평점 :
읽으면서 자꾸만 착각했다.
'내가 한국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있는 게 정말 맞나?'하면서 표지로 돌아와 저자를 다시 확인했다. 이 책은 하드보일드 누아르이면서도 고립된 밀실 구역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함, 범인을 찾아야 하는 추리, 그에 대응하는 인물들이 합쳐서 꽤나 매력적이면서 특이했다.
미스터리 소설의 주인공이라 하면 포와로나 홈즈, 가가 형사처럼 뭔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깔끔한 디테일을 자랑한다면 파괴자들의 케이는 상당히 거칠다. 과거 용병이었다는 점도 그렇지만 야망 없는 거리의 야수 느낌이랄까?
수상쩍은 분위기 속에서도 상상하기 쉬운 이유는 대사에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외국 영화에서 블랙 유머나 조크로 나올만한 티키타카가 아슬아슬하게 진행된다.너무 가볍지는 않게 그렇다고 짜증을 유발하지도 않고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고립된 장소라는 것을 노려서. 일어난 일에 비한 침착한 전개
"새벽에 잭이 살해당했습니다."
드디어 살인 사건의 시작인가? 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졌는데 주변은 생각보다 침착하고 태평했다. 목이 잘려서 주방 냉동고에 발견됐다면 혼비백산이 되고도 충분히 남았을 것 같은데. 케이의 추측대로 이곳에서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사람이 죽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 가장 덤덤했던 건 역시 케이. 읽다 보면 어디에서 본 것 같은데? 혹은 익숙한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오마주 했다. 그것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을 듯.
외딴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죽기 전에 먼저 죽여야 하는 과거 용병이었던 남자. 숱한 전쟁에서 살아남았던 용병을 만난 저들의 운명이 어떻게 보면 더 가여웠다.
가독성이 정말 좋았던 미스터리 소설.
영상으로 나오면 빈센조 1,2화와 같은 이국적인 느낌이 탄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