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게 길게 애틋하게 - 감염병 시대를 살아내는 법 시사IN 저널북 (SJB) 1
변진경.김명희.임승관 지음 / 시사IN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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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게 길게 애틋하게>는 팬데믹을 만난 우리의 목표와 한계, 그리고 마음까지 이야기한다. ‘가늘게‘는 우리의 목표다. 감염병의 확산과 피해를 최대한 얄팍하게 낮춰야 한다. ‘길게‘ 우리의 자세다.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오래도록 - P12

지치지 않아야 한다. ‘애틋하게‘는 우리의 마음이다. 타인의 아픔이 곧 내 아픔으로 연결됨을, 서로가 서로의 환경임을 인식할 때 미움과 긴장과 불안이 조금은 누그러질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삶을, ‘견뎌내는‘ 시간 이상으로, 풍부하고 따뜻하게 꾸려나가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P13

아마르티아 센 (빈곤 불평등 경제학자)이 헬스 케이퍼빌러티 (health capability, 건강 잠재력) 이야기를 했어요. 무상 의료를 한다 해도 어떤 사람은 지식이 없고 정보가 없어서, 장애인은 갈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못 누려요. 사람마다 가진 기회와 자원을 활용하는 헬스 케이퍼빌러티가 다 달라요. 그런 관점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주 마스크 2개를 똑같이 나눠주는 것도 맞지 않아요. 우리 사회와 공동체를 지키는 데 자원을 어떻게 분배 - P30

해야 할까요? 한국이 잘살게 되면서부터 한 번도 제한된 자원을 누구에게 먼저 줄 건지 함께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여름에 폭염이 심하니 저소득층에게 에어컨을 지원해야 할까?‘ 같은 고민을요. 드라이브 스루도 마찬가지예요. ‘병원 오갈 때는 자동차를 이용하라? 차 없는 사람도 많은데? 이런 질문들을 우리 사회가 처음 맞이했어요. - P31

두 계절이 지나갈 동안 위험의 수준은 결코 낮아지지 않았다. 대신 위험을 판단하는 우리의 인식 수준을 낮추기로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P32

재택이나 원격근무라고 하면 뭔가 혁신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드물어요. 이번에 콜센터 등에서 원격근무를 도입한 곳들이 있는데 노동강도가 장난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업종은 얼마나 로그인해 있는지, 즉각 대응하고 있는지 초 단위로 감시가 가능해요. 노동강도가 절대로 약해지지 않았고 오 - P152

히려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보다 휴게 시간과 공간이 더 여의치 않아요. 사회적 고립감도 작게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고요. ILO 등에서는 실제로 원격근무와 관련된 건강관리 지침을 내놓기도 해요. 한국에서는 아직 명확한 지침이 없어요. 장애인 등 출퇴근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재택근무가 모두에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만약 이걸 노동의 뉴노멀로 본격화하려면 대비책이 먼저 만들어져야 해요.

과도하게 자율적이거나 과도하게 경직되거나, 재택근무는 둘 중 하나가 될 거예요. 과도하게 자율성에 맡겨놓고 문제가 생기면 다 개인 탓으로 돌릴 수도 있어요. 아니면 콜센터처럼 과도하게 관리하면서 옥죄는 식이겠죠. 똑같이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간다 해도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허용이 되던 게 재택근무에서는 의심받는 거죠.

재택근무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예요. 일종의 하층,
플랫폼 노동자인 경우와 대기업, 엘리트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 완전히 다를 수 있어요. 노동자들 내부의 격차가 커질 거예요. - P153

타다 논쟁 때, ‘이게 혁신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가장낙후된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혁신이라면 얼마 - P153

나 멋있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하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거나 수월하게 일을 해서 노동을 돋보이게 하는 방식이 진정한 혁신일 수도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혁신을 논할 때 늘 그 부분이 빠져 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다양한 혁신이 시도될 테지만 그럴 때마다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해주지 않으면 이 사회 구성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될거예요. - P154

공공‘보건’ 시스템이 있어야 해요. 검역하고 확진자 찾고 역학조사하고 동선 추적하고 코호트 격리하고 등등, 치료받기 전까지 모든 공공보건 분야에서의 시스템이에요. 공공‘의료‘ 시스템은 그나마 이야기가 돼왔어요. 그런데 공공보건 시스템에 대해선 무슨 역할을 하고 뭐 - P174

