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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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글은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형식이 다를 뿐이다. 영화든 소설이는 논문이든 신문 기사까지, 모두 쓴 사람의 이야기다. 따라서 ‘자전적 소설‘이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자기 현실과 재현 사이의 거리는 글마다 다르지만, 가장 어려운 글쓰기는 《헝거》 같은 형식의 이야기다. ‘자서自敍‘는 자서전自敍傳과 다르다.
성별과 인종, 계급 등 사회적 위치성과 무관하게 자서’는 상처와 고통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이 이슈들은 ‘드러내기 어렵다기보다 ‘잘‘ 드러내기 어렵다. 자기 연민과 나르시시즘은 최악의 인성이자 글쓰기 태도인데 그 덫에 걸리기 쉽다. 예술에서 권력자는 상처받은 사람,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하긴 상처가 아니라면, 왜 쓰겠는가? 상처가 없으면 쓸 일도 없다. 작가는(학자도 마찬가지다) 죽을 때까지 팔아먹을 수 있는 덮어도 덮어도 솟아오르는 상처wound가 있어야 한다.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해석, 생각, 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삶이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산을 넘는 일이다. (9-10쪽, 추천사)

내 몸에 대한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체중 감량으로 인한 눈부신 변화를 그린 자전적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날씬한 버전의 내가 과거 뚱뚱했던 시절 입었던 거대한 청바지의 다리 한 쪽에 들어가 새 삶을 얻은 듯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실리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동기 부여를 해주는 책도 아니다. 또한 이 책에는 내가 잘 다루지 못한 내 몸과 내 식욕을 드디어 극복하면서 얻게 된 통찰과 해법 같은 건 없다. 말하자면 내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니다. 그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만 해두자.
나도 간절히 쓰고 싶다. 다이어트 성공 후기와 함께 내 안의 악마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물리쳤는지 마음껏 자랑하는 책을. 아니면 내 몸의 크기가 어떠하건 간에 내 몸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담담히 고백하는 책을. 하지만 나는 그런 책을 쓰지 못하고 대신 이런 책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은 내 평생 가장 어려운 글쓰기였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막막한 작업이었다. 처음 《헝거》라는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평소 다른 글쓰기들이 그렇듯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언어들이 스스로 깨어나 지면 위에 펼쳐질 줄 알았다. 40년이 넘게 동고동락해온 이 몸에 대해 쓰는 일이 뭐 그렇게 어려울까? 하지만 얼마 후 나는 단지 내 몸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몸이 견뎌온 그 무수한 사연들, 늘어난 몸무게와 정신적 짐들, 이 무게를 지고 살면서 그 무게를 덜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에 관한 일들을 강제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 밝히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비밀들을 억지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 심장 한가운데를 갈라서 펼쳐놓아야만 했다. 나를 벗겨버려 실체를 드러내야 했다. 그건 그다지 편안하지 않다. 결코 쉽지 않다.
이 순간에도 나는 간절히 바란다. 나에게 결단력과 의지력이라는 자질이 있어서 당신에게 승리의 이야기를 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실은 지금도 계속 그러한 결단력과 의지력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 몸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 몸이 견뎌온 그 모든 것, 내 몸이 되어온 것 이상의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그 다짐이라는 녀석은 나를 그리 멀리 데리고 가지 못한다.
이 책을 쓰는 건 고백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가장 추하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헐벗은 부분을 드러내겠다는 말이다. 나에겐 이런 진실이 있다고 털어놓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내) 몸에 대한 고백이라고 말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대체로 내 몸과 같은 몸의 이야기들은 무시되거나 묵살되거나 조롱받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몸과 같은 몸을 보고 쉽게 단정해버린다. 왜 저 사람이 저런 몸이 되었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들은 모른다. 나의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보다는 더 말해야만 하고 더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다.
이 책은 내 몸, 내 허기에 관한 책이며 궁극적으로는, 사라지고 싶고 다 놓아버리고 싶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원하는, 간절히 누군가에게 보이고싶고 이해받고 싶은 사람에 관한 책이다. 비록 그 과정이 한없이 느려터지긴 했으나, 마침내 자신을 보여주고 이해받는 것이 가능함을 배우게 된 한 사람에 관한 책이다. (22-24쪽)

어린 시절 사진이 참 많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뭉텅이로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어떤 시절이나 어떤 연도는 전혀 단 한 장면도 기억하지 못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굉장히 중요한 가족의 추억) 기억나?" 라고 물으면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그들을 쳐다본다. 우리에게는 공유하는 역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여러 면에서 이것은 나와 우리 가족의 단절된 관계를 가장 잘 묘사하는, 어쩌면 내 인생의 거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한 문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좋고 예쁜 인생은 함께 나누었으나 인생의 어둡고 어려운 부분은 나누지 못했고 우리 가족은 그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45쪽)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현재 나는 ‘생존자‘ 보다 ‘피해자‘를 선호한다. 일어난 일의 엄중함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희망의 여정을 걸어와 승리를 쟁취한 척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무사한 척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 일이 일어난 채로 여기까지 걸어왔고 그 일을 잊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거나 내게 흉터가 남지 않은 척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은 내 몸에 관한 고백이다. 내 몸은 망가졌다. 나도 망가졌다. 그전으로 어떻게 다시 되돌릴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 안의 일부는 죽었다. 내 안의 일부는 침묵했고 수년 동안 그 상태 그대로 있었다.
내 안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나는 그 빈 공간을 메우기로 작정했고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내 주변에 방패막을 만들기 위해 내가 사용한도구는 음식이었다. 나는 먹고 먹고 또 먹으며 나 자신을 크게 만들고자,
내 몸을 안전하게 만들고자 했다. 과거의 나는 묻어버렸다. 그 소녀는 온갖 종류의 말썽을 일으킬 뿐이었다. 그녀의 기억을 지워버리려 노력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곳 어딘가에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작게 웅크리고 두려움에 떨면서 모멸감에 몸부림치면서 그 자리에 있었고, 어쩌면 나는 어린 그녀에게 다시 돌아가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임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때 반드시 들어야만 했던 그 모든 이야기를 지금이라도 해주려고 말이다.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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