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배윤민정 지음 / 푸른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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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얼마간 전통적인 호칭대로 시가 구성원들을 부르던 나는, 어느 순간 호칭을 입에 올리는 일 자체를 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다짜고짜 말을 시작하거나, ‘저기...‘ 같은 감탄사로 운을 띄우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몇 마디 말이 아니라 대화를 하려면 상대를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했다. 어느덧 나는 여섯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없이 웃고 있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호칭에 신경을 쓰다보니 꼭 해야 할 말이 아니면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쪽을 택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차별적인 가족 호칭 문화가 대물림되어온 진짜 목적은 이것인지도 몰랐다. 여자들이 시가에서 입을 닫도록 하는 것.
시가 구성원이 모인 자리에서 미소만 짓고 있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수진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선 보통 두현의 아버지가 대화를 주도했다. 두현의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가정과 직장 생활이 무탈한지 물었고, 두현과 재현은 아버 - P28

지의 질문에 대답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와 수진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오르는 경우는 없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나 취향을 드러내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그것을 묻는 사람도 없었다. 어쩌다 수진과 내가 입을 열어도, 배우자가 회사 일 때문에 너무 바쁘다거나 배우자의 건강이 염려된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반드시 그런 얘기만 하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갔다.
시가 모임이 끝나고 나면 가슴속에 석연치 않은 기분이 남았다. 나는 결혼 전 두현의 부모님과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때와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고 복잡한 호칭 관계가 만들어지고 나니, 남자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위계를 정하는 관습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전에 내가 두현의 부모님을 ‘어머님‘과 ‘아버님‘이라고 부를 때 장유유서의 관습만을 의식했다면, ‘아주버님-제수씨‘와 ‘형님-동서‘ 호칭에서 느낀 것은 배우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전락했다는 감정이었다. 시가 모임에서 오직 남편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경향도, 남편의 나이를 기준으로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정해지는 부계 중심적인 질서와 무관하지 않았다. 막연하게 가슴속에 떠돌던 기분은 점점 구체적인 질문으로 떠올랐다. 나는 두현의 가족들과 평등한 관계로 만나고 있는 걸까? - P29

그들이 나에게 자유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한, 이 자유는 모욕의 또 다른 얼굴에 불과할 뿐이다. - P117

폭력에 대해 항의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당신이 나에게 한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상대방의 1차적 반응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말했다는 사실 자체가 없는 것처럼. 내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가해자의 무반응, 목격자들의 외면, 내가 겪은 일은 ‘사소한 일‘이라는 분위기에 눌려서 나는 늘 말하는 것을 포기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물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외쳐도 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가닿을 수 없다고. 그렇게 내가 침묵하고 나면, 나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찾아왔다.
인간 사회를 서열 구조로 보는 사람들에게 약자의 목소리는 가벼운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강자는 침묵을 행사할 수도 있고, 명령할 수도 있다. 사소한 것과 사소하지 않은 것을 결정할 힘이 있다. - P179

-최근에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은 무엇인가요?

한창 호칭 싸움을 전개하던 시기,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이런 질문을 봤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두 가지 답을 떠올렸다. 분노와 호기심. 나에게는 이 두 가지가 동전의 앞뒷면과 다르지 않은 감정이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났고, 그랬기에 알고 싶었다. 왜 재현과 수진은 내가 이름에 ‘님‘자를 붙이자고 제안한 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왜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아랫사람이라고 말하는 걸까? 왜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이런 위계 구도에서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걸까? 답을 얻으려고 움직이다 - P213

보니 더 많은 질문과 마주쳤다. 가정의 평화는 무엇이고, 가족의 질서는 무엇인지. 그 밑에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명이 잠겨 있는지. ‘정상 가족‘은 이 소리에 귀를 막은 채 그 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 P214