가 보완돼야 하는지 관심이 없어요. 질병관리본부(질본)정도가 유일하게 관심을 받지만 사실 질본은 전국적인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돼 있어요. 질본이 질병관리청이 되면서 지방청 조직이 생기는 것도 좋아요. 필요하다고 봐요. 하지만 시군구의 기본 구조를 강화하지 않은 채 지방청만 둬봤자 거의 기능을 못할 거예요. 시군구 보건소 중심의 공공보건 시스템을 정비하고 확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전혀 논의되지않고 있어요. - P175

영국이나 스페인이 공영의료 체계라서 엉망이라면, 미국은요? 반대의 경우 아닌가요? 시장형도 나쁘고 공영형도 나쁘다면, 중간에 있는 사회보험형이 좋을까요? 그러면 일본은 왜 저 모양이죠?
공통점은 이거예요. 민영의료든 공영의료든 감염병 유행 국면에서 꼭 필요한 데 돈을 쓰지 않았어요. 공영의료 체계는 긴축하느라, 민간시장 체계는 딴 걸로 돈 버느라고, 한쪽은 시장 논리로, 다른 쪽은 긴축 논리로 필요한곳에 돈을 쓰지 않은 거죠. 사실 공영의료 체계에서 정부가 긴축하면 시장형보다 타격이 더 커요. 돈줄이 그거밖에 없으니까요. - P181

아이러니하게도 ‘K방역’ 프레임이 그 길을 가로막았다. 대담에서 김명희 연구원이 말했듯 "K 방역 최고다" "정말 든든하다" 같은 찬사와 만족감이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 체계의 진화와 성장을 막았다. 오히려 힘을 빼는 역설이 일어났다. 이를테면 ‘#덕분에 챌린지’와 같은 캠페인이다. 그것 자체는 나쁠 것 없다. 보건소, 공공병원 등에서 일하는 공무원, 의사, 간호사들에게 우리 사회는 "덕분에"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가슴팍에 배지를 달아주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었다.
화려한 격려 이벤트를 마치고 방역 공무원, 의료진들은 다시 그대로 전쟁터로 돌아가야 했다.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 돈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정말 어떤 물질적 보상도 없어서 이들은 다소 당황했다. 심지어 지방의 많은 공공병원들은 코로나19 이후 더 적자 폭이 커지는데 정부나 지자체 어느 곳에서도 그것을 채워주지 않아서 종사자들에게 임금을 다 주지 못했다. 무급휴직을 권하기도 했다. 지치고 ‘번아웃‘ 되어도 교체할 인력도 없다. 가을 겨 - P184

울이 되면 전투는 더 치열해질 것이다. 지난 겨울부터 죽을힘을 다해 싸워온 전방의 병사들은 자꾸 뒤를 돌아보며 도와줄 사람을 찾아보는데, 후방에는 그들과 자리를 바꿔줄 2진이 없다. - P185

코로나19와 함께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미워하는일과 병행한다. ‘지금 이 시국에‘ 신천지 종교 집회에 가서 예배를 본 중년 여성, 서울 자식 집에 올라온 대구·경북 지역 할머니, 제주도 맛집을 누빈 서울 강남 출신 해외 유학생, 클럽에서 춤춘 게이…. ‘딱 욕하기 좋은‘ 정보들이 사방에 흘러넘쳤다. 정보의 출처는 ‘찌라시‘도 가짜 뉴스도 유튜브도 아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였다. 방역 당국이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개인정보와 이동경로를 제공하면 언론은 적당히 살을 붙여 확진자의 며칠간 삶을 재구성했다. 확진자의 부주의나 거짓말 같은 소재가 뒷받침되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미움의소재가 된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 편하게 타인을 비난하고 차별하고 혐오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전제 아래 합리화됐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는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 인권이 다소 제한될 수있다.‘ 감염자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수위가 높아지자 메시지는 이렇게 변형된다. "타인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 방역에더 도움이 됩니다." 타인을 비난하는 논리나 그것을 참는 논리나 모두 한 가지였다. ‘방역을 위하여.‘ - P189

메르스 때나 지금이나 ‘청정구역’ ‘종식‘ 같은 용어를 많이 쓰잖아요, 사실 HIV 인권운동에서는 오랫동안 ‘청정구역‘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해왔어요. 무엇으로부터 청정하다‘고 명명하는 순간 ‘이 청정한 공간을 오염시키’는 누군가를 배제하게 돼요.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여러 코로나19 방역 정책의 기본들은 1987년 처음 만들어진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의 주요 원칙들과 많이 맞닿아 있어요. 당시 법이 정한 HIV 감염자관리 원칙은, 명부를 작성해 찾아내고 격리해서 치료하며 전파 매개 행위를 무거운 형벌로 처벌하라는 것이었어요. 아마 낙인과 차별의 역사를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오래 경험한 사람은 HIV 감염자가 아닐까요. 우리가 HIV 정책에서 큰 변화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감염병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 역시 만들어내지 못한 게아닐까요. - P196

