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 - 어느 여성 생계부양자 이야기
김은화 지음, 박영선 구술 / 딸세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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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대가 있고, 사회라는 게 있다. 지금도 여성에게 달린 가부장제의 족쇄가 이렇게 많은데, 10년 전, 20년 전에는 그 족쇄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엄마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나니그 맥락이 보인다. 이제는 알겠다. 엄마가 나를 키우기 위해 무엇을포기했고 무엇을 감수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용감했는지 말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엄마를 알아주기로 했다. 그 시작은 제대로 된 호칭을 붙여 주는 일이다. 엄마는 그간 가족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나 생계부양자 같은 호칭은 남성에게만 명예롭게 주어졌다. 나는 여기에 대항해서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다고, 아니 살렸다고, 그녀의 노동이 ‘
었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엄마는 우리 가족의 생계부양자였으며, 진정한 가장이었다고 말이다. - P16

그러나 밀려난 자리에서 삶의 전환을 꾀하고, 다시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야 말로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적인 사회는 여성들을 자꾸 변방으로 몰아낸다. 여자라서 공부를 더 시키지 않고, 여자라서 저임금의 노동을 맡기며, 여자라서 무급으로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하는 것을 사회는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여자들은 피해자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밀쳐졌다가도 튕겨 오르고, 순응했다가 반발한다. 원망과 증오, 사랑으로 불타올랐다가 체념과 무기력으로 가라앉는다. 실눈을 뜨고 때를 기다린다. 다양한 삶의 전략을 구사하며 성큼성큼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간다. 삶의 길 위에서 그녀들 하나하나가 적극적인 플레이어이며, 역사의 주인공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살아남은 여자는 누구나 강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밀려난 곳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 P249

이 책은 영선 씨만을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녀의 곁에는 늘 여성들이 있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함께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 공동체를 위해 일하던 부녀회 친구들, 한복 학원을 같이 다녔던 동기들, 물류 창고에서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던 여성 노동자들, 요양보호사로 매일 육체의 한계를 시험당하던 중년의 여성들 말이다. 그녀들 하나하나를 생계부양자로 호명해 주고 싶다. 가부장적인 사회는 당신들에게 별처럼 높이 떠오를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내고 딸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준 당신들에게 후배 여성으로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전히 여성은 남성이 시급 1만 원을 받을 때 6300원을 받으며 살아간다. 과연 여성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략적으로 또 연대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머니 세대, 당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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