그러니까 이런 거야. 한 나라가 있다고 생각해봐. 그 나라에서는 같은 값에 남자에게는 고기 200그램을 주고, 여자에게는 100그램을 주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 그런데 나는 착한 고깃집 주인이라서 여자들에게 몰래 고기를 조금씩 더 챙겨줘. 가난하거나 아이가 있으면 200그램을 다 줄 때도 있고.
그런데 어느 날 이 법을 바꾸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지금까지의 내 행동이 잘못된 거라고 여자들이 따진단 말이야. 고기 양을 여자와 남자한테 다르게 주는 것은 나쁘다. 당신은 잘못된 행동을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억울하지. 나는 정해진 대로 따랐을 뿐인데, 내가 깨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여자들에게 조금씩 더 챙겨주지도 않았을 텐데, 나는 불이익을 감수하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잘못했다고 할 수 있지? 나한테 고맙지도 않나?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지?
나는 자기에게도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 나와 부모님은 자기를 이해한다고, 그것도 대단한 거라고⋯. 그런데 그런 마음은 이 상황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거야. 고기를 적게 줘서 생긴 문제였다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면 끝날 일이라는 거지. - P248

그 구조 안에서 내가 애썼다는 얘기는 할 필요도 없는 거였어.
그런 생각이 떠오르니까 정신이 들었어. 아, 내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아파할 일이 아니구나. 내 감정이 문제가 아니구4. 미래의 내가 현재로 와서 멱살을 잡고 말하는 것 같더라니가. 이것 봐, 시스템이 잘못됐다니까! - P249

"그러니까. 문제는 구조였어. 나와 부모님이 자기에게 가해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구조를 직시해야 우리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거였어. 그런데 나는 자꾸 나와 부모님의 노력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고만 있었던 거야. 자기 입장에서 보면 이 잘못된 위계 구조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달라진 게 없는데 우리 노력을 알아달라고만 하는 건, 자기에게 이 위계를 받아들이라고 좋게 타이르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던거지." - P249

살기이 글을 쓴 이후 ‘이혼하라‘는 댓글을 참 많이 받았다. 일각에서는 전통적인 가족 호칭과 서열 문화가 싫다면 잔말 말고 이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또 다른 쪽에서는 기혼 여성은 가부장제 유지에 기여할 뿐이니 ‘탈혼‘만이 정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자는 가부장제의 기득권인 남성 집단의 반응이고, 후자는 가부장제 해체를 원하는 여성 집단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판이하게 성격이 다른 두 집단에서 결혼 제도 밖으로 나가라는 똑같은 말이 나온 것이다. 나는 이 현상을 보고 생각했다. 이혼 혹은 탈혼은 이 싸움을 끝내는 너무 쉬운 방법이 아닐까?
사회에서 전형적인 선택지로 주어지는 것에는 늘 함정이 있다. 나는 결혼을 통해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혼 - P266

혹은 탈혼은 과연 이 전형성에서 벗어난 선택인가? ‘가부장제의 수용‘ 아니면 ‘관계의 단절‘이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지만이 나에게 주어진 것인가? 나는 이것 또한 가부장제의 작동 방식 중 하나가 아닌지 의심했다. 결혼 제도 안에서 가부장제에 반기를 든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 수용을 선택하면 개인의 존엄을 잃고, 거부를 선택하면 관계가 단절되는 선택지로 여자를 밀어 넣는 것.
나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일상을 가꾸어가길 원한다. 동반자와의 관계를 법과 제도를 통해 보호받고 지원받길 원한다. 동시에 여자의 삶을 착취하며 유지되는 가부장제가 사라지길 원한다. 나는 사랑을 원하고, 내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제도적 보호를 원하며, 여성 인권의 향상을 원한다. 이 모든 것이 내 욕망이고, 동시에 내가 시민으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삶의 권리다. 나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한 가지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 모든 것에 대 - P267

한 권리를 얻기 위해 싸우고 싶다. - P268

상대방이 거부한다면 부딪쳐보는 것도 우리의 선택지 중 하나다. 나는 결혼한 여자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 ‘갈등을 최소화하며 현명하게 변화를 끌어내라‘는 목소리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런 말들은 변화가 일어나기까지의 시간 동안 여자에게 차별을 감내하라는 주문과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이 ‘가정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평화 밑에는 여자, 특히 ‘며느리‘의 인내가 깔려 있다. 나는 약자의 침묵으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구성원들이 부딪치고 갈등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더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민주주의가 그러하듯이.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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