감염 환자를 최소화하는 정책과 함께 인권이나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에 관한 문제도 논의되어야 해요. 그러나 감염병 의료 전문가들의 이야기만 과학이고 나머지는 나쁜 의미의 정치로 치부해버리는 분위기가 있어요. 과학이 생물학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권고할 때, 정치는 그 권고를 한국 상황에 맞춰 때로는 따르고 때로는 어느 수준에서 타협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마치 과학은 선한 의도, 정치는 뭔가 방역에 방해가 되는 불순한 의도인 양 취급하는 여론이 있었고 그것이 많은 중요한 논의를 막았어요. - P198

우리는 뉴스가 보도하는 신천지 교단 확진자를 비난하면서 여전히 교회 주일예배에 가요. 이태원 클럽을 방문한 청년들을 탓하며 가족과 복합쇼핑몰에 가고, 레스토랑에서 부서 회식을 해요. 위험이 마치 어디 멀리 있는 것처럼 착각하죠. 슈퍼 전파자 같은 개념을 잘못 이 - P202

해하고 전달하면, 사회가 진정 얻어야 하는 지식과 교훈을 놓치게 돼요. - P203

완전히 ‘록다운‘하지 않는 이상 ‘나도 너도 의도치 않게 감염될 수 있다‘ ‘서로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가 새로운 사회윤리가 되어야 해요. - P203

질병 경험을 죄와 벌의 언어로 말하지 말아야 해요. 죄와 벌의 언어로 말하는 순간 개인에게 엄청난 책임이 지워지고 사회는 그를 벌해야 하는 관계가 만들어져요. 시민형 방역이라는 게 우리 사회 모델이라고 한다면, 시민들에게 좀 더 사고하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해요.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그 어떤 나라보다 자영업자가 많은 나라예요. 자기 사업장을 열고 있는 사람이 위험에 따른 결과에 더 큰 책임을 가지게 되는 구조예요. 클럽 업주나, 김밥집 사장님이나 택시운전사들이나 많은 위험을 다 같이 공유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언어를 ‘다 같이 열심히 하기만 하면 잘 막을 수 있어요’ 정도로 단순화해온 게 아닐까요. 그걸 물을 때 같아요.
나가서 놀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면서 버티고 있었던 사람들 시각에서는 확진자가 클럽에 갔고 감염인이 늘어날 때 답답하고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그런 사람들을 두고 ‘모든 감염 의심자가 코로나 19 검사를 받기 위해서 지금은 소수자 혐오를 멈춰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무엇, 다른 관점의 인어가 필요하고그걸 깊게 만들어야 해요. - P204

코로나 19 시대를 산다는 건 일정 정도 이 바이러스랑 - P204

동거하고 지내는 걸 받아들이는 것을 뜻해요. 속도를 제어할 수 있을 뿐 병원체를 없앨 수 없는데, 우리에게 너무 지나친 목표가 설정돼 있어요. 어쩌면 제1라운드 방역 성공 혹은 그에 대한 과잉 칭찬이 갖고 온 폐해 중 하나예요. 수용 가능한 피해 수준을 정하고 그것에 맞는 사회 작동 원리를 만들어야 해요. 지금 목표 수준이 합리적이지 않다 보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들도 모두 오류와 실패가 되고, 우리는 자꾸 누군가 비난할 타인을 찾게 돼요.
〈장애의 역사〉라는 책을 번역하고 있어요. 거기에 이런말이 나와요. ‘우리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 독립적)한 존재가 아니라 인터디펜던트(interdependent, 상호의존적)한 존재이다. 이러한 상호 의존이 민주주의를 만들어왔다.‘ 지금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어쩔 수 없이 서로 의존하면서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유엔에이즈계획(유엔 산하 에이즈 전담기구)에서 코로나19에 줄 수 있는 교훈으로 세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첫째는 카인드니스(kindness), 친절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인정과 관용을 베푸는 것, 공자의 인(仁)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해볼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연대, 세 번째가 돌봄의 윤리예요. 언제나 취약하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몸과 완전무결하지 않은 인간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는 조건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며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의료와 보건의 핵심 원리이기도 해요. - P205

완벽한 방역과 완전한 건강이 존재한다는 오래된 관념을,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역과 건강을 절대 선으로 삼아 모든 문제를 그 뒤로 숨게 만드는 이 패러다임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요. 만약 코로나 19가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거나, 혹은 다른 전염병이 우리를 찾아와 그것과 함께 계속해서 불확실한 세계를